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3월1일, 마태복음11:28-30(불필요한 짐들을 내려놓고, 主님 안에서 쉼을 얻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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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참되게 예배하는 자를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우리 !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거룩한 곳에서, 준비된 마음으로, 자녀들과 함께, 헌신하며 예배드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귀한 예배자가 됩시다.
여러분 ! 요사이 힘들지 않으십니까, 혹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십니까 ?
지난2012년, 한국 경기도의 관할에 있는 '경기개발연구원'에서 [스트레스 사회 한국 : 원인과 대안]
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수도권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수도권에서는,
시민들의 스트레스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연간 37조5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한국의 수도권 시민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1년에 약18조원을 사용했는데,
그것은 1인당 75만원쯤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은 어린이까지 포함한 수도권 전체 인구로 나눈 것이어서,
실제로 성인 한 사람이 약130∼140만원 정도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수도권 시민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한 달 평균 11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한국의 수도권시민들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었을까요 ?
위 조사에 의하면, 병원치료, 혹은 피부관리실에서 피부관리, 여행, 운동, 음주, 친구와의 수다, 쇼핑
등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했습니다.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은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초·중·고등학생에게는 과도한 학습 부담과 성적 경쟁, 부모의 기대와 체면유지 부담감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작용했습니다.
대학생은 진로(취업), 학비(생계), 학벌(스펙)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장 많았고, 기성세대는
노후대비와 주택마련을 위한 비용부담 때문에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혼직장인은 과도한 업무량과 적성 불일치로 인한 스트레스가 많았고,
기혼직장인은 동료와의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또한 부모세대는 생활비에 대한 부담, 축의금, 부의금 등 사회적 관계와 체면 유지비용 스트레스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우리는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을까요 ?
물론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짐을 지고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작든 크든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짐이란 것이, 시간이 갈수록 가벼워져야 되는데,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짓누르고, 그런 생활이 계속 되다 보니까, 좀처럼 안식을 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차곡차곡 스트레스로 쌓여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무거운 짐들로 인한, 많은 스트레스에 짓눌린 우리들을 향해,
오늘 예수님께서 큰 팔을 벌리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본문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者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疲れた者, 重荷を負う者は, だれでもわたしのもとに來なさい. 休ませてあげよう.)
사랑하는 여러분 !
평안한 안식을 약속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하여, 이번 3월 !
범사에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고, 활력이 넘치고, 응답이 넘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의 초청에 응해서, 예수님께 가면 왜 쉼을 얻습니까 ?
물론입니다. 예수님 앞에 우리들이 지고 있던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주신 가볍고 쉬운 짐으로 바꿔서 지기 때문입니다.
본문29-30절,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말씀을 통해, 불필요한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 버리시고,
예수님이 주신 가벼운 짐을 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 ! 그렇다면, 어떤 짐들을 내려놓아야 할까요 ?
첫째, 종교생활 가운데 생겨난, 비본질적인 짐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율법으로서 일반 백성들을 짓눌렀습니다.
마태복음23:2절에 보면,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자기들 마음
대로 해석해서, "우리가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하며, 일반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그들의 악행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힘든 '이상한 율법 조항'을 만들어 일반백성을 억압하되,
자신들은 그 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있었던 전해 내려오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유대의 한 작은 지방에서, 한 과부가 어린 두 딸과 함께,
조그만 밭을 경작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른 봄날, 그 과부는 착한 이웃에게 소와 나귀를 빌려, 들에 나가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서기관이 나타나 과부에게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 신명기22:10, "너희는 소와 나귀에게 한 멍에를 메워 밭을 갈지 말아라"
또 씨 뿌릴 때가 되니까,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기19:19, ".......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
또 추수할 때가 되니까,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 신명기24:19, "너희가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곡식 한 묶음을 잊어버리고 왔거든,
그것을 가지러 되돌아가지 말아라. 그것은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돌아갈 몫이다 ......."
레위기19:9,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가난한 자를 위하여)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마지막으로 타작을 하게 되자,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번제와 처음의 십분의 일, 또 그 다음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한다"
결국, 그 가난한 과부는 '이상한(?) 율법'에 순종하다 보니까,
생각보다 소득도 적었고, 그마나 거둔 것도 거짓 종교가들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 그 후, 이 과부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먹을 것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과부는 할 수 없이 밭을 팔아, 양 두 마리를 사서, 그 털로 옷도 마련하고,
또한 새끼 양을 낳게 해서, 그것으로 생활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제사장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레위기27:26, "오직 가축 중의 처음 난 것은 여호와께 드릴 첫 것이라. 소나 양은 여호와의 것이니"
그리고 얼마 후, 털을 깎을 때가 되니까 다시 나타나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 신명기18:4, "또 처음 거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처음 깎은 양털도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견디다 못한 가난한 과부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아 ! 수많은 율법들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구나 !"
그래서 그냥 그 양들을 잡아먹기로 결정합니다.
그랬더니 그때도 제사장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표준새번역 성경 신명기18:3, "백성이 소나 양을 제물로 바칠 때에,
제사장이 그들에게서 받을 몫이 있는데, 앞다리와 턱과 위는 제사장에게 주어야 한다"
그러자 그 과부는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이 양들을 잡아먹어도, 결국에는 제사장에게 빼앗기는 구나 !"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하나님께 다 헌물로 드리자 !"
그랬더니, 이번에도 제사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민수기18:14,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내 것이다"하면서
모두 가져가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우습지도 않은 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해서, 연약한 사람들의 것을 도적질한,
거짓 종교지도자들의 악행(惡行)을 고발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의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또한 오늘날에도
악한 지도자들이, 율법을 빙자하여 연약한 신자들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모든 것들은, 율법의 본질(本質)인 '하나님 사랑'은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못된 인간의 이익만을 취한, 참으로 악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바로 이런 비본질적인 짐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는 좋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부패하기 쉬운 음식과도 같습니다.
분명합니다. 영양가 높은 음식이 상하면, 더 센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변질되기 쉬운, 죄인 된 인간들의 모임입니다.
가장 상하기 쉬운 곳이 교회입니다. 상하게 되면, 냄새가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렇다면, 무엇이 신앙의 본질입니까 ?
그렇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우리를 포함한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主로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또한 사랑하며, 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행하는 많은 일들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 사랑,
또한 이웃 사랑과 관계가 없으면 그것은 비 본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힘쓰는 것 역시
우리가 담당해야 할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드리는 예배는, 우리가 감당할 중요한 본질입니다.
이웃 사랑을 위해 행하는 구제, 봉사, 섬김, 성도간의 교제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 비(非) 본질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배드릴 거룩한 곳이, 사람의 욕심을 채우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일부 교인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나옵니다.
사업 관계로, 혹은 돈 관계로, 혹은 남녀간의 연애로, 혹은 人脈형성을 위해,
혹은 자기(돈 지위 자식)자랑을 위해, 혹은 한국말 공부, 혹은 맛있는 식사 .......
더구나 이들의 특징은, 자기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교회를 비판하고, 함께 한 지체들을 비판하고,
또한 교회의 지도자들을 비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모든 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닌 비(非) 본질입니다.
만약 이런 것들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다면, 지금 당장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교회 안에서 결코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어서는 안 됩니다.
둘째, 세상 생활 가운데 지게 된, 무거운 짐입니다.
사실 현대인들이 지고 가는 짐은 참으로 무겁습니다.
더구나 그 짐들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짐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인간들에게 인생의 짐을 지우셨습니다.
창세기3:17,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우선, 직장생활 가운데 지게 된 짐들이 있습니다.
상사와 선배들의 무거운 눈초리의 짐, 동료들과의 경쟁과 비교의 짐,
더구나 가끔씩 찾아오는 인생의 좌절감은 참으로 무거운 짐입니다.
또한, 학교생활 가운데 지게 되는 짐들도 있습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이지만, 언어의 짐, 나이 차이의 짐, 등록금의 짐, 생활비의 짐 등
만만치 않은 짐들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무거운 짐을 진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29-30절, ".......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특히 여기에서 '나의 멍에를 메고'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쓰는 관용적 표현으로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표현한 말입니다.
즉, '나의 멍에를 메고'의 뜻은, '나의 제자가 되어서'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멍에는, 항상 둘이 같이 메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멍에를 함께 메어 주신다는 의미가, 깊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실, 철이 많이 든 사람일수록 삶이 힘듭니다.
대부분의 장남, 장녀는 철이 빨리 들어, 부모님, 가족, 친척 등 이곳 저곳을 살피느라 많이 힘듭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든 성도들은 철들지 않은 성도들의 짐까지 함께 져 주느라고 참 힘이 듭니다.
그런데 철든 성도들이 꼭 주의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칫 예수님이 지실 것까지, 자기가 지려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특별히 더욱 헌신하는 여러분 !
예수님이 붙들어 주고 계신 것까지, 자기가 책임지려 몸부림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 ! 무엇이 성공적인 직장생활이며, 성공적인 학교생활이며, 신앙생활입니까 ?
그렇습니다. 나의 가진 재능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결과까지도 자기가 책임을 지려합니다.
회사, 가정, 교회, 나의 성공, 자녀들의 삶, 이 모든 것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우리 주님께서 함께 져 주십니다. 이루어 가십니다.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어렵다고 합니까 ?
그것은 자녀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부모 자신이 책임지려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부모가 그렇게 한다고, 자식이 부모의 뜻대로 책임져집니까 ?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세상 생활 속에서 지고 있는 짐을, 예수님께서 함께 지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그것을 과감히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놀라운 주님의 평강과 안식이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우리들 어깨에는 여러 종류의 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첫째, 종교적으로 잘못된 비 본질의 짐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여러 가지 중에서 구원, 복음전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 관계가 없으면,
그것은 비 본질입니다.
만약 이것 외의 것들로 지쳐있다면, 과감히 그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본질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 삶 속에서 지고 있는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들입니다.
주님이 져주실 짐을, 우리가 대신 지고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고 있는 그 짐을 넘겨달라며 기다리십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래 전 시골마을에서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길을 가는데,
그 할머니 앞에 자동차가 섰습니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할머니는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습니다.
이제 차가 출발하는데, 할머니가 머리 위의 짐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습니다.
고마운 자동차 주인이 말합니다. "할머니 ! 짐을 의자 밑에 내려놓으세요."
할머니가 말합니다. "이런, 차를 태워주신 것도 고마운데, 짐까지 어떻게 맡겨요 ?!"
여러분 ! 우리들은 혹 어떻습니까 ? 혹 이렇게 생각하는 것 아닙니까 ?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구원해 주신 것 고마운데, 어떻게 내 짐까지 맡겨요 ?!"
성도여러분 ! 이렇게 우리의 삶의 자세를 바꾸면, 그 짐이 무겁지 않습니다.
성공을 위해 일하지 말고, 하나님 영광 위해 일하십시오.
승리를 위해 일하지 말고, 섬김을 위해 일하십시오.
내 자존심을 위해 일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일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들은 정직을 지킬 수 있고, 신의를 지킬 수 있으며,
비로소 세상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그리고 이번 한 주간, 주님의 이 간절한 초청에 모두 응답하셔서,
어느 해보다 활기차고 싱그러운 봄을 맞는 모든 본향성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