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014년2월23일, 사사기11:1-3(사사 입다를 통해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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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항상 지름길만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거친 광풍과 성난 파도를 믿음으로 이겨내,
여러분은 중학시절 주로 무슨 놀이를 하면서 보내셨습니까 ?
제가 중학생 때에는 '짬뽕'(테니스 공을 주먹으로 쳐서 하는 야구놀이), '말뚝박기', '미니 축구',
'오징어 가이셍' 등을 하면서 놀았습니다.
특히 '오징어 가이셍'에는 아련한 추억이 있습니다.
중학3학년 때, 서울에서 충청남도 전의라는 곳의 시골교회로 중고등부 여름수양회를 갔었는데,
프로그램 중에 '오징어 가이셍'놀이를 했고,
그때 제가 졸지에 그 마을과 교회의 스타(영웅)덤에 오르게 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몇 번 말씀드린 것처럼, 중학3학년 때 제 키는 1m50cm정도였습니다.
지금과 달리 살도 없었기 때문에, 정말 작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름수양회의 '오징어 가이셍' 놀이에서, 홀로 끝까지 남아,
키 크고 덩치 좋은 상대편의 고등학교 형들까지 밀어내는 괴력을 발휘해,
우리 팀이 승리하는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지만, 그 놀이를 통해 잠깐 동안 영웅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저의 경우는 아마 형들이 봐 줘서 그렇게 되었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나 성경을 보면,
예기치 않았던 때에 뜻밖의 인물이 일어나서, 큰 영웅이 되는 것을 가끔씩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입다도 바로 그런 인물 중의 한 사람입니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사사시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시대는 B. C. 1400년경부터 B. C. 1050년경까지,
즉 지금으로부터 약3400년 전부터 약350년 간 이어졌던 시대입니다.
이 시기에 모두 12명의 사사가 있었는데, 어떤 사사에 대해서는 그 행적이 겨우 한 두 줄 끝나고 마는데,
오늘 소개할 입다는 사사기11장과 12장 두 장에 걸쳐 나오니까, 기록으로만 봐도 괜찮았던 사사였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입다 사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힘과 용기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통해, 우리에게 환경을 극복할 용기를 주셨습니다.
입다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한 마디로 옛 조선의 홍길동과 비슷한 사람입니다.
비슷하다 못해, 거의 같다할 정도의 인물입니다.
본문을 읽다보면, 마치 홍길동전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먼저, 홍길동이나 입다나 태어난 처지가 참 비슷합니다.
입다의 어머니는 기생이었습니다. 홍길동도 서얼(庶孼) 출신이었습니다.
즉 본부인의 아들이 아니라 첩의 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둘 다 그런 신분 때문에 사회적으로 어떤 일도 시도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적자(嫡子)들, 즉 본부인의 형제들에게 따돌림도 당했습니다.
완전 이지메를 당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집에서 쫓겨납니다.
여기까지 입다나 홍길동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홍길동은 그 후 어떻게 되었지요. 활빈당이라는 의적 무리를 이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입다도 그와 비슷한 무리의 리더가 됩니다.
사실 가정환경, 건강, 출신 등에 있어 장애가 있는 것은, 직접 당해보지 않으면 그 어려움을 잘 모릅니다.
그저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려야 하고,
또 한숨을 내 쉬어야 하는지 본인 외에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입다는 그렇게 집에서 쫓겨나 외롭고 처량한 세월을 보냅니다.
입다가 집을 떠나서 살게 된 곳은, 돕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살기 힘든, 산악지대였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설움과 외로움 때문에 눈물 꽤나 흘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한심한 처지에 있는 그에게, 잡류(雜類)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잡류란, 일정한 직업이 없이 떠도는 불량배를 말합니다.
요즘 흔히 쓰는 말로 건달이요 깡패요 백수입니다.
이들이 입다와 함께 모여 무엇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본문1절에 입다를 소개할 때,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은 이곳에서 무술(武術)을 배우고 연습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처음에는 나쁜 마음으로 "에이 ! 이 놈의 세상, 언젠가는 확 뒤집어엎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힘을 키웠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언젠가 귀한 쓰임 받겠지 하면서, 무술을 배웠을 것입니다.
고국을 떠나 이곳에 있는 우리들 환경도,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 중에는 아주 넉넉하거나, 재벌 부모를 둔 분은 없습니다.
대부분 부모님께 더 이상 도움 받을 입장이 못되어,
일본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와 지체들까지 섬기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
그러나 환경은 원망하거나 아파한다고 어떻게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환경에 파묻히게 되면,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과감히 부딪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환경을 이기려고 한다면, 방법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야베스는 이렇게 환경을 이겨내었습니다.
역대상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기도하십시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이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 사실 어려운 환경이란 것은, 오히려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처한 환경이 어려우십니까, 시험이 되십니까 ?
그렇다면, 이제 그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키시려고 마련하신 코스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모든 환경의 장애는, 오히려 축복의 통로로 변화될 것입니다.
자 ! 본문의 입다를 보겠습니다.
자신의 어려운 환경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꾸준히 준비한 입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
당시 이스라엘이 갑작스러운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암몬이 쳐들어 왔는데, 그들과 싸울 수 있는 군사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장로들이 용사들을 찾기 위해 온 이스라엘을 삳삳이 살핀 결과,
돕 땅에 있는 입다의 무리들의 소문을 듣게됩니다.
다급한 길르앗 장로들이 입다의 무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요청합니다.
본문6절, "우리가 암몬 자손과 싸우려 하니, 당신은 와서 우리의 장관이 되라"
이 말을 들은 입다는, 잠시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며 서운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본문9절,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이제 너희가 환난을 당하였다고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아마도 입다는 설움에 북받쳐 울면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러나 입다는 그 눈물과 함께, 자신의 과거의 한을 다 묻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그들과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고, 그들의 군대 장관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어차피 우리 삶에는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은,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외모나 출신이나 피부색이나 가난한 부모를 만난 것이나 이 시대에 태어난 것 같은 그런 것들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고 넘어서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었을 때 더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환경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맙시다.
오히려 그 어려움을 두 손으로 붙들고, 기회로 삼읍시다.
입다처럼 환경을 이겨내고, 쓰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준비해서,
결국엔 큰 일을 이루어내는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리더에로의 부름에 순종한 입다에게 큰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입다는 리더에로 부름을 받고, 이스라엘 군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암몬 족속을 쳐서 이겨야 할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모두들 곧 큰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입다가 싸움보다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외교적인 노력에 먼저 힘을 기울였습니다.
왜냐하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2절을 보면,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 그럽니다.
그랬더니 암몬 왕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13절, "암몬 자손의 왕이 입다의 사자들에게 대답하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아르논에서부터 얍복과 요단까지 내 땅을 점령했기 때문이니, 이제 그것을 평화롭게 돌려 달라"
이에 입다가 다시 사자를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15절, "이스라엘이 모압 땅과 암몬 자손의 땅을 점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면서 본문16-23절까지 아주 장황하게 과거의 역사를 서술합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봐라. 우리가 너희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다.
단지 가나안까지 들어가기 위해서 길을 좀 내달라고 했을 때, 너희가 길을 내주지 않았다.
우리가 싸울 수 있었지만 우회해서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무슨 말이냐 ?
헤스본과 아모리 족속만 우리가 멸했지 너희 암몬과 모압은 손도 안 댔는데 지금 웬 말도 안 되는 트집이냐 ?"
입다는 아주 정확한 역사적 지식을 가지고 암몬 왕을 설득합니다.
그러다가 본문26절에 가서는 암몬에게 결정타를 먹입니다.
본문26절, "이스라엘이 헤스본과 그 마을들과 아로엘과 그 마을들과 아르논 강가에 있는 모든 성읍에 거주한 지
삼백 년이거늘, 그 동안에 너희가 어찌하여 도로 찾지 아니하였느냐 ?"
이런 말입니다.
"그래, 좋다 백 번 양보해서 너희들 땅이었다고 치자. 그런데 지난 3백년 동안은 가만히 있다가,
지금에 와서 땅을 돌려달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
그렇습니다. 국제법에도 점유권을 인정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그런 상식과 일반적인 법 정신을 바탕으로 암몬 왕을 설득합니다.
그렇습니다. 입다는 결코 싸움에만 능한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역사적인 안목과 외교적인 설득력에다 명분까지 끌어낼 줄 아는 아주 비범한 지도자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야성적인 요소와 지성적인 요소를 겸비한 지도자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름에 순종한 입다에게 큰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 능력도 주십니다.
동역자도 붙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그리고 모세는 그 지팡이를 통해 수많은 능력을 행했습니다.
애굽의 하수를 피로 변하게 했으며, 개구리 재앙을 일으키게 했고, 이 재앙을 일으켰으며,
홍해를 갈랐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게 했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모세처럼 입다처럼 하나님께 부름 받은 일군입니다.
하나님의 일군은 하나님의 사명자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하나님의 사명자들에게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을 주십니다.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믿음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부르심에 순종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믿음의 눈을 주셨습니다.
입다는 암몬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24절, ".......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이든지 쫓아내시면 그것을 우리가 차지하리라"
그렇습니다. 입다는 인류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역사를 통해, 역사를 운행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입다는, 역사 속에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사람이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도달하는 결론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이루어진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의 능력이며 힘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면서, 가장 가슴아파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
물론입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습니다.
독생자의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 분 안에만 있으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때 보면, 우리는 전혀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믿음의 눈을 크게 떠야 합니다. 눈이라고 다 눈이 아닙니다.
신앙의 눈과 불신앙의 눈의 차이는 민수기13장의 열 두 정탐꾼을 보면 압니다.
불신앙의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
"우리는 그 백성을 이기지 못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우리는 메뚜기다"
그렇습니다. 불신앙의 눈을 가지고 있으면, 항상 시험과 어려움을 과장합니다.
자기가 당한 일을 사정없이 부풀립니다.
왜요 ? 그래야 자신이 세상과 타협하는 이유를, 둘러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앙의 눈을 가진 사람은 꿈을 과장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크게 합니다.
그런 사람이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민수기14:8-9,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이들이 가나안 족속을 뭐라고 부릅니까 ? '먹이' '밥'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 밥을 보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
"아 ! 공포의 밥 !" 그러면서 부들부들 떠는 사람 있습니까 ?
"이게 웬 밥이야 !"하면서 맛있게 먹기에 바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태도를 바꾸십시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눈으로 봅시다.
믿음이란 우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불가능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얻겠구나"하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주셨습니다.
그 눈으로 여러분의 땅을 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입다를 통해 우리에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용기와 힘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 환경에 웃고 울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다 믿음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입니다.
어려운 환경이란 것은, 우리에게는 오히려 축복의 통로입니다.
우리 기도하십시다. 부르짖어 기도하십시다. 야베스처럼 아버지 하나님께 아룁시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에게 환경을 이길 힘과, 또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리더에로의 부름에 순종한 입다에게 큰 지혜를 주신 것처럼,
이 땅의 복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우리들에게, 큰 지혜와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다에게 믿음의 눈을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믿음의 눈을 주셨습니다.
우리 그 믿음의 눈으로 이 땅을 바라봅시다.
본향의 미래와, 여러분의 기업의 미래와, 가정의 미래와, 자녀들의 미래를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주신 축복,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이 시대의 큰 영웅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