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015년10월11일, 사도행전17:11-12(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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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세상 바다에 빠져, 영혼이 위태로운 사람들을 구해내는,
구조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본향교회가 되게 합시다.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온 몸과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主께 예배하는 교회 되게 합시다.
예수님을 본받아, 낮아져 섬기는 그런 교회 되게 합시다.
성도간의 참된 교제인,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교회 되게 합시다.
교회설립17주년을 맞아, 여러분들에게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1840년9월7일, 영국 웨일즈라드노주 라야댜에서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난 그의 이름은,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Thomas, Robert Jermain)입니다.
토마스는 어려서부터 가진 꿈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전도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1863년 그의 나이 23살 때, 토마스는 학교에 찾아 온 선교사의 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고, 중국(청나라)선교사를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4일, 그의 고향인 하노버 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7월21일, 아내 캐롤라인과 함께 중국(청나라)을 향했습니다.
하노버 교회는, 웨일즈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인 클라노바라는 곳에 있는 교회로서,
클라노바는 50여 가구에 전체 인구가 150명 정도였습니다.
그토록 작은 마을의 교회에서 파송을 받은 토마스는,
약1개월 후인 1863년8월 드디어 중국(청나라)의 상하이 도착합니다.
그런데, 평소 몸이 약했던 아내 캐롤라인이, 긴 여정 및 임신,
그리고 그로 인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선교사 토마스에 닥친, 참으로 커다란 시련이었습니다.
토마스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많은 날을 헤매어 보았지만,
좀처럼 하나님을 향한 그의 분노와 원망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결국 괴로움을 견디다 못한 토마스는,
런던선교회에 선교사 사직서를 제출하고, 중국 해상세관에 통역관으로 취직하였습니다.
세관에 취직한 그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하여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토마스는 우연한 기회에 조선인 '동지사'
즉, 조선시대에 동지를 전후하여 중국에 공물을 갖고 보내던 사신 일행을 만나서,
조선 내에서의 기독교도들에 대한 심한 핍박과 수난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선교사 토마스의 마음 속에,
다시금 복음에 대한 열정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스코틀랜드 출신인 윌리암슨 선교사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윌리암슨 선교사는 토마스 선교사에게,
신앙의 탄압 때문에서 조선에서 도망쳐 온, 김좌평과 최선일 두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김좌평과 최선일을 통해,
당시 조선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조선에는 그 무엇보다도, 성경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1865년9월4일, 그의 나의 25세 때,
토마스 선교사는 많은 양의 성경을 배에 싣고 제1次 조선 선교 길에 오릅니다.
아내 캐롤라인이 세상을 떠난 후, 2년이 채 안된 때였습니다.
이렇게 조선에 온 토마스는, 조선을 찾은 개신교의 첫 선교사였습니다.
그들은 출발 10일 만에 황해도 창린도 자자리 군포에 도착합니다.
이에 토마스 선교사는 백령도 부근의 섬을 2개월 반 동안 돌면서,
섬 주민들에게 성경책을 주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백령도 부근의 전도를 마친 토마스 선교사 일행은,
그 다음으로 한양을 향하기 위해 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폭풍으로 인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중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편, 당시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극에 달해,
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 돌아온 토마스 선교사는,
다시금 조선을 향하기 위해 기도와 함께 성경을 모으는 등 여러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66년8월9일,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관으로, 제2次 조선 선교의 길에 오르게 됩니다.
제너럴 셔먼호는 조선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8월21일 대동강 하류에 있는 포리에 도착합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그곳에서 500여 권의 성경을 조선 국민들에게 나눠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후 제너럴 셔먼호가 포리를 떠나 석호정 그리고 만경대에 이르자,
조선군과 제너럴 셔먼호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너럴 셔먼호의 미국인 선장이 조선인 이익현을 협상을 하는 것처럼 속여
배로 유인한 다음, 그를 그만 억류하고 맙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이러한 선장의 어리석은 행동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선장은 토마스 선교사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해, 조선 군의 총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너럴 셔먼호가 가진 대포 등의 화력(火力)이 힘을 발휘하여,
조선 군이 수세에 몰렸지만,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 모래에 좌초되는 순간부터는,
일방적인 조선 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 군의 수많은 불화살이 제너럴 셔먼호를 향했고, 배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많은 선원들이 불에 타죽거나 화살에 죽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그 와중에서도 한 손에 백기를 들고,
또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조선 군인과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얼마 후,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 군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당시 평양감사는, 토마스 선교사를 참수하도록 박춘권에게 명합니다.
평양의 대동강변에서, 부교 박춘권이 칼을 들어 토마스를 참수하려는 순간,
눈을 감고 기도하던 토마스 선교사가, 박춘권에게 무엇인가를 내밀었습니다.
"잠깐만 이걸 받아 주십시오. 제가 드리는 마지막 선물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토마스 선교사가 그토록 조선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선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인 토마스는,
대동강변에서 박춘권의 칼에 목이 잘려, 안타깝게 순교합니다.
1866년9월3일, 27세의 젊은 나이로 영국인 선교사 토마스는,
대동강변의 한사정 백사장에서, 그렇게 순교를 피를 뿌리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1899년의 어느 날,
이제는 복음의 문이 열린 조선 땅에서, 선교활동에 힘을 기울이던 마펫 선교사에게
한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마펫 선교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마펫 목사님 ! 저는 이제 더 이상 이대로는 못살겠습니다.
제가 바로 30년 전에 대동강변에서 토마스 선교사를 죽인 그 박춘권입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님이 제게 주었던 이 성경책을 읽고,
제 마음이 너무나 아파 이렇게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신앙을 갖게 된 박춘권은, 회개하고 훗날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그렇게 순교했지만,
그가 전한 성경은 조선의 귀한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과 구원으로 인도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할 때, 그것을 지켜보던 평양감청의 박영식은
몇 권의 성경을 주워와 자기 방의 벽지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집을 예배당으로 드렸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교회가 평양 널다리교회입니다.
당시 성경을 받은 최치량은 평양교회를 세운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또한 홍신길은 후에 대동문에 교회를 세웠으며,
그의 동생도 예수를 믿고 장로가 되었고, 김영섭 역시 장로가 되었으며,
황명대는 셔먼호가 불탈 때 "예수 믿으시오 ! 예수 믿어야 합니다"라는
토마스 선교사의 간절한 외침을 듣고, 평양교회의 초대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27세의 영국선교사 토마스의 헌신과,
그가 조선에 준 성경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초석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우리 본향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랑하는 교회,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교회,
그리고 이 성경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의 베뢰아 교회와 그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구하는 교회였습니다.
또한 그 말씀이 그러한 가를, 성경을 읽으며 또 상고(詳考)하고 또 상고(詳考)하는 교회였습니다.
본문11절,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렇습니다.
하나님 말씀 듣고, 하나님 말씀 배우기를 사모하고, 그 말씀을 그러한 가 상고하는 교회야말로,
성경을 전하고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할 때, 그 교회는 새로운 영혼들이 찾아옵니다.
본문12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설립17주년 맞은 우리 본향교회를, 성경을 사랑하는 교회,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교회, 그리고 성경을 많이 주는 교회로 만듭시다.
이 땅 곳곳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냅시다.
온 세상 곳곳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보냅시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먼저 성경을 사랑하며, 읽고 열심히 공부합시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하노버 교회처럼,
토마스 선교사와 같은 분들을 파송하는 교회가 되게 하실 것이며,
또한 우리 본향성도들 가운데, 수많은 복음전도자들이 배출되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일의 든든한 기초를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