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2월1일, 누가복음10:38-42(대접하며 섬기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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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 모두 매일의 삶 !
걸림돌의 삶이 아닌, 디딤돌의 삶을 삽시다.
우리의 말은, 디딤돌이 될 수도 있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지혜롭지 못한 행동들이, 자칫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할 수 있다면,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예로부터 우리 한국인들은, 손님대접 일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심지어, 정작 자신은 굶을지라도, 손님대접에는 온 정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집을 찾은 손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습니다.
한편, 배고픈 시절에는 음식을 적당히 남기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왜냐하면, 남은 음식은, 그 음식을 만든 분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사이 우리 본향교회에 새로운 지체들이 자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 분들은 처음에는 본향의 손님이겠지만, 곧 가족이 될 분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며,
또한 우리의 섬김을 테스트하고자 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랑 가득한 섬김으로, 만남과 교제를 성숙시키는 우리 본향의 모든 지체들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손님대접하는 것을 매우 귀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손님 대접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13:1-2,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표준새번역, "나그네 대접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어떤 이들은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적극적으로 달려가 자기 집으로 모셔,
정성을 다해 대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대접을 통해 하나님을 대접하는 복을 누리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었으며, 더구나 조카 롯을 구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온전한 손님대접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누리는 계기가 됩니다.
로마서12: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6:3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따뜻한 마음과 온전한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며 섬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잘 대접하고 싶어, 매우 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언니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은근히 화가 난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40절, "주여 !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
그러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1-42절, "마르다야 !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과 이웃을 섬기고 대접하는 방법에는, 마르다형(形)과, 마리아형(形)이 있습니다.
우선 마르다형(形) 섬김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마르다의 섬김은, 반갑게 맞이하는 섬김이었습니다.
본문38절,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예수님 일행을) 영접하더라"
이 말씀에서, '영접하더라'는 말씀은, 헬라어 '휘페데자토'로서, 그 뜻은 '환대하다, 접대하다,
손님으로 맞아들이다'인데, 이 단어 속에는 자발적이고 진심 어린 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마을에 예수님의 일행이 오셨음을 듣고,
곧바로 달려가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분명 피로에 지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렇듯 마음을 다한 영접과 환대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많은 배척을 받으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9:58,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人子,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그러나 그러한 주님을, 본문의 마르다는 온 마음으로 섬겼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자주 자기 집에 모셔, 편히 쉬시도록 하였습니다.
극진한 존경과 대접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더구나 그녀의 섬김은, 겉치레가 아닌 마음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본향교회에, 이러한 섬김이 가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마르다의 섬김은, 부지런히 대접하는 섬김이었습니다.
본문40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이 말씀에서, '분주한지라'는 말씀은, 헬라어 '페리에스파토'로서,
그 뜻은 '다른 방향으로 돌리다'인데, 오늘 본문의 음식 준비하는 상황에서는,
이쪽 음식을 준비하면서, 다른 음식 준비에도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대접을 위해 열심을 다했습니다.
잠시도 손을 쉬지 않았습니다. 참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우리들이 이런 섬김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지체가 찾아오면, 열심을 다해 손을 쉬지 말고, 섬기며 대접하는 우리들의 섬김 말입니다.
이것이 사랑 많은 성도의 특징입니다.
셋째, 마르다의 섬김은, 곤비한 주님께 음식을 대접한 섬김이었습니다.
우리가 조금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위해 사신 공생애의 삶은, 결코 편안한 날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부터 밤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쉬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상처받은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신은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같았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 마르다는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지친 그들을 섬겼습니다.
참으로 시기 적절한 섬김이며, 맞춤 섬김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은, 섬기는 쪽에 그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쪽에 그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올해는, 더욱 성숙한 섬김, 특히 섬김 받는 지체들에게 꼭 필요한 섬김을 행하는 우리들이 됩시다.
자 ! 다음으로, 마리아형(形) 섬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마리아의 섬김은,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섬김이었습니다.
본문39절, "그 (마르다)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主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표준새번역, "이 여자에게 마리아라고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主의 발 곁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른바 '듣는 섬김'을 했다는 것입니다.
삼성테크노글라스의 이동열 사장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에게 호감(好感)을 주는 사라은. 'Good Listener'이다.
그들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말뿐만 아니라 고개를 끄떡이는 등의 행동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대화를 나눌 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때,
좋은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들은, 잘 듣는 섬김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둘째, 마리아의 섬김은,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긴 섬김이었습니다.
신명기8:3,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온전히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그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41-42절, "마르다야 !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마리아 역시, 음식 만드는 일이 힘들다거나,
또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하찮다거나 생각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우선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이 주실 말씀을 기다린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을 귀히 여기는, 마리아의 섬김을 본받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러분 !
왜 참으로 귀한 섬김을 한 마르다가, 이 대목에서 책망을 받았습니까 ?
우리가 여기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마르다가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책망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분명 마르다의 섬김도 예수님을 위한 참으로 귀한 섬김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에게 한 가지 부족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마리아의 믿음과 섬김을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다른 지체들의 섬김을 오해하지 맙시다.
혹은 폄하(貶下, 가치나 수준을 깎아내려 평가함)하지 맙시다.
특히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1절, "마르다야 !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이 말씀에서, '근심하나'의 헬라어 '도뤼바제'는, '소란, 부르짖음'이라는 뜻의 명사 '도뤼보스'에서
연유된 동사로, 정신적 흥분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마르다는 자신의 섬김을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책망하신 것은, 그녀의 열심 자체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녀의 그 열심이 스스로에게 올무가 되어,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섬김은 감사와 즐거움으로 해야합니다.
섬김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괴롭히거나, 가족과 이웃까지 힘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중심(中心)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섬김과 헌신을, 기쁨과 감사로 드릴 수 있는 자리까지 성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과 이웃을 섬기고 대접하는 것은, 마르다형이 있고 마리아형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본향의 성도들이, 이 두 부분 모두를 힘쓰기 바랍니다.
특히 "나는 마르다 形, 나는 마리아 形"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두다 말씀만 듣고, 전도만 하면, 봉사는 누가 합니까 ?
모두다 찬송만 하고, 기도만 하면, 새로운 지체는 누가 안아주며,
맛있는 음식을 통해 주는 기쁨은 누구로부터 옵니까 ?
내 섬김의 스타일만을 주장하는 것은, 자칫 편협(偏狹)된 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른 지체가 담당하는 섬김도 담당해 보아야, 다른 섬김의 귀함도 알게 됩니다.
또한, 다른 섬김의 어려움도 알고, 서로를 존경하게 됩니다.
마르다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섬김을 행합시다.
마르다의 초대하여 맞이하는 섬김이 있었으므로, 마리아의 말씀 섬김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마르다의 섬김은, 훗날 오빠 나사로가 죽음에서 살아나는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마르다처럼 초대하는 섬김, 반갑게 맞이하는 섬김을 행합시다.
우리 본향교회는, 본래 초대하며, 섬기기를 잘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4년 전 대지진으로 인해, 그 부분의 섬김을 오히려 축소해 왔습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깊이 안타깝게 여긴 부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초대하기를 즐기며 기뻐하는 교회가 됩시다.
또한 손님대접하기를 힘껏 그리고 감사가 넘치는 가운데 행하는 교회가 됩시다.
분명,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과 마리아가 말씀으로 만나는 역사가, 풍성히 일어날 줄 믿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살린 것처럼, 우리를 통해 살리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또한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우리 교회에서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또한, 마르다처럼, 힘껏 부지런하게 섬기는 우리가 됩시다.
마르다처럼, 섬김 받는 사람에 딱 맞는, '맞춤 섬김'을 행합시다.
또한, 마리아처럼,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섬김을 행합시다.
마리아처럼, 하나님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는 섬김을 행합시다.
올 한 해,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기적이 이어질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