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2월22일, 출애굽기8:1, 25-32(우리의 예배를 막아서는 사단의 방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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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예언대로, 친히 대제사장과 제물(祭物)이 되셔서,
우리의 모든 없이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우리 主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死亡)을,
단 번에 정복하고 부활하신, 우리의 구세주(救世主)이십니다.
1517년 독일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순식간에 온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독일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1523년, 프랑스에서도 개신교도가 화형을 당하고 맙니다.
그로부터 약65년 간, 프랑스의 개신교도(위그노, Protestant)들은,
국가와 카톨릭교회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 프랑스 1차 박해를 멈추게 한 것이, 유명한 낭트칙령입니다.
낭트칙령은(Edit de Nantes),
프랑스 왕 앙리4세가 1598년4월13일 브르타뉴의 낭트에서 공포한 칙령인데,
이 칙령의 내용은 프랑스 안에 있는 위그노(개신교도, Protestant)들에게 신앙의 자유와
공공예배 드림을 보장하며, 박탈한 시민권을 다시 회복시켜 주는 매우 귀한 칙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낭트칙령을 1685년에 폐지해 버린 왕이 있습니다.
그는 루이14세(Louis XIV, 1638년9월5일∼1715년9월1일)입니다.
루이14세는, 카톨릭 중심으로 교회를 통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낭트칙령을 폐지하고 개신교들에게 강제적인 개종(改宗)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박해를 견디지 못한 개신교도 약30만 명이 프랑스를 떠나,
영국, 네덜란드, 그리고 아메리카 신대륙 등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프랑스를 떠난 개신교도들 대부분은,
당시 프랑스 경제를 지탱했던 프랑스 상공업의 중심세력들이었습니다.
결국, 낭트칙령의 폐지는, 프랑스 경제의 약화로 이어졌습니다.
그 루이14세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루이14세는 신앙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主日이면 어김없이 가족들과 더불어,
프넬론 대주교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상 그 교회는 빈자리가 없이 가득했는데, 하루는 대주교가,
교인들이 바른 믿음으로 교회에 나오는가를 시험해 볼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대주교는 왕이 예배를 마치고 나간 후에, 조용히
"다음 주일에는 폐하께서 예배를 못 드리십니다"라고 광고를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러 오는지,
아니면 왕에게 잘 보이러 나오는지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 과연 다음 주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그렇습니다. 그 교회의 신자들 대부분은,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아니라,
루이14세에게 아부하고 루이14세를 보러 온, 거짓 신자들이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예배입니다.
분명합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신자에게 '바른 신앙 성장' 있을 수 없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신자에게 '풍성한 하늘의 복' 임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하나님은 온전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요한복음4:23, "(하나님)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靈)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렇습니다. 정성을 다해 드리는 예배, 성령의 인도로 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 신앙인들은 비로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런 온전한 예배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내리시는 특별한 은총과 복을 넉넉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 예배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온전한 예배자가 됩시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 할 때, 우리의 대적 사단이 우리를 방해하겠습니까 ?
아니면 예배 잘 드리도록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습니다.
사단은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사단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소개하고,
더욱 바른 예배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애굽 왕과 담판을 짓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본문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십니다.
본문1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셨다 하라
이에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이렇게 요구합니다.
본문27절,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명하신 것은,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협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 ! 바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까요 ?
아니요. 바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하러 가려는 택한 백성들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첫째, "이 땅에서 예배를 드려라"고 막아섭니다.
본문25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그렇습니다. 바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광야까지 갈 것 없이, 이 땅 즉 애굽 땅에서 예배드리라고 했습니다.
즉, 바로는 하나님이 정한 곳이 아닌, 애굽 땅에서의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애굽 땅에서의 예배는, 어떤 예배를 의미할까요 ?
그렇습니다. 그것은 성별(聖別)되지 않은 예배를 의미합니다.
애굽은 세상의 상징이고, 욕심 가득한 육신의 상징입니다.
어떤 신자는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세상에 속하여 세상 욕심을 따라 자기 중심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예배당에 앉아 예배를 드리면서도, 마음은 온갖 세상 욕망과 세상 생각에 분주합니다.
교회 갈 시간이 없다고, 집에서 인터넷 예배를 드립니다.
섬기는 교회를 두고,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를 때웁니다.
물론 여러분 ! 예배는 세상 모든 곳에서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머물러 있는 모든 곳이,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자리로 변화되기를 분명히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예배를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성전(혹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다윗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편20:1-2,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시며,
성소에서 너를 도와 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또한 고라 자손은, 성전을 향하는 사람을 이렇게 축복합니다.
시편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물론 여기에서 '시온의 대로'는 '성전을 향하는 큰 길'을 말하고,
그 뜻은 '성전에 나아가 예배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거룩한 성전이 있는 시온을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시편132:13-14,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구별된 곳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삼일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성별된 곳에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거룩한 곳에 나아가, 그곳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아무 곳에서나 예배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삶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이 지정하신 거룩한 성소(예배당)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구별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둘째,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고 막아섭니다.
본문28절,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여기에서, 너무 멀리 가지는 가지 말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
그렇습니다.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께 너무 가까이 나가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가족들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
"믿는 것도 좋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라 !"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이렇게 유혹합니다.
"주일 낮 예배는 드려도 좋지만, 뭐 하러 찬양 예배까지 드려 !"
"주일 헌금은 드려도 좋지만, 십일조 헌금까지 하는 것은 광신자야 !"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좋지만, 봉사와 헌신은 절대로 하지 말아 !"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아내, 남편, 자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좀 적당히 해 !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줘 ?
하나님이 먹여 살려줘 !? 목사님이 먹여 살려 주냐고 !?"
귀하신 여러분 !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84:10, 12,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바짝 다가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어른들만 가서, 예배를 드려라"고 막아섭니다.
출애굽기10:9-11,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
보라 !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의 신앙성장에 너무나 관심이 없습니다.
부모인 자기들만 믿음을 지키면,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복을 받고,
더구나 큰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많은 문제아들의 부모가, 기독교인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더구나 그 부모는 대부분 교회의 중직자들이었습니다.
오늘날 ! 좀처럼,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와 같은 믿음의 어머니들,
맥아더 장군 같은 믿음의 아버지들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반대로, 자녀의 신앙과 성품보다, 자녀의 공부 성적과 세상성공에 더욱 관심을 갖는
대책 없는 크리스천 부모들이, 우리 주위에는 가득히 차고 넘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는 어떤 부모들입니까 ?
사단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어른들만 가서 예배하면, 머지 않아 그들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버릴 것을 말입니다.
더구나 많은 부모들의 제1우상은 자기 자녀들입니다.
사단 마귀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아이들만 자기가 데리고 있으면,
아무리 부모들이 삼일 길을 걸어가서 구별된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세상에 있는 자식들 때문에 다시 세상(애굽)으로 돌아올 것을 사단은 이미 간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우리들 가정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제사장 엘리와 그 아들들의 가정이 아닙니까 !?
여러분 ! 그 자식들과 그 후손들이 얼마나 참혹했습니까 ?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분명히 선포합니다.
"어른들만 가서, 예배를 드려라"는 것은 사단의 교활한 전략입니다.
사실, 우리들 대부분의 자녀들의 믿음은, 참으로 어리고 연약한 수준입니다.
그 모든 책임은, 바로 저를 포함한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해도, 하나님을 主人으로 섬기며 살지 않는 다면,
결국 그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우리들의 자식보다, 우리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자식을 최고로 귀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부모들이 끝끝내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면,
우리들의 가정은 끝내는 엘리의 가정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함께, 자녀와 더불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넷째, "양과 소는 남겨두고 가서 예배하라"고 막아섭니다.
출애굽기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그렇습니다. 제물 없는 예배, 헌신 없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헌물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헌물이 없는 예배, 드림이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신명기16:16-17,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가인과 아벨도 자기들의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창세기4:3-4,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사도 바울도, 매 주일 '미리 준비한 헌물을 드리라'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급하게)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그렇습니다. 이처럼 참된 예배는, 온전한 드림을 통해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우리 본향의 성도들이, 힘에 겹도록 드리기를 힘쓰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30배 60배 100배로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9:6절의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처럼,
많이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마귀를 굴복시킬 굳건한 믿음으로, 온전한 예배를 회복합시다.
모세는 바로(사단)의 이러한 유혹에 섣불리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단호하게 바로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이 땅에서 예배하라",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아이는 두고 어른들만 가서 예배하라",
"양과 소는 두고 예배하라"는 마귀의 유혹과 타협을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결국 하나님과 모세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출애굽기12:31-32절에 보면, 바로가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여기서 우리는 주목해야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의 말대로"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서서, 온전히 예배드리기를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의 소망대로, 우리의 말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제 온전한 예배를 포기하게 하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분의 뜻만 생각하고, 그 분의 은혜만 바라보며, 예배하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 생업을 크게 복 주실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통해, 하늘의 복과 땅의 원천의 복을, 더더욱 크게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