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8월16일, 이사야58:6-12(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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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남은 휴식을 통해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감사 드리는 우리가 됩시다.
남은 휴식을 통해 지금을, 복된 날, 기쁜 날, 즐거운 날도 채워갑시다.
남은 휴식을 통해 미래를 꿈꾸며, 主께 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됩시다.
세상 학문에서 말하기를,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인 3대 욕구는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성욕(性慾)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 기본적인 욕구를 무엇인가로부터 통제를 받으면,
그 자체만으로 강하게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3대 욕구 중 가장 우선적인 것은 역시 식욕입니다.
사실 사람이 배가 고프면, 우선 먹는 것말고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을 아뢸 때, 혹은 매우 중요한 사명 등을 감당할 때,
가끔씩 인간이 가진 최우선의 욕구인 이 식욕을 포기하기 합니다.
이른 바 금식(禁食)입니다.
그렇습니다.
금식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촘'(느헤미야9:1)은, 음식에 대해 철저히 절제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하시면서, 광야(사막)에 나가셔서 40일 간 금식하셨습니다.
또한 모세도 십계명을 받을 때, 40일을 금식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복음 사역을 위해 자주 금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실 금식(禁食)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제일 되는 욕구를 포기하는 것이니까요 !
금식을 말하는 또 다른 히브리어 '아나 네페쉬'(레위기16:29)가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다'란 뜻을
갖고 있는 것만 보아도, 우리는 금식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당면한 큰 환난(혹은 큰 문제 혹은 큰 죄) !
그것이 하나님의 도우심(혹은 은혜)이 아니면 도저히 극복될 수 없다고 느낄 때,
간절히 금식하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했습니다.
실제로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금식하며 기도하는 이들에게 기쁨으로 응답하셨고,
점점 금식은 기독교의 중요한 신앙 행위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러한 금식이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나쁜 것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왜 금식이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 되고 말았을까요 ?
성경말씀을 통해 볼 때, 본래 금식은 회개(悔改)와 성결(聖潔)을 위한 것으로서,
인간 스스로 자기의 이기적인 본능과 정욕을 억누르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否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금식(禁食)의 본래 의미는,
철저한 자기 회개(自己 悔改), 자기 부정(自己 否定), 자기 부인(自己 否認)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70년 후에는,
자주 금식을 해야 만이 바른 신앙 생활을 하고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에 유다 종교지도자들은, 1년에 네 차례 꼭 금식해야 하는 날까지 지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금식은 이렇게 서서히 형식화, 규례화되었고,
그로 인해, 금식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그저 형식적 행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금식(禁食)이, 본래의 뜻은 잃은 채 형식만을 추구하다 보니까,
중심이 없이 그저 종교적 행위로, 형식만을 갖춘 '이상한 금식'을 한 자들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따져 묻기까지 했습니다.
본문3절,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하시나이까"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구약성경 말라기1장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신앙생활의 모습 중 하나는, 중심을 잃어버린 형식화된 신앙입니다.
말라기 선지자 시대의 종교인들은, 종교의 형식만을 추구했습니다.
말라기 시대의 신자들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다한 사랑,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진실 된 감사의 마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탄식하십니다.
말라기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더구나 겉은 물론이거니와 마음 중심까지 통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찬양,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과 기도가
형식화된 것인가, 아니면 마음의 중심을 다해 드리는 참 감사인가 !?"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형식화된 금식을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본문3-5절, "보라 !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
이 말씀은, 금식한다 하면서도, 자기의 유익을 챙기기 위해,
자신의 종과 일군에게 가혹한 일을 강요하는, 악한 사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금식은 결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도 은혜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기만이며, 자기 충족이며, 자기 속임수일 뿐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
첫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은, 내가 누군가를 결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풀어주며,
멍에가 있다면 그것도 풀어주고, 압제하고 있는 이웃이 있다면 즉시 자유롭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본문6절,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합니까 ?
만약 그렇다면, 나의 작은 권리로 누군가의 권리와 삶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당장 풀어주고,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그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더더욱 빨리 그 억압의 손길을 멈춰야 합니다. 또 해서도 안됩니다.
그래야 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억압에서 풀려나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나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정작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은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 큰 욕심을 뿐이지요 !
이번 한 주간,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은, 배고픈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며, 갈 곳 없는 사람을
재워주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도움을 구하러 온 친족을 피해, 몸을 숨기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7절,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遊離)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
본문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말라'는 히브리 성경을 직역하면,
"너 자신의 살(육체)로부터 너 자신을 숨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통해,
자신의 가족을 돌보지 않는 자는,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악하다고 경고하셨습니다.
디모데전서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가족으로서의 도리도 힘껏 다합시다.
셋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은,
내 생애 속에서, 이웃(남)을 향한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철저히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9절, "너희 중에서 .......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이것은 나는 높이고 이웃을 경멸하고 조롱하기 위하여,
손가락질하는 것과 또한 거짓말, 속임수, 무가치한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손가락질 할 정도로 거룩하지 못합니다.
또한 이웃을 비판할 정도로 완전하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은,
무엇인가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본문10절,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때때로 내 주위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 주십시다.
성도여러분 ! 두 주일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돕는 자' '섬기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섬김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내가 참된 금식을 행할 때,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은혜를 주실 까요 ?
첫째, 새벽빛과 같이, 어두움을 몰아내는 찬란한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본문8절,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는 곳마다, 어두움을 몰아내고 찬란한 아침을 오게 하는,
참으로 귀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가진 오래 묵은 병(病)들을 급속하게 치료해 주십니다.
본문8절,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참된 금식을 행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던 묵은 마음의 상처, 육신의 질병, 영혼의 상처를 급속하게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마다, 풍성한 응답으로 채워 주십니다.
본문9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넷째, 다시는 목마를 일이 없도록, 항상 생수로 채워 주십니다.
본문11절,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곤란해져도,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 샘물을 터뜨리십니다.
다섯째,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새 역사를 창조할 능력과 권세를 주십니다.
본문12절,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누가 해도 안되던 것, 우리가 하면 되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와 우리 후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항상 형통하게 하시는 사람이야 !" 할렐루야 !
사랑하는 여러분 ! 이 놀라운 복을 꼭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금식을 오늘부터 당장 드립시다.
내 작은 힘으로, 누군가의 유익을 막고 있는 것이 있다면, 당장 풀어줍시다.
배고픈 이웃에게 먹을 것을 주며, 갈 곳 없는 사람을 재워주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도움을 구하러 온 친족을 피해, 몸을 숨기지 맙시다.
이웃을 향해, 절대로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 조롱하는 말을 하지 맙시다.
오히려 용기를 주고, 소망을 줍시다.
괴로워하는 사람의 마음이 만족되도록, 힘껏 도와주고 힘껏 섬깁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벽빛과 같이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큰 인물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오랜 지병(持病)을 완전히 고쳐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마다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곤란해 져도, 우리 주위에서는 항상 생수가 흐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새로운 건설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복들을 차곡차곡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