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7월19일, 에스더4:13-16(主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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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의 신앙과 삶을, 겉모양만 멋있어 보이는 허수(虛數) 부분으로 채우지 말고,
비록 작더라도 능력 있는 실수(實數) 부분으로 채워나갑시다.
그저 숨만 쉬는 '푸쉬케'(敎人)가 아닌, '마데테스'(제자 信者)가 됩시다.
지난 6월16일, 78세의 한국인 할아버지가 일본정부로부터 국가 훈장(旭日雙光章)을 받았습니다.
그 분의 이름은 이성대씨입니다.
여러분 ! 이성대 할아버지는 무슨 이유로 훈장까지 받았을까요 ?
지난2001년1월26일 오후7시15분 경,
한국 고려대학교 무역학과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 온 이수현(당시27세)씨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JR新大久保驛의 전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마침 홈으로 들어오는 전차에 치어, 그만 목숨을 잃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이수현씨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위험에 던질 줄 아는,
참으로 용기 있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이수현씨의 죽음에 대한 사연은,
일본의 각 방송국과 신문 등의 매스컴을 통해, 온 일본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개인주의가 만연한 일본사회와 국민들에게,
이수현씨의 죽음에 대한 사연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매스컴들은 일본사회에 이렇게 전했습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나라인 대한민국의 유학생이, 일본인을 구하려다 의로운 죽음을 당했다."
여러분들도 아시는 것처럼,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일관계는 썩 좋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과 일본이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고,
또한 故 김대중대통령이 일본 문화를 한국에 개방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급속히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수현씨가 그렇게 의로운 죽음을 당하자,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순식간에 화해무드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곳곳에서 이수현씨 앞으로 성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금액은 순식간에 천만 엔을 넘어섰고, 그 후에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아들을 잃어 큰 슬픔에 잠겼던 이수현씨 부모는,
이수현씨가 공부했던 赤門會 日本語學校 측과 상담하여, LSH 아시아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13년, 아시아 18개국 689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물론 그 활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에 일본정부는 故이수현씨의 父親에게 일본국가 훈장을 수여했고
그 훈장을 받은 분이 바로, 이수현씨의 아버지인 이성대 할아버지였습니다.
이성대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고가 난 뒤 원망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이제는 훌륭한 아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사지로 뛰어든다는 것은 참 무모한 일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15:12-13,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사랑이 없나니"
마태복음19:19,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오늘 본문인 에스더4장에서, 우리는 번민과 고뇌 가운데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쓴 채로 성안에서 울부짖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모르드개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유다인이며,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바사(페르시아)의 성안입니다.
왜 유다인인 모르드개가 남의 나라 성안에서 이토록 비통하게 울고 있었을까요 ?
모르드개의 母國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 때에 가장 큰 번성을 이루었다가,
솔로몬이 죽은 후,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두 왕국은 하나님께 크게 범죄 하여, 차례로 멸망당합니다.
남 유다를 멸망시킨 나라는 바벨론이었는데, 바벨론은 많은 유다 백성을 포로로 붙잡아 갔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식민지 백성으로 바벨론에 머물고 있는 동안,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다시 멸망하고 맙니다.
새 왕국 페르시아는 "유다인들이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귀국을 허락했지만,
일부 유다인들은 계속 페르시아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남은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오늘 울부짖고 있는 모르드개입니다.
모르드개에게는 친딸처럼 양육한, 삼촌의 딸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이 에스더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페르시아 황제 아하수에로의 황후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때 에스더는 자신이 유다인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 모르드개는 왕궁의 한 행정관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즈음에,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라는 사람을 크게 신임해서, 그에게 왕 다음가는 권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우 싫어했습니다.
그것은 모르드개가 자신을 향해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후, 권력자 하만은 미워하는 모르드개가 페르시아人이 아닌 유다인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만은 모르드개를 포함한 페르시아 內의 모든 유다인들을 학살할 음모를 꾸밉니다.
더구나 그 계획은 정확한 진의(眞意)를 파악하지 못한 황제로부터, 재가(裁可)까지 얻게 됩니다.
오늘 모르드개가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걸치고, 재를 뒤집어 쓴 채로 성안에서 대성통곡을 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렇듯 민족 전체가 멸망당할 위급한 상황에서,
모르드개는 유다인 학살 계획을 皇后인 에스더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직접 황제에게 나아가 자비를 구하고,
자기 민족을 살려 달라고 탄원하도록 부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상황을 언뜻 보면, 이 부탁은 어려운 부탁이 아닐 듯 싶어 보입니다.
황후가 남편인 황제에게 부탁을 하는데, 안 들어줄 리가 있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에게는 에스더 말고도 수백의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에스더는 한 달이나 왕을 보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더욱더 큰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페르시아의 법으로, 황제가 부르지 않았음에도 왕 앞에 나오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황제가 찾아온 사람에게 왕의 손에 있는 홀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황후 에스더는 이런 힘든 상황들을 모르드개에게 알립니다.
더구나 현재로서는 민족을 위해 자신이 행할 특별한 방법이 없음도 전합니다.
에스더의 답변을 전해들은 모르드개는 매우 분개해 합니다.
그리고 다시 에스더에게 소식을 전합니다.
그 내용이 본문13-14절입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강력한 권고에,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모르드개를 포함한 당시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산에 살고 있는 모든 유다인이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그렇게 3일을 금식하며 기도하고 난 후,
당시 페르시아의 법을 어기더라도 왕에게 나아가 부탁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한 달 동안 왕의 부름을 받지 못했던 에스더 입장에서는, 분명 목숨을 건 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이 결단을 크게 기뻐하셨고,
유다 백성을 위기에서 건져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분명 에스더는 깊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동족의 위기 앞에서 자기의 안위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동족을 위해 목숨을 걸 것인가 ?
물론 이러한 갈등은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내 앞에 펼쳐진 여러 현실들을 모른 채 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내게 위기가 닥쳐온다 하더라도 그것을 향해 용감히 나아가야 할 것인가 ?
사랑하는 여러분 !
그래서 본문14절은 에스더는 물론이고,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촉구의 말씀인 것입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
에스더는 여기에서 '이 때'에 대한 것을 두고 심각하게 고뇌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민족적 위기가 있을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페르시아 왕후로 세우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훗날 이렇게 하나님 앞에 변명할 수 있습니다.
"主님, 제게 주신 인생 100년 동안, 많은 죄 짓지 않고 무난히 착하게 살았습니다.
예배도 최선을 다해 잘 드렸고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는 왜 네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과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했느냐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에스더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훗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너희 시대에 얼마만큼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고 착하게 살았느냐 ?"고 묻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물으실까요 ?
아마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네 시대에서, 하나님인 내가 너와 함께 해결해 가야할 문제에 대해서,
얼마만큼 책임 다하며 살았느냐 ?"
오늘날 어떤 신앙인들은
자신을 위해, 예를 들면, 건강, 진로, 가정(부모, 자식), 사업을 위해서는 금식하며 안타까움으로
기도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지어야 할 짐에 대해서는 애통해하지도, 금식하지도 않습니다.
1940년 여름,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했습니다.
그러자 폴란드에 살고 있던 많은 유태인들이, 인접한 나라 리투아니아로 피난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군들은 유태인이라고 하면, 인정사정 없이 처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역시 안전한 곳은 못되었습니다. 언제 독일군이 침공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리투아니아에 있는 각 국 영사관에도 이미 철수 명령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이제 유태인들은 또 다시 다른 나라로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입국을 허락하는 나라의 비자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자를 발급하는 각 국 영사관들은 이미 문을 닫은 뒤였고,
접촉이 가능한 곳은 일본 영사관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둘러 일본 영사관으로 몰려갔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영사관의 杉原千畝(すぎはらちうね)부영사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본국 정부에 問議전보를 쳤습니다.
본국에서 곧바로 회신이 왔습니다.
비자를 발급하지 말라는 지시였습니다.
독일과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으로서는, 독일의 비위를 건드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사관 담장 밖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유태인들을 바라보면서,
杉原부영사는 다시 두 차례나 본국 정부에 비자발급 허락을 요청하는 전보를 쳤습니다.
하지만 회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절대로 비자를 내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고민하던 스기하라는 마침내 본국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도저히 그 많은 사람들을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영사관 문을 열고 유태인들을 들어오게 한 杉原는 그 날 이후
리투아니아에서 철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잠과 식사를 거른 채 비자를 발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목숨을 구한 유태인 숫자는 무려 6천명이 넘었습니다.
杉原는 얼마 후 독일군을 물리치고 새로 점령해 온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억류 상태에서 풀려난 杉原는 곧바로 일본 정부에 복직 신청을 냈지만
일본 정부는 그의 복직을 거부했습니다.
중요한 전시 상황에서 정부의 명령을 어기고 개인의 판단대로 행동했기 때문에
공직에 다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杉原는 자신의 결단에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리투아니아에서는 수도 한 중심의 큰 도로를 '杉原거리'로 이름을 붙였고,
이스라엘 정부는 자기 나라에 杉原를 기념하는 공원도 만들었습니다.
그의 인도적인 행동 덕분에 살아남은 유태인들은 뉴욕에 모여서
그를 추모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杉原는 죽기 전에 아내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소"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인생의 행로에서 나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는 일에,
우리들의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일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그것이 나와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고, 나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일을 나와 함께 해결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꼭 기억하십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기 자신만이 착하게 살면 된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벗어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이면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거기서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도여러분 ! 교회와 성도는 어느 시대에서나 '하나님의 때'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서 있다고 하는 그 존재 자체가, 결코 목적일 수 없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때'를 위해 결단하고, 또 행동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오로지 내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가 아닙니다. 그것이 전부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금 질문하신 말씀에 비추어 봐야 합니다.
"너는 네 시대에서, 하나님인 내가 너와 함께 해결해 가야할 문제에 대해서,
얼마만큼 책임 다하며 살았느냐 ?"
이수현씨나, 杉原さん이나 에스더나 다 자기가 그 일을 반드시 해야 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를 위함이 아니었겠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교회가 바르고 온전한 교회라면, 적어도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라면,
그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처음 왕궁에 머무르려고 했던 에스더와 같이, 전혀 헌신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은커녕, 그냥 그대로 모른 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를 봅시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물으시기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고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너희 본향교회(성도들이)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포기하고,
너희 교회만 배부르게 한다면, 이 사람들은 다른 교회, 다른 사람들을 통해 구원을 받으려니와
너희들 교회는 멸망하리라"
"본향의 누구누구 성도야 !
만일 네가 이 일에 대해, 네 몸과 시간을 드려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실 것이지만, 너는 이 일로 인한 축복에서 제외되리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제 우리교회와 우리 각자의 갈 길은 분명합니다.
지금 '이 때'와 '이 곳'에서,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이뤄가야 할 일에 대해,
기쁨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이 때를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왕관보다는 십자가를 선택하십시다.
빛이 되기 위해서 먼저 소금처럼 녹읍시다.
영광과 평안이 아닌, 희생과 눈물의 헌신을, 우리가 마땅히 행할 일로 아십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당장 일어나서, 서둘러 실천하여 행하는 우리가 됩시다.
그래서 정말 세상의 등불이 되는 교회, 어두움을 밝히는 성도가 되십시다.
이 땅의 교회들 중에서,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을, 우리 본향교회가 떠맡아야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을, 다른 지체가 아닌 내가 맡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 主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본향교회를 보시고 기쁘게 웃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한 조각 심장만 남더라도 눈물로 헌신하며 걸어갑시다.
우리의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걸음이 정말 힘든 걸음이라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또한 바라보며 걸어갑시다.
예배당에서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우리의 기도가,
내 욕망대로 되지 않아, 분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아닌,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기 위해, 힘들지만 사명에 최선을 다한, 희생과 헌신을 소망하는
그런 기도가 되게 합시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우리 주님께서 바라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그 주님의 시선(視線) 끝이 머물러 있는 곳이 보이십니까 ?
그곳이 어디입니까 ?
본향의 한 영혼입니까 ? 여러분 직장의 한 영혼입니까 ? 학교의 영혼입니까 ?
이곳 일본입니까 ? 아니면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신음하는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
혹, 그곳을 향해 눈물 흘리시는 우리 주님의 눈물이 느껴지십니까 ?
만약 그렇다면, 지금 주님은 당신을 그곳으로 초대하고 있는 겁니다.
당장 응답하십시오.
이 일 저 일에 다 간섭하고 끼어 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 속에서 지금 울리고 있는 것을, 모른 채하지 말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울림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그들은 그 울림에 당장 응답했고,
복음의 황무지 조선 땅으로 목숨을 걸고 달려왔기에,
지금 주님을 바라보며 가는 우리들이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소개한 이수현, 스기하라, 에스더도 모두 이와 같은 결단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이번 한 주간,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