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4월26일, 고린도후서4:18-5:5(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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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마우제크)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고 귀한 곳으로 올려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하여, 하나님 말씀이 있는 곳에 나아갑시다.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말씀으로 회개하며, 말씀 따라 순종합시다.
아멘 !
요즘은 좀 줄어든 느낌도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교회, 혹은 목회자를 비판하는 사람이나 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부분도 많았기에,
우리는 이러한 비판들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옳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교회 비판에 특히 앞장서는 분들을 보면,
그들 중 몇몇 분들은 과거에 교회를 다녀본 경험이 있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그때의 교회생활, 혹은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만남을 가지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신앙의 겉만 본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분들일수록, 자기가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은, 마치 진정한 사랑 한 번도 못 해보고,
그저 정욕(情慾)과 조건(돈, 집안, 직장, 얼굴)만 보고 결혼했던 어떤 이혼 부부가,
진정한 사랑과 가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비판하고, 가정은 필요악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과거 교회를 조금 다녀본 것 가지고,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름다운 신앙의 체험도 못했으면서, 또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교회와 성도들을 비판합니다.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사실들이, 저에게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왜냐하면, 절대로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혹 우리 중 누구도 머지 않은 훗날, 자칫 하나님과 교회를 비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가장 큰 목적은, 무엇 때문입니까 ?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얻겠다고,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
만약 이 질문에, 금방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없는 분이 계시다면,
자칫 그분은 참 신앙의 자리에서 미끄러져서, 비판자가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저는 오늘부터 몇 주에 걸쳐, (간절한 소원을 담아) '기독교의 본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과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마음 모아 전하고자 합니다.
부디,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에 집중하여,
기독교의 본질,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들을 마음에 새겨,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자 ! 본격적인 말씀을 시작하면서, 다시 또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영원(永遠, forever)'을 믿으십니까 ?
혹 '영원한 것'에 대해, 고리타분하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
영원한 사랑 !?
영원한 진리 !?
영원한 행복 !?
영원한 생명 !? .......
이러한 단어를 마음에 떠올릴 때, 이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으십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저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말합니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진리,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더구나 '영원한 세계'도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죽음 다음의 세계는 반드시 여러분과 저 앞에 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7∼80년의 삶은,
우리가 앞으로 살 영원한 시간들에 비하면, 전체의 억만 분의 일도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은, 잠시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고 마는 안개처럼, 참으로 짧고도 짧습니다.
그렇다면, 안개와 같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일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10:28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가야 할 나라는 어디입니까 ?
우리들 신앙의 최종 목표는 어디입니까 ?
그렇습니다. 영원한 나라, 영원의 세상이며, 우리 주님이 계신 곳인 '소망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서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
이 말씀에는 중요한 두 가지 진리가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고,
둘째,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부디 눈앞에 것만 바라보는 현실 지향적인 삶을 살지 말고,
영원한 것을 더욱 귀히 여기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 그렇다면,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
첫째,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바로 앞은 물론 영원한 것을 봅니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마사 그레이엄은 현대무용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1991년 97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도, 쉼 없이 작품을 구상하고, 가르치고
직접 무대 위에서 공연을 했던, 그 왕성한 활동력과 열정 때문만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도 훌륭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은,
수 백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던 고전 발레의 틀을 깨어버린 데 있습니다.
그녀는 1894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린 그레이엄을 불러, 컵 속에 있는 물을 보게 했습니다.
그것은 수정처럼 맑은 물이었습니다.
곧 이어 아버지는 그 물 한 방울을 현미경에 떨구어 놓고, 딸에게 그 속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 본 물 속에는 수많은 균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맑게 보였던 물인데도 말입니다.
그레이엄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레이엄 ! 너는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표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린 그레이엄 마음 속에 이 말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그레이엄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웃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슬픔이, 딱딱한 품위 속의 위선이,
친절 속의 분노와 증오가, 무지함 속의 순박함이 보였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자신은 뚜렷이 볼 수 있는 진실을, 말로는 쉽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무용을 택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말보다 무용이 더 편한 자기표현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본 감추어진 진실을 나타내기에는, 고전 발레의 틀은 너무나 좁고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하게 고전 발레의 틀을 깨어버리고,
현대무용의 막을 올리는, 전설적 인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보이지 않는 영원(永遠)을 보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간과 공간에 지배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그것은 이미 쇠퇴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보이는 형체를 가졌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표현대로 한다면, 그것은 '잠깐' 후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저는 어릴 때부터 별과 우주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중 가장 관심 깊었던 분야는 우주의 크기였습니다.
가장 최근의 주장으로 우주의 크기는 약950억 광년(光年)입니다.
1光年이라함은 빛이 1년 동안 달려가는 거리로서 약9조5천억km입니다.
(참고.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돕니다 -> 秒速 약30만km)
그러므로 우주의 크기를 km로 계산하면,
95,000,000,000 x 9,500,000,000,000 = 902,500,000,000,000,000,000,000km입니다.
정말 엄청난 크기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도 우주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에서 300光年 떨어진 별은 1시간에 36,000km씩 지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무지하게 큰 우주는, 바로 이 순간도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속도로 커지고 있다는 것은,
커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주는 지금 풍선처럼 커지고 있다하는데,
풍선이 커지려면 커질 공간이 있어야 커지는 것 아닙니까 ?
무엇인가가 가로막고 있으면 풍선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지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주가 커진다. 그렇다면, 그 우주의 밖은 무엇인가 ?
제가 우주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또 다시 한 발자국을 디디면, 그곳은 우주가 아닌가 ?
결국 과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우주는 무한하다고, 우주는 영원하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영원한 공간인 우주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만 쳐다보고, 그 뒤에 펼쳐진 놀라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삶을 버립시다.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우주, 영원한 사랑, 영원한 진리,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우리가 됩시다.
둘째,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영원을 위해 심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무엇을 심든지 심은 것을 거둔다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의 법칙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이 말씀의 지적처럼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이요,
'하나님을 향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음악을 하는 분들에게 들어보면,
연주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는 연습시간에 있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그거야 당연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연주자가 미리 연습을 하게 되면, 연습은 또 다른 연습을 부르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연습할 것이 많아지고,
연습을 안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연습할 것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하기는, 연습을 잘 안 하는 사람은 연습할 것이 많을 것 같아도,
사실은 연습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연습할 분량이 늘어난답니다. 부족함을 느끼니까요 !
결국 실력은 연습의 분량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연습을 심는 자는 연습을 거두고, 거기서 실력이 탄생합니다.
그러므로,
봉사를 심는 자는 더 큰 봉사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님을 만납니다.
기도를 심는 자는 더 많은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님을 만납니다.
헌신을 심는 자도 더 많은 헌신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님을 만납니다.
사랑을 심는 자도 더 많은 사랑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님을 만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영원을 심으십시오. 영원한 것을 위해 심으십시오. 그래야 영원을 거둘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2:16-21에서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 부자는 생각했습니다.
"내 창고에는 이미 곡식이 가득하고, 또 이렇게 많은 수확을 얻었으니 어찌할까 ?"
"그래 지금보다 더욱 큰 창고를 지어, 나의 모든 재산을 그곳에 쌓아 두어야겠다 !"
얼마 후, 새로운 큰 창고를 짓던 부자가,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복음12:19,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표준새번역)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20,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표준새번역)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시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12: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표준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 영원을 위해 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영원한 것을 누리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주신 이유는, 영원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배를 주셨다면,
우리가 그 보배를 박물관이나 금고 속에 넣어두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보배의 힘과 기쁨을 누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도, 영원한 것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1>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품에 1000만 엔을 가진 사람은, 1000엔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또한 금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구리반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 우리에게 영원한 것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누리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것(예를 들면, 하나님, 천국, 영생)들을 이미 가졌으니까요 !
2>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참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경과 찬송에는 평화, 평강, 평안, 화평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모두 히브리어 '샬롬'과 헬라어 '에이레네'를 옮긴 것으로, 모두 같은 뜻입니다.
미국의 전도자 코넬은 자신 속에 평강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찬송가412장(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평안이란 없습니다.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모두 소멸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여러분 ! 소멸되고 없어지는 것을 통해서는, 어떤 평안도 솟아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코넬은 그 다음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코넬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화(샬롬, 에이레네)는 오직 위로부터,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만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함께 찬양 드립시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바보 모델이 아니라면, 모델은 자기가 입은 옷과 같은 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입은 옷 뿐 아니라, 자신까지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곧 없어질 세상의 것들로 배경을 삼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을 동시에 망치고 죽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것은 다 소멸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배경이 될 수 있는 분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을 배경으로 삼을 때에만,
우리도 살고, 또한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도 영원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1> 눈앞에 것만 바라보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봅시다.
2> 썩어 없어질 것에 심지말고, 영원한 것에 심읍시다.
3> 영원을 누리는 가운데, 지금 눈앞의 유혹을 이겨내고, 영원한 평안을 누립시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며 삽시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본문5절, "이것(영원한 생명, 행복, 기쁨)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평생을 썩어질 육신의 욕망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主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