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8월2일, 창세기2:18-24(우리의 삶은, 돕는 자의 삶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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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특별한 존재입니다.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크게 범죄 하여,
모든 인간을 완전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중 우리를 선택하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赦하시고, 永生을 주셨습니다.
시골로 시집간 어떤 믿음의 며느리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믿지 않던 시어머니를 교회로 인도하여, 드디어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는 시어머니가,
세례문답을 위해 성경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에 며느리는 목사님과 상담을 했고, 목사님이 이 할머니에게는 한 가지만 묻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
며느리는 일주일 내내 시어머니에게 이것을 말해 주었습니다.
드디어 문답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어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
할머니가 대답합니다. "예 ! 우리 며느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지요 !"
이에 목사님이 웃으시며 다시 묻습니다.
"할머니 ! 예수님께서 누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요 ?"
이에 할머니도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대답합니다.
"어 ! 이상하다 ! 분명 우리 며느리가,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했으니,
우리 며느리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확실한데 .......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사람들에게는 건강치 못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좋지 않고, 또 잘되지 않은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고,
좋은 것, 잘된 것은 자기의 덕으로 돌리는 바로 그것입니다.
또한, 내가 뭔가를 조금이라도 잘하면,
'왜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지 않는가, 왜 나의 이름을 높여주지 않는가'하며 알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반대로 어떤 일이 잘못되면,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나는 숨고 맙니다.
여러분 !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것은 내 탓, 나쁜 것은 남의 탓'하는, 이런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 때부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 중 한 곳을 특별히 구별하여, '에덴 동산'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더욱 큰복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은 자유로 취하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셨습니다.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하셨지요.
예 ! 하나님은, 인간의 순종 여부를, 테스트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창세기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그런데 여러분 !
안타깝게도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만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따먹고 만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창세기3:11, ".......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
자 ! 여러분 ! 이때 아담이 뭐라고 대답을 했습니까 ?
아니 ! 뭐라고 대답했어야 옳습니까 ?
그렇지요 ! "하나님 ! 정말 잘 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 해야지요 !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기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그렇습니다.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먼저 아내인 하와에게,
그리고 그 아내를 자신에 주신 하나님에게 떠넘겼습니다.
여기 계신 우리 남성여러분들 !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
대다수 남자들은 이런 아담을 닮아서, 아내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이 고쳐져야 가정이 더욱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와는 잘했으냐 !?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물으십니다.
창세기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
그랬더니 하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기3:13,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똑같이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오십보 백보(五十步 百步)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가정 밖으로 책임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첫 사람의 이 모습을 너무나 잘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어려울 때 혹은 무엇인가 실패했을 때,
대개의 경우 자신이 아닌,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책임을 넘깁니다.
가정생활이 어려우면 아내, 남편, 부모 탓을 합니다.
직장생활이 힘들면, 사장, 상사, 동료, 후배 등의 탓을 합니다.
신앙생활이 힘들면, 교회, 목사, 구역장, 기관장 탓을 합니다.
학교생활이 안되면 교수 탓, 학교 탓을 하지요.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가정도, 직장도, 신앙도, 학교도 혹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려움의 원인은
대부분 나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해서 입니다. 또한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 입니다.
특히 부부(夫婦) 간에는, 이것이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과 결혼은, '상대를 돕는 자가 되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이, 그 사랑과 결혼이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18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본문20-22절, ".......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그렇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부는 '서로 돕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에게는 어딘가 모르게 허영심리가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 예쁜 여자, 똑똑한 여자와 만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랑하고 싶은 심리입니다.
이것은 결코 돕는 배필이 아닙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마 탄 왕자님을 기대합니다.
이것 역시, 돕는 자가 되려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자가 되려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결국 결혼을 통해 내가 높아지려 합니다.
분명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깨는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가정이 언제 행복해 집니까 ?
그것은 부부가 서로 돕는 자가 될 때입니다.
부부가 서로 섬김에 힘쓸 때, 우리의 가정에는 큰 기쁨이 찾아옵니다.
결혼을 한 성도들과, 앞으로 결혼할 모든 분들에게 부탁합니다.
첫째, 결혼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본문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독신(獨身)을 주장하거나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 앞에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둘째, 결혼은 '돕는 배필'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을 준비할 때 가장 마음 모아 준비할 것은,
결혼식장도 아니고, 신혼집이나 살림도 아니고, 예물이나 신혼여행도 아니고,
'돕는 배필'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해, '돕는 마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한 믿음의 여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합니다.
당신은 내가, 항상 밝고 환한 미소를 띤 얼굴로, 당신 앞에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나는 진열장(쇼 윈도우)의 인형이 아닙니다.
나에게 슬퍼할 수도 있고 괴로워할 수도 있는, 평안함을 주십시오.
설사 내 표정이 굳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 굳은 얼굴 속에 담긴,
당신을 향한 나의 아픈 마음을 읽어 주십시오.
나의 말들이, 당신을 재미있게 편안하게 했다고, 계속해서 더 좋은 말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나는 앵무새가 아닙니다.
침묵의 기회를 주십시오.
내가 침묵을 통해 나의 속이 무르익었을 때, 나는 보다 더 좋은 말로 당신을 위로할 것입니다.
나에게 당신의 속마음을 몰라준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나는 마음까지 보이는 투시경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모든 것을 내게 말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내가 당신을 도울 수 있지 않겠습니까 ?
나는 성인(聖人)이 아닙니다, 천사도 아닙니다. 나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꼭 기억해 주십시오. 나는 결코 완성품이 아닙니다.
이제 당신이 나를 평범한 하나의 인간으로 받아 주실 수 있을 때,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줄 수 있을 때, 나의 분량을 알고 한계를 인정해 주실 때,
나는 당신의 그러한 도움에 힘입어,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당신은, 나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진실된 그리스도인,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별명은 '돕는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한복음13:14-15,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여러분 !
진정으로 누군가를 돕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저 그의 부족함을 채워주라고, 나를 그의 옆에 있게 하셨다 믿으십시오.
여러분 ! 사람은 기대할 대상(對象)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對象)입니다.
또한 여러분 ! 인간은 기대할 대상(對象)이 아니라, 기도할 대상(對象)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마른 뼈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왜 마른 뼈들에게, 마른 말을 합니까 ? 왜 더 말립니까 ?
마른 뼈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마른 말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들은 마른 말을 들을 수록, 더 말라질 뿐입니다.
여러분 ! 진정한 돕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시오.
우리는 끊임없이, 나 자신이 아닌 상대를 바꾸려 합니다.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
그러나 여러분 ! 내가 나 자신을 금방 바꿀 수 있습니까 ?
그렇지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내가 남을 바꾸려 하니 쉽게 바꿔집니까 ?!
안됩니다. 그러니까 그를 바꾸려 하지말고, 그를 도와주며,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한 글을 소개하고 말씀을 마칩니다.
내가 젊었을 때는, 세상을 변화시킬 만한 힘을 내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중년이 되었을 때, 내 곁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노년이 되자, 이제야 내가 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내가 처음부터 이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면, 내 인생은 놀라보게 달려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웃을 섬기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웃을 돕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이번 8월 한 달도, 섬기며, 도우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