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016년2월28일, 요한복음11:32-44(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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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의 귓전에는 들리지 않지만, 가슴속으로부터 들려 오는 양심의 소리가 있다면,
그 하나님의 소리에, 기쁨으로 반응하는 우리가 됩시다.
눈앞에 있는 현실의 큰 소리보다, 작지만 진실한 소리에 귀기울입시다.
예수님께서 온 이스라엘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때, 그 예수님을 힘껏 섬겼던 귀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 분 들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8:1-3,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이 땅 일본의 복음화와, 하나님 교회를 섬기기에 힘쓰는 우리 본향지체들도,
하늘 나라의 기념책에 그 섬김들이 기록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남매가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한 가정이 등장하는데,
이 가정 역시도 예수님을 힘껏 섬겼던 가정이었습니다.
세 남매의 이름은,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인데,
이들의 집은 예루살렘에서 2∼3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은 베다니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이 집에서 머무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세 남매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아무런 불편함이 없도록 편안히 모셨습니다.
어찌 보면 이 가정은 예수님의 쉼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
이 가정에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졌습니다.
家長 나사로가 더 이상 살지 못할, 중병(重病)에 걸린 것입니다.
나사로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마르다 마리아가,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함께 해왔던,
두 자매에게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오빠였습니다.
자매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지만, 오빠의 병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냅니다.
빨리 오셔서, 죽어 가는 오빠를 살려 주시라고 말입니다.
요한복음11:3,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즉 나사로)가 병들었나이다"
그런데 몇 날이 지나도, 웬일인가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먼 곳에 계신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두 자매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고, 결국 오빠는 죽고 말았습니다.
두 자매는 너무나 처절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여러분 !
차디찬 무덤에, 불과 몇 일전까지도 함께 했던 오빠의 시신을 장사지내고 오는 두 누이의 마음이
과연 어떠했을까요 ?!
절망, 슬픔, 쓸쓸함, 외로움, 불안 .......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은 후 4일 째, 드디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여러분 !
예수님이 오셨을 때, 두 자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
예 ! 두 자매에게는, 어쩌면 서운한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위로 받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먼저 언니 마르다가 오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갑니다.
요한복음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마중 나간 마르다가 슬픔에 잠겨,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主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대단한 요구를 합니다.
요한복음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여러분 ! 이 마르다의 말이, 무엇을 요구하는 말 같습니까 ?
그렇지요.
지금이라도 죽은 오빠를 살리실 수 있다는 말 같지요 !?
자 ! 정말 그럴까요 ?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말에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요한복음11: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렇습니다.
죽은 네 오라비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나사로의 부활은 본래부터 예수님이 계획하신 일이었습니다.
나사로의 병에 대해 4일 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1:4, ".......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
자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죽은 오빠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과연 마르다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
본문에 마르다의 반응이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보시지요 !
요한복음11: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즉 세상 끝 날) 부활 때에는,
(죽은 오빠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그렇습니다.
마르다의 대답은, 죽은 오빠가 세상 끝 날에는 다시 살아나겠지만,
지금은 다시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한 번 마르다에게 물으십니다 !!!
요한복음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わたしは復活であり, 命である. わたしを信じる者は死んでも生きる.
生きていてわたしを信じる者はだれも決して死ぬことはない. このことを信じるか.)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지금 나사로를 살릴 줄 믿느냐 ?"입니다.
왜냐하면, 나사로에게는 부활을 믿는 그 믿음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 마르다는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
요한복음11:27,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여러분 !
지금 마르다가 오빠 나사로가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까 ?
지금 한 마르다의 고백에, "예수님이 지금 나의 오빠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수 있습니다"라는 믿음이
포함되어 있느냐 말입니다.
물론입니다.
마르다에게는 부활의 믿음, 생명의 믿음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님을 100% 믿지 못한 것입니다.
자 ! 마르다는 그 후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 동생 마리아에게로 가고 맙니다.
요한복음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했던 그 자리에서 도망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마르다는, 예수님께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잠시 후, 동생 마리아도 예수님을 향해 나아옵니다.
그리고는 언니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예수님께 말씀드리지요 !
본문32절,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그런데 마리아는 마르다와 달리, 이 말을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도 마리아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서, 또한 누군가를 위해서 눈물로 예수님께 아뢸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눈물 흘려주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중보(仲保)의 눈물을 흘립시다.
함께 눈물을 흘리시던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가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은 '동굴 무덤'이었는데, 사람들이 무덤 입구를 커다란 돌로 막아 놓았습니다.
아마도 시신을 짐승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또한 썩는 냄새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무덤 앞에 서신 예수님이,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39절, ".......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
이에 나사로의 동생인 마르다가,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가로막습니다.
예수님이 무덤을 향하셨던 말을 듣고, 그녀도 그곳에 달려왔을 것입니다.
본문39절, ".......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主여 ! 죽은 지가 나흘이(나)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이에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40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르다야 ! 그리고 마리아야 !)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결국,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으로 돌을 옮깁니다.
여러분 ! 이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신 후, 무덤 속에 누워있던 나사로,
즉 죽은 지 4일이나 지난 나사로에게 이렇게 외치십니다.
본문43절, "나사로야 ! 나오라 !"
그러자 죽었던 나사로가 말씀에 순종하여 밖으로 나왔습니다.
본문44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이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놀라운 기적의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많은 신앙인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데, 왜 응답을 받지 못합니까 ?
그것은 본문을 볼 때,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지 4일이 지난 나사로의 무덤 앞에 오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본문39절, ".......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 놓으라"
여러분 ! 이 돌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응답을 막는, 믿음을 막는, 부활의 기적을 막는, 우리 마음의 장벽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은 그 돌을 자신이 직접 옮기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그 돌을 옮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의 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첫째, 내 경험의 돌, 내 주관(主觀, 자기만의 견해나 관점)의 돌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견해와 관점을 가집니다.
그리고 그 자신의 견해와 관점으로, 세상 거의 모든 일들을 판단하려 합니다.
자신의 관점이, 매우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음을, 좀처럼 인정하질 않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도 바로 이 주관(主觀)과 고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하셨을 때, 마르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요한복음11:24, ".......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즉,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주관에서 볼 때, 죽은 오빠가 다시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을 때, 마르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본문39절, "....... 主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즉, 자기의 경험과 주관에서 볼 때, 오빠는 이미 나흘 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왜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구요 ?
바로 그것은,
우리의 경험의 돌, 우리의 주관의 돌이, 우리의 고집의 돌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어주실 놀라운 기적을, 딱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애초부터, "그런 일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어 !"하는 생각으로, 기도하는 흉내만 내기 때문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누렸던 그 놀라운 기도의 응답들이, 우리에게는 희귀한 것입니다.
둘째, 불신앙(不信仰)의 돌입니다.
어떤 신앙인들은, 아무 일도 없이 평안할 때에는 예수님을 온전히 의뢰하는 것 같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 믿음을 금방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두 자매도, 평소에는 나름대로 예수님을 잘 믿었던 여인들입니다.
더구나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자신들의 집을 내 줄 정도로, 큰 헌신도 한 분들이지요.
그런데 오빠가 불의의 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장례 후에 오셨구요.
이 사건을 계기로 결국 그들의 믿음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먼 훗날의 일은 믿겠는데, 지금 눈앞의 것은 못 믿겠다는 것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 오늘날의 일부 신앙인들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은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현실 속에서는,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실 문제만 생기면, 그 신앙은 꺾이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의 일부 신앙인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主님은 내 죽음 후만 책임져 주세요. 이 땅에서는 내 힘으로 살아갈 테니까요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이 불신앙의 돌을 옮겨버려야,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의심과 내 주관의 돌을 옮겨 버리고,
예수님을 완전히 의지하여,
현재의 삶을 기적으로 만들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올 봄 !
우리들의 체험과 경험으로 통해 얻은 '내 경험의 돌', '내 주관의 돌'을 우리 마음의 중심에서 옮겨 버립시다.
또한, 커다란 현실에 굴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과거와 현재의 미래의 주님이 아닌, 먼 미래의 주님으로만 믿으려면,
우리의 불신앙의 돌도 옮겨 버립시다.
그리고, 담대하게 하나님께 구합시다.
요한일서5:14-15,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미 포기했던 것,
우리들이 이미 마음을 접어 버렸던 것,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 우리 마음 속에서 완전히 정리해 버렸던 것,
그 모든 것들을, 우리들 앞에 하나 하나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