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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4 2014년2월9일, 요한복음13:34-35(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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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804回 日時 14-02-17 15:35

本文

  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다짐합시다.

  靈的으로, 니느웨 사람과 같은 지체들을 향해, 사랑으로 나아갑시다.
  우리 본향교회에서는 정말 부족한 분들, 인간적으로 보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분들,
  세상에서 버림 받은 분들이 오히려 대접받고 높임 받아야 합니다.
 
  골고다 십자가의 수난을 하루 앞둔 저녁,
  예수님의 마음은 참 무겁고 착잡(錯雜, 갈피를 잡기 어렵게 뒤섞여 어수선함)하셨을 것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한 가지는,
  아직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가시고자 하는 '십자가 고난의 길'을 깨닫지 못하고,
 "서로 누가 더 크냐(높으냐)"하며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복음22:44,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더구나 제자들의 이러한 다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마가복음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누가복음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이제 하루만 지나면, 예수님은 그 제자들의 곁을 떠나셔야 했습니다.
  지난 3년 간, 예수님은 그 제자들의 방패이셨고, 중심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면, 제자들은 서로 힘을 모아,
  자신들에게 닥칠 수많은 고난들을 이겨내고,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서로 누가 높으냐는 다툼을 일으키는 그들을 보니,
  예수님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식사하는 자리에서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는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요한복음13:4-6,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한참 "누가 높으냐, 누가 크냐" 다투던 제자들이었기에,
  자신들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섬김에, 적지 않게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멈추시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가 높으냐, 누가 크냐고 다투고 있었기에, 먼저 낮아지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시몬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조금은 달랐습니다.
  요한복음13: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베드로의 발도 씻기셨습니다.
  요한복음1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기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13:12,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왜 ! 너희들의 발을 씻겼는지 아느냐는 말씀입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3:13-15,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새로운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제 곧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던, 엄청난 어려움과 고난을
  당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장 어려울 때, 그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역시 사랑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에게는 사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분명합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기가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웬만한 어려움은 다 이겨내는 특별한 힘을 발휘합니다.
  에멧트 팍스는, 이런 사랑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란 없습니다.
  충분한 사랑이 치료할 수 없는 병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열 수 없는 문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건널 수 없는 해협도 없고, 충분한 사랑이 뉘우치게 할 수 없는 죄도 없습니다."
 
 "근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앞날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보여지는 지도, 매듭이 얼마나 단단한 지도,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충분한 사랑은 이 모든 것을 녹여버립니다.
  충분히 사랑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충분히 사랑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사랑을 받는 그 사람이, 어떤 어려움도 이기게 합시다.
 
  어떤 작은 정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정원에 나가서 나무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을 즐겨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나무가 생기를 잃고 점점 시들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것 때문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한 정원사에게 찾아가서
  자기 집 나무를 좀 봐 달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원사는 나무를 이리저리 살핀 후, 이런 진단을 내렸습니다.
 "나무가 이렇게 시드는 이유는, 토질이 좋지 않거나, 나무에 무슨 병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을 너무 조금씩 주어 그런 것입니다."
 "물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나무는 오히려 병이 듭니다.
  큰 나무는 물이 뿌리까지 깊이 스며들도록 잔뜩 부어 주어야 합니다.
  물을 조금 뿌리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물을  흠뻑 주어야 잘 자랄 수 있습니다."
 
  여러분 ! 나무만 그렇겠습니까 ?
  우리 사람도 사랑을 흠뻑 먹어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흠뻑 사랑합시다.
  찔끔찔끔 사랑의 흉내만 내는 것은,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할까요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에 대한 답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첫째, 우리가 사랑할 대상은,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부터입니다.
 
  본문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
  본문35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은 거창하게 인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른 누구를 생각하고 사랑하기에 앞서,
  지난3년을 동고동락한 제자들 상호간에, 사랑하며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대단한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는 아내나 남편, 자녀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함께 예배드리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구태여 멀리 있는 사람을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C. S. 루이스가 이런 말했습니다.
 "한 개인을 사랑하는 것보다, 인류를 사랑한다고 하는 거창한 타이틀을 열렬히 사랑하기 쉽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한 변명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온전한 사랑의 시작입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사랑하지 못하면, 그는 결코 진정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에리히 프롬 역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한 사람을 사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전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나는 너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너를 통하여 전 세계를 사랑하고,
  너를 통하여 동시에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슨 말입니까 ?
  이것입니다. 남편이 옆에 있는 아내를 보고, "여보 !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그 아내는 남편을 통해 전 세계를 사랑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요한일서4:20-21,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그렇습니다.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온전히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서로 사랑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 다음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요 ?

  이 역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분명한 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답은 이것입니다.
  본문34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 !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 받을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돌팔매질을 당해서 죽었어야 할 죄를 용서해 주셨고,
  집 나간 자식 같은 우리들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그 때에, 그 현장에서 우리와 함께 신음하셨고,
  함께 우시기까지 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한 방울의 피, 한 방울의 물까지 다 쏟아 부으시면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
  도저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다 포기하지 말고,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으려고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실행할 수 있도록, 간구하고 또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 한 가지씩이라도 구체적으로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막연히 사랑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있다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실천에 옮겨야 비로소 사랑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이 꼭 행하여야할, 세 가지 사랑을 전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 위로해야 합니다.
 
  골고다 현장에서 넋을 잃고 돌아온 제자들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다 실패자요, 배신자요, 비겁자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스스로를 지탱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한 좌절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때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 정말 지치고 낙담한 자에게는, 위로의 말 한 마디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낙심하고 지치고 좌절에 빠진 사람에게, 진심이 가득 담긴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
  마음이 가득 담긴 격려의 말 한 마디는, 참으로 큰 힘이 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잠시 옆의 지체를 바라보십시오.
  지난 한 주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
  이 시간, 옆에 계신 지체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1분 동안 기도합시다.
 
  자 ! 이번에는 옆에 계신 그 지체에게, 한 마디의 위로의 말을 전합시다.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시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주고받으시기 바랍니다.
  위로의 그 한 마디가 어쩌면, 우리 인생의 커다란 분기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따뜻한 말 한 마디의 위로는, 정말 굉장한 힘이 됩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를 위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가까운 분들을 위로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안에서 부탁합니다.

  둘째,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제자들의 처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지켜 본 그들은, 혹 대제사장의 무리들과 로마 당국자들이,
  자신들도 잡아 처형하지 않을까 하여, 무진장 두려웠을 것입니다.
  분명 제자들은 다락방 문을 닫아걸고, 두문불출(杜門不出)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 갑자기 마태가 베드로를 보고,
 "당신은 자칭 수제자가 아닌가 ?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해 ?
  당신이 사람인가 ?"하면서, 책망하고 비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리고 또 다른 제자가 요한에게,
 "자네는 말이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바로 옆에까지 가서 서 있지 않았는가 ?
  거기서 뭐하고 있었는가 ? 대제사장과 좀 안다면서,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를 쓰지 못했나 ?"
  하며, 공격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또 야고보와 요한이 베드로를 향해,
 "네가 그때 바닷가에서 그물을 끌어올릴 때, 도와달라고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오늘 이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을 꺼야 !"라고 비판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이렇게 서로 남의 탓만 했다면, 결코 마가의 다락방의 성령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저 지울 수 없는 상처만 안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용서'라고 하는 것을, '공동체 생활의 접착제'라고 말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용서가 넘치는 공동체는, 절대 흩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용서가 넘치는 부부는, 결코 서로 나누이지 않습니다.
  용서가 넘치는 가정에서는, 결코 비뚤어지게 자라는 자녀들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용서가 메마른 가정, 공동체는 결국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서로 용서합시다.
  아무리 못나고 무능한 목사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구역장님이 섬김을 잘 못하고, 또 유머감각이 없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용서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셋째,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끝으로 서로 인내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13장에 보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면서,
  인내를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 모든 것을 참으며 .......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또한 옛 속담에,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참아 주는 것, 기다려 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참 성격이 급한 편입니다. 좀처럼 차분히 기다려주지를 못합니다.
  예를 들면, 횡단보도에서 빨간 신호가 파란 신호로 바뀌기 무섭게 건너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것이 삶의 모든 습관에 젖어들어, 아내에게도 잘 못 기다려 줍니다.
  하영이와 하민에게도 좀처럼 기다려 주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더 좋은 모습을 위해 노력하고 힘쓰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잘 참고, 잘 기다려 줍시다. 그것이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첫걸음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꼭 실천할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참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한 두 번 실천하고 말 것이 아니라, 한 평생 계속 되어야 합니다.
  참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
  이러한 사랑을 하기 위해,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만,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서 하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도 있는 옛 계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새 계명'이라고 붙인 것은,
  은혜를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은혜를 받으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매일 아침마다 이 은혜를 구하며 기도합시다.
 "하나님 ! 위로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위로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
 "하나님 ! 용서하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용서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
 "하나님 ! 참고 기다려주는 하루가 되게 해 주세요. 인내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하며 사랑하는 우리에게, 감당할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으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본문34-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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