2013 2013년3월24일, 고린도전서1:18-25(당신은 십자가를 보면, 무엇이 보입니까 ?)-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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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의 작은 일들까지도, 主 하나님께서 친히 살피시고, 또 돌보아 주시는,
당신의 작은 일들까지도, 主 하나님께서 친히 살피시고, 또 돌보아 주시는,
형통의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시편1편의 말씀처럼,
1> 하나님 말씀 안에서, 당신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세우세요.
2> 당신 인생을 당신 뜻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 따라 사세요.
3>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는 자들과는, 함께 하지 마세요.
4>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자주 자주 묵상하세요.
1> 하나님 말씀 안에서, 당신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세우세요.
2> 당신 인생을 당신 뜻대로 살지 마시고, 하나님 말씀 따라 사세요.
3>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비방하는 자들과는, 함께 하지 마세요.
4>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자주 자주 묵상하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 요사이 가장 많이 보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
하루 깨어있는 시간 중에, 가장 많이 보려 하는 것은 무엇이며,
하루 깨어있는 시간 중에, 가장 많이 보려 하는 것은 무엇이며,
실제로 여러분 눈앞에 가장 많이 보여지는 것은 결국 무엇입니까 ?
우리들이 무엇을 보고 있느냐, 또한 보이는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차나 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물을 끓였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을 무관심하게 지나쳤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을 무관심하게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왓츠라는 사람은 물이 끓는 주전자를 보면서 증기기관차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번개가 칠 때, 대다수 사람들은 그저 놀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벤저민 프랭클린은 1752년 그의 유명한 연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그러나 벤저민 프랭클린은 1752년 그의 유명한 연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번개를 보면서 어두움을 밝혀 주는 전기를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한국의 밤하늘을 보면, 곳곳에 빨간 십자가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모양의 액세서리를 즐겨 찾습니다.
한국의 밤하늘을 보면, 곳곳에 빨간 십자가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 모양의 액세서리를 즐겨 찾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얼마나 십자가를 보는 편입니까 ?
또한 그 십자가를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바라보십니까 ?
또한 그 십자가를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바라보십니까 ?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고통과 죽음의 언덕인 골고다가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오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자 ! 우리 모두, 예배당 앞의 십자가를, 마음으로 바라봐 봅시다.
지금 여러분은 십자가를 볼 때, 무엇이 보이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 볼 때, 다음의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십자가를 볼 때, 무엇이 보이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 볼 때, 다음의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主님께서 받으신 고통을 보아야 합니다.
십자가형은 인간이 겪는 형벌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입니다.
로마 제국은 극형이 선고된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는, 자신의 온 체중이, 못 박힌 손과 발에 모두 실리기에,
로마 제국은 극형이 선고된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는, 자신의 온 체중이, 못 박힌 손과 발에 모두 실리기에,
살이 다 찢기고, 뼈가 끊어지는 고통을 견뎌야 했습니다.
특히 예수님은 십자가 형벌 전에, 처참한 채찍형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 곳곳에서는 많은 피가 터져 흘러나왔습니다.
많은 출혈은, 예수님에게 심한 갈증과 어지러움증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몸 곳곳에서는 많은 피가 터져 흘러나왔습니다.
많은 출혈은, 예수님에게 심한 갈증과 어지러움증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십자가에 손발이 박힌 자세 때문에 가슴이 압박되어,
예수님은 숨을 쉬기가 매우 어려우셨습니다.
그로 인해 몸에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예수님 몸은 심한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증세로부터 벗어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치켜올리셨을 것입니다.
이런 증세로부터 벗어나시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치켜올리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예수님의 온 체중이, 발등에 박힌 못에 실렸을 것이고,
결국 고통은 더욱 크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통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19:23-27절을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처참히 십자가에 달려 계셨을 때,
달리신 예수님 밑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로마 군병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예수님이 입으셨던 옷을 누가 가질 것인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당시 처형된 죄수의 옷을, 병사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은,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 고난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있어 고난 당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의 고난을, 단 한 순간이라도 함께 해 보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예수님의 고난을, 단 한 순간이라도 함께 해 보려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세상 이익에만 마음이 있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도 요한과 예수님의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들은 사도 요한과 예수님의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였습니다.
이들은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눈물과 마음과 사랑으로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눈물과 마음과 사랑으로 동참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로 인해 외롭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번 한 주간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합시다.
主께서 당하신 그 고통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금식으로, 눈물로, 사랑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시다.
금식으로, 눈물로, 사랑으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시다.
둘째,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나 자신의 추악한 죄를 보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십자가는 고대 사회에서는 너무나 잘 알려진 비극적인 사형의 도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 형벌은 정치범이나 반사회적인 죄를 지은 흉악한 죄인에게 집행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흉악한 죄인 취급을 받고,
당시 가장 흉악범이라는 두 사람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실제로 예수님이 그토록 흉악한 죄인이었습니까 ?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를 돌보셨고, 병든 자를 고치셨고, 외로운 자를 품으셨으며,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말대로, 그분은 결코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말대로, 그분은 결코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분을 그 험한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을까요 ?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추악한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추악한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각자가 지은 죄로 인해 십자가의 형벌, 지상 최고의 형벌을 당하고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가 당할 형벌을 대신 당하고 죽으신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의 악한 죄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가 당할 형벌을 대신 당하고 죽으신 것입니다.
고로,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리의 악한 죄를 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일 나눈 말씀처럼, 죄를 말하는 헬라어는 '하마르티아'입니다.
그 뜻은 '과녁을 맞추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뜻은 '과녁을 맞추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 뜻을 저버리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겸손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교만하게 살면 그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시는데, 경험과 실력으로만 살면 그것이 죄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말고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는데,
오히려 세상 것만 구하면 그것이 죄입니다.
니느웨로 가기를 원하시는데 오히려 다시스를 향하면 그것이 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번 한 주간 십자가 밑에서 나 자신의 죄들을 찾아냅시다.
그리고 찾아낸 그 죄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철저히 회개합시다.
바로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죄에 대해 변명하지 맙시다.
변명한다고 내가 행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내 죄를 정당화하지도 맙시다.
또한, 죄를 남에게 전가하지도 맙시다.
또한, 죄를 남에게 전가하지도 맙시다.
"환경 때문에 그랬다" "저 사람 때문에 할 수 없었다" 핑계한다고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회개합시다.
어떤 죄도, 아무리 큰 죄도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로 없애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보혈의 능력을 체험합시다.
이번 한 주간, 철저한 회개로 보내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이번 한 주간, 철저한 회개로 보내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셋째,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또한 그 사랑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처참한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까 ?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
추상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인에게 말하기를,
추상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어떤 남자가 한 여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이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면서도,
그 여인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분명 그 사랑고백은 거짓이고 사기입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매사에 관심을 갖습니다.
사랑하면 상대방을 믿어줍니다.
모든 면에 도와주고 함께 하려 합니다.
사랑하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도저히 남에게 줄 수 없는 것을 그에게 주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친히 지게 하시고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친히 지게 하시고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예수님의 제자 요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요한일서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요한일서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또 감격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종려주일을 맞이하여 십자가 앞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에 앞에서 무엇이 보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십자가에 앞에서 무엇이 보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첫째,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봅시다.
이번 한 주간 주께서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고통이 나를 위한 고통, 나로 인한 고통이었음을 온전히 느껴봅시다.
이번 한 주간 주께서 십자가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그 고통이 나를 위한 고통, 나로 인한 고통이었음을 온전히 느껴봅시다.
둘째,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 자신의 추악한 죄를 봅시다.
이번 한 주간, 십자가 밑에서 습관처럼 짓고 있는 자신의 죄들을 찾아냅시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찾아낸 죄들을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내려놓고 철저히 회개합시다.
이번 한 주간, 십자가 밑에서 습관처럼 짓고 있는 자신의 죄들을 찾아냅시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찾아낸 죄들을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내려놓고 철저히 회개합시다.
셋째,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또한 그 사랑을 깊이 느낍시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번 고난 주간을 금식하며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우리 본향의 지체들도 십자가 앞에 나아옵시다.
금식하며 기도합시다.
분명 하나님께서 감격의 부활주일을 맞도록, 우리 모두에게 회복의 은총을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본향의 지체들도 십자가 앞에 나아옵시다.
금식하며 기도합시다.
분명 하나님께서 감격의 부활주일을 맞도록, 우리 모두에게 회복의 은총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