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12월20일, 빌립보2:5-11(성탄을 통해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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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하고, 힘껏 정진(精進)하는 성도를 기뻐하십니다.
우리 ! 다니엘처럼, 거룩하고 성결한 사람이 될 꿈(뜻)을 정해 봅시다.
또한 십브라와 부아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로 뜻을 세워 봅시다.
또한, 모세처럼, 세상이 주는 권력·명예·쾌락·재물이 아닌,
主 하나님께서 상(賞) 주시는 복을 소원하는 인생을 살기로, 뜻을 세워 봅시다.
덴마크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어느 나라의 한 왕자가 말을 타고 사냥을 가는 길에, 한 가난한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왕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청순하고 어여쁜 여인이었습니다.
왕자는 어떻게 사냥을 했는지도 모르게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왕자는 왕궁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그 여인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자꾸만 생각나고 또 보고싶었습니다.
결국 왕자는 그 여인을 찾아가, 그 여인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왕자는, 다시 다음의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 그 여인에게, 자기 자신이 얼마나 간절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을까 ?
둘째, 자신과 그 여인의 신분의 격차가,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그 여인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
셋째, 어떻게 하면, 그녀도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
넷째, 어떻게 하면 그녀가, 나의 사랑을 믿고, 자신의 삶의 모든 터전을 떠나,
나와 함께 궁으로 오게 할 수 있을까 ?
이런 저런 고민 끝에, 그 왕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는, 왕궁에서 가졌던 모든 권력과 힘과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시골 마을로 내려가 목수의 일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왕자는 그들과 함께 일하면서,
그 마을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왕자는 더욱 깊이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많은 날들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왕자는 그 여인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를 가지고 당신께 왔습니다. 내 사랑을 받아 주겠소"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왕자의 사랑을 비로소 깨달은 여인은,
왕자의 사랑을 알고, 믿고, 감격하고, 왕자와 함께 왕궁으로 들어갑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그렇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예 ! 사랑이 왜 그토록 貴한가 하면,
사랑은 희생과 고난과 인내,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감사가 그 속에 깊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 우리 인간은 그 사랑을 먹고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사랑을 먹어야 합니다.
예 ! 사랑을 먹지 못하면, 우리 인간은 금방 시들고 마는 존재입니다.
약10년 전,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살인극이 있었습니다.
당시 34세 된 젊은이가 11개월 동안 20명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이름은 유영철, 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볼 때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영철의 인생은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척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나이14세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외로웠습니다. 특히 사랑에 굶주렸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소년원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의 나이 21세부터는, 사회에서 지낸 기간보다 교도소에 있던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그는 20대 초반 결혼하여 자녀까지 갖게 되었지만,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후 심한 고독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확인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가 ?"
그가 쓴 자작시,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온 가족이 모였던 순간이었다.
모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며 웃을 수 있었던 그 자리였다"에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히 나타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6년 간, 결석은 겨우 2번뿐인 성실한 학생이었고,
중학교 이후에는 성적도 중간정도였으며,
특히 미술과 문학에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미술은 항상 '수'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매스컴에 소개된 그의 그림은 과히 수준급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분명 무지막지한 살인자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부유한 노인 등 부유층을 살해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불행이 富의 불균형으로부터 온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인에게 이혼을 당하고, 다시 사귀던 여인에게 전과자라는 이유로 절교를 당한 후,
그의 살인행각은 부유층에서 젊은 여성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살인자 유영철, 우리가 그를 단순히 흉악한 살인마로 규정하여, 한국사회에서 버려 버린다면,
어쩌면 우리 마음은 편안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가 어려서부터, 깊은 외로움 속에 그토록 찾았던 따뜻한 사랑과 위로의 손길을,
우리는 그리고 한국교회는 그에게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도 한 때 교회를 다녔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주위에 외로움에 지쳐 사랑을 갈급(渴急)해 하는 사람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
특히 이 땅 일본에는, 사랑에 갈급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과연 그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여러분 ! 막 깨난 병아리를 한 번 보십시오.
스스로 계란껍질을 깨고, 푸드득 푸드득 하다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와서 채5분도 지나지 않아, 걸어다니며 모이도 쪼아먹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입니다. 어미가 주는 젖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암소는 임신 중에 들에 나갔다가, 혼자서 새끼 낳아 스스로 치울 것 다 치우고 새끼 달고 돌아옵니다.
막 나온 송아지가 쫄랑쫄랑 따라오는 것을 보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송아지는 나서 얼마 되지 않은 때부터 홀로 걷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을 보십시오.
도대체 우리 사람은 얼마를 키워야 걷습니까 ?!
또한 얼마를 키워야 스스로 먹고삽니까 ?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사람은 참 못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왜 인간은 이렇게 더딥니까 ?
물론입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 중에, 인간이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서야 인간은 비로소 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토록 사랑이 필요한 존재가 바로 우리 사람이기에,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이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엄청나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참 놀라운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낮고 천한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를 비운 사랑입니다.
본문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
사랑하면서 잘 난척하면, 그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참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를 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우리를 사랑하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두 손에 세상 모든 것을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리시고, 아무 것도 없는 그 두 손으로 우리를 안아 주신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완전한 神이신 그분께서, 연약한 사람 참으로 부족한 것 투성이인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7-8절, ".......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
우리는 사랑의 원자탄의 별명을 가진 손양원목사님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한센병(문둥병자)에 걸린 사람들에게 '하나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한센병자가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사랑을 전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을, 그들이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센병자들은 목사님을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건강한 당신이 병든 우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
그대의 모든 행위는 사랑을 가장한 가식을 뿐이다."
마침내 목사님은 유명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 저에게도 저들이 가진 문둥병을 주옵소서 !"
손양원목사님은 그렇게 한센병자가 됩니다.
그 후 수많은 한센병 환자들이, 손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비로소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전라남도 여수 애향원에 가면,
손양원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이 가득하게 넘쳐나고 있습니다.
셋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의 죽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본문8절, ".......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연약한 사람이 되셨고, 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을 죄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한 폭의 그림도 그리지 않으셨지만,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수 많은 화가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은, 한 줄의 시도 쓰신 바 없지만,
단테, 밀턴 등 수 많은 시인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이름을 글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한 곡의 노래도 작곡하신 적이 없지만,
헨델, 베토벤, 바하, 멘델스존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예수님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 왜 그렇습니까 ? 왜 그들이 예수님을 높였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 놀라운 사랑에 너무나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이 한 주간,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느껴봅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마음 깊이 되새겨 봅시다.
그리고, 감격합시다. 마음껏 감사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을 시작합시다. 사랑으로 이웃을 안읍시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들은 그 무엇보다 사랑을 먹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올 성탄절은, 사랑에 굶주린 사람에게, 사랑에 목마른 사람에게,
사랑을 전하며 보내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