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014년5월4일, 마가복음6:17-28(우리 ! 이 시대의 바른 어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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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과 환란을 이기라고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 세 가지 무기는, '용서'와 '믿어주는 것'과 '기도'입니다.
우리 이 무기들을 갈고 닦아, 세상도 이기고 환란도 이겨냅시다.
지난 4월 한국에서 있었던 여객선 침몰사고는,
유가족과 한국사회와 한국국민은 물론,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어른들의 말만 믿고 묵묵히 선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한 수백 여명의 학생들에게는, 같은 어른으로서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하고,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가 초창기에, 사명감당 및 부흥과 관련하여,
가장 많이 기도했던 기도제목이 무엇인지 혹 아십니까 ?
교회가 설립된 후 약2년이 지나면서부터,
초창기 본향성도들이 가장 많이 기도했던 것 중 하나는, "어른을 보내주시옵소서"였습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첫 예배를 드렸을 때,
총 8명이 예배를 드렸는데, 50대 1명, 40대 1명, 30대 4명, 20대 1명, 어린이가 1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본향교회가 1주년 예배를 드렸을 때,
50대 2명, 40대 2명, 30대 8명, 20대 13명, 어린이가 3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본향교회가 2주년 예배를 드렸을 때는
50대 2명, 40대 1명, 30대 7명, 20대 19명, 10대 및 어린이가 8명이었습니다.
역시 우리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도 연세든 분들이 적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어른이라 함은, 몇 살 이상이 되어야 어른입니까 ?
한국 국어사전에는 '어른'에 대한 설명이 이렇습니다.
[成人, 大人, 혹은 장가들거나 시집간 사람]
그리고 일본 국어사전에는 '大人'에 대한 설명이 이렇습니다.
[一人まえになった人, 十分に成長した人]
그렇습니다. 특별히 어른에 대한 나이의 기준은 없습니다.
다만 한국 사전에는 '장가들거나 시집간 사람'이라 했습니다.
몇 해 전, 유니세프에서 한국, 일본,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17개국의 청소년 1만 명을 대상으로
어른 존경도(尊敬度)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여겼던 한국에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한국 청소년 중 "어른을 매우 존경한다"라고 응답한 청소년들의 수치는 겨우 13%로,
17개국 중 꼴찌였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wy93&logNo=70087825888
다른 16개 국가들의 평균수치는 73%였습니다.
또한 교사를 존경하는 수치 역시 꼴찌였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위인들을 존경하느냐에 대한 것도, 매우 부정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대부분의 한국 청소년들은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심각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에 정말 어른다운 어른이 있어서,
그 어른을 존경하고 흠모하고 닮으려고 애쓰면서 성장해나가야 정상인데,
언제부턴가 그런 어른들이 주위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신앙적인 면에서도 동일합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신자는
말씀, 찬송, 기도, 예배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신앙적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이 느끼고, 또한 그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느끼고 성장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초신자가 신앙적으로 존경할 수 있는 '좋은 어른신자'를 만나면,
그 초신자는 훨씬 더 빨리, 그리고 아름답게 신앙의 성장을 이루어내어,
그 역시 금방 좋은 어른신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의 어른들은 누구입니까 ?
5, 60대의 성도들이 어른입니까 ? 아니면 결혼한 성도들이 어른입니까 ?
아니면, 成人의 나이가 된 20대 이상의 모든 성도들이 어른입니까 ?
이 시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는, 지금부터 본향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히 어른입니다.
우리가 그들 보다 먼저 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보고 성장할 것입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는 본향교회의 어른이다."
여러분들에게, 아니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한 어른, 좋은 어른입니까 ?
저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모두가, 진정한 어른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3:17절에서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 받으라"라고 담대히 외친 것처럼,
우리도 "나를 본 받으세요"라고 외칠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하겠습니다.
헤롯 안티바스는 갈릴리와 베뢰아를 통치하는 왕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빌립이라는 이복(異腹)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해 그가 로마에 있는 동생 집을 방문했다가 동생의 아내(헤로디아)를 보고 한 눈에 반합니다.
그래서 제수(弟嫂)를 유혹하여 마음을 빼앗고 맙니다.
그리고는 결국, 제수를 자기 동생과 이혼시키고, 자기 역시 본부인과 이혼하고는 둘이 결혼을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이 일을 두고, 세례 요한이 강하게 헤롯과 헤로디아를 책망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둡니다.
또 다른 당사자였던 헤로디아가, 더더욱 세례 요한을 괘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롯의 생일을 맞아,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왕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당시 살로메의 나이는 17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춤이 얼마나 훌륭했던지 헤롯 왕이 살로메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마 !"
이에 살로메가 어머니에게 갑니다.
"어머니 무슨 소원을 말할까요 ?"
어머니 헤로디아는 살로메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라 합니다.
헤롯은 참으로 난감했지만 결국 자신이 약속한 것이므로,
그녀의 말대로 세례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 주고 맙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참으로 비도덕, 사악함, 끔찍함 등등이 다 모인, 악한 사건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
세례 요한인가요 ?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비록 죽음을 당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복중 하나인, 순교의 복을 차지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살로메입니다.
왕이 놀라 "무슨 소원이든 들어 주겠노라"할 정도이면, 분명 살로메의 춤 솜씨는 대단했을 것입니다.
아주 어려서부터 배웠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춤을 잘 추는 것은 좋은 경쟁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재능을 사람을 죽이는데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살로메에게 헤롯 왕은 어떤 사람입니까 ?
그렇습니다. 자기의 친아버지를 빼앗아 간 사람이 헤롯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어머니에게 길들어진 살로메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헤롯을 대합니다.
살인을 저지릅니다.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자기의 좋은 재능을, 썩어질 욕망을 위해 사용하고 맙니다.
나중에 이 살로메가 어떤 인생을 삽니까 ?
자기 작은 아버지 필립2세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이혼을 하고 나서는 다시 아리스토불루스란 자기 사촌과 결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살로메가 왜 이런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녀의 주위에는 어머니를 포함해 좋은 어른, 진실한 어른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른들은 그녀를 이용하기만 했습니다.
또한 헤롯왕을 보십시오. 그래도 왕이 아닙니까 ?
한 나라를 책임지는 왕이, 철없는 아이가 사람의 목숨을 달라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
왕의 권위와 어른다운 품위를 가지고 "너 그게 무슨 소리냐"하며 꾸짖어야 하지 않습니까 ?
그런데 지금 그는 그럴 처지도 못 됩니다
왜냐하면 그 배후에는 자기가 한 가정을 깬 잘못도 있고,
또 이런저런 정치적 상황이 얽혀있어서 헤로디아의 말을 안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어른답지 못한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을 잘못 되었다고 꾸짖을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이 헤롯의 초라한 모습이 지금 이 시대 어른의 모습은 혹 아닙니까 ?
이 모든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한 헤롯의 신하들은 또 어떻습니까 ?
그들 역시 진정한 어른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헤롯도, 헤로디아도, 신하들도
어린 살로메에게는 결코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진정한 어른이 있었습니다. 누구일까요 ?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여러분 ! 세례 요한은 어떤 부분에 있어 진정한 어른일까요 ?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본향의 모든 성도들이, 세례 요한과 같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세례 요한은 절제 하며, 사명을 감당하여 본을 보이는 어른이었습니다.
마태복음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石淸, 꿀)이었더라"
세례 요한은 본래 제사장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아버지 뒤를 이어서 제사장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제사장이라고 해서 크게 호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즘 식으로 말하면,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자리를 스스로 박차고 나갔습니다.
금욕과 절제만이 요구되는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
그것은, 자신을 향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순종한 때문입니다.
마태복음3:3,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또한 자신이 절제의 삶을 살았기에,
당시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담대히 외칠 수 있었습니다.
누가복음3:11,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이 시대의 비극이 무엇입니까 ?
수없이 많은 강단에서 "거룩하십시오 ! 절제하십시오 ! 순종하십시오 !"하며 말씀이 외쳐지고 있지만,
감화력이 부족합니다.
왜 그렇습니다. 本을 보이지 못하고 주장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지만, 오늘날 일부 교회의 성도들이 설교를 들을 때
"그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나 잘하세요 !"라는 마음으로 듣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는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어른다운 삶을 사는 것을 그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본향에서 어른의 사명을 감당하실 여러분 !
요한과 같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절제합시다.
행동을 절제하고, 말을 절제하며, 돈을 사용하는 것도, 시간을 사용하는 것도 절제합시다.
그리고 그 절제하여 모아진 것들을 이웃을 위해 사용합시다.
분명 우리교회는 진정한 어른과 그것을 배운 이 시대의 꿈나무들로 가득 찰 것입니다.
둘째, 세례 요한은 예수님만을 높이는 삶을 산 어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주신 사명은 "主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主님의 길을 평탄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례 요한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외칩니다.
요한복음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마태복음3:11,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렇습니다. 그 외침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삶을 살았습니다.
본향의 어른이 되시는 사랑하는 여러분 !
영적인 어른이 가져야 할 가장 대표적인 덕목은, 바로 '예수님을 가장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분을 높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우리의 자녀들에게, 또한 본향을 처음 찾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가장 귀히는 여기는 어른들로 비춰지고 있습니까 ?
혹시 자신의 감정, 자신의 자식, 혹은 자신의 건강, 직장, 학교, 아르바이트, 돈, 사랑하는 애인이
가장 귀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우리를 통해 잘못된 것을 배우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정말로 많다고요 !
또한 세례 요한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1:15,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
어디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다고요 ? 그렇습니다. 모태로부터입니다.
어머니로부터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본향교회에 나오기 전부터,
즉 세상에서 행동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미 영향을 받기 시작합니다.
마치 태어나기 전의 태아(胎兒)가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영향을 받는 것처럼 말입니다.
본향의 어른이 되시는 여러분 ! 예수님만을 높이십시다.
그리하여, 새롭게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칩시다.
셋째, 세례 요한은 악(惡)한 것을 惡하다고 하는 어른이었습니다.
분문18절,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옛날 왕이 통치하던 시대에는, 왕의 말이 곧 법이었습니다.
왕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왕은 사람의 생명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헤롯 왕의 잘못을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사람 눈치 안 봤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날 세상이 왜 점점 부패해 갑니까 ? 왜 어지럽습니까 ?
그것은 악과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점점 사라져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바른 소리 했다간 불이익이 돌아오니까 몸을 사립니다.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벌벌 떨면서 꼼짝도 못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늘날 어른들이 모습입니다.
그럴 때 다윗처럼 분노를 가지고 벌떡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입니다.
여러분 ! 오늘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 외에 五萬 가지를 다 두려워합니다.
결코 이런 사람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시대를 향한 정의감을 갖는 것이고,
그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두려워 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시간 세례 요한이 가졌던 그 공의(公義)의 열정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 중에 혹시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
예수님은 10대 때부터 집안 일(목수)을 살폈으며,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33세 때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다윗은 17세 나이에 골리앗과 싸워 이겼습니다. 그는 이렇게 불의를 향해 외쳤습니다.
사무엘상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사무엘상17:47,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요셉은 30세에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이 두려워 떨자 그들을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창세기45:7-8,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소년 다니엘 역시 뜻을 정하여 우상의 제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다니엘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칼빈은 1536년, 그의 나이 27세 때에 기독교 최대의 신학서적 중 한 가지인,
기독교강요의 초판을 완성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혹 우리들은 지금도 어른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
혹 지금도 "본향교회에 어른들을 보내주세요"하며 기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지난 몇 년 간 본향을 지나간, 나이와 인생의 경험 면에서 어른들이라 여겨졌던 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 들 중 진정한 어른이 얼마나 있었습니까 ?
저는 오늘 함께 한 우리들이, 본향의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확실히 믿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오늘 소개한 세례 요한을 깊이 생각합시다.
첫째, 세례 요한은 절제 하며, 사명을 감당하여 본을 보이는 어른이었습니다.
둘째, 세례 요한은 예수님만을 높이는 삶을 산 어른이었습니다.
셋째, 세례 요한은 악(惡)한 것을 惡하다고 하는 어른이었습니다.
세상 권력과 힘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았던 어른이었습니다.
여러분 ! 세례 요한을 배웁시다. 그래서 참답고 미더운 어른의 모습으로 우뚝 섭시다.
우리 모두 !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본받고 싶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되십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또 하나의 세례 요한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