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년1월15일, 하박국3:2-4(여호와여 !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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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와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 主 하나님은, 약속을 참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을 하는 사람을,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너무나 귀중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약속을 어기는 자녀에게는, 그에 따른 큰 곤란을 주십니다.
지금으로부터 110年 前인 1907년,
세계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부흥운동이 대한민국(당시 조선)의 평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부흥의 능력이 얼마나 컸던지 '평양 大부흥운동'은,
18세기 영국에서 조지 휫필드와 존 웨슬리 등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영국 大부흥운동'과
18세기 중반에 미국에서 조나단 웨드워즈 등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국 大각성운동'과 더불어,
세계3대 부흥운동으로 이름될 정도였습니다.
당시 '평양 대 부흥'의 현장에 있었던 조지 매큔 선교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그 놀라운 역사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국 北장로교 선교부 총무 브라운에게 다음과 같이 평양 大부흥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존경하는 브라운 박사님 ! 우리는 지금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곳 한국 땅에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모인 지난 밤 집회는,
이 땅 최초의 실체적인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지금까지 이와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또한 우리가 영국의 웨일즈와 인도 등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서 들었지만,
이번 평양 장대현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또한 당시 평양 남산현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노블 선교사도
당시의 성령의 놀라운 역사와 상황을 이렇게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제 자신이 지금까지 한 번도 목격하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크고 더 놀라운 하나님 권능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 예배 때마다 주님의 권능이 교회전체는 물론 교회 밖에까지 넘쳐났습니다.
남녀성도가 진실된 회개로 변화되었고,
온 도시는 마치 죽은 자를 위해 울부짓듯, 통곡과 회개의 눈물로 가득했습니다."
평양 大부흥운동은 당시의 한국교회는 물론,
평양을 중심으로 한 당시 한국사회에 여러 가지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으로 불렸던 평양은,
大부흥을 경험한 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大부흥 이후 교파와 교단, 지역 등을 초월하여 한반도 전역의 교회들이 놀랍게 성장하였으며,
복음전파가 급속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大부흥은 교육열 확산, 강력한 금연금주 운동, 오랜 우상숭배로부터의 해방,
여권(女權)신장, 기독교학교 설립 확산, 도덕 및 윤리의식 증진,
세계관 정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각성이 개인인격의 각성, 가정의 각성, 교회의 각성, 마을과 사회의 각성,
그리고 민족의 각성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1907년에 있었던 이 대 부흥운동을 기점으로,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놀라운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다음과 같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이 말씀을 전합니다.
"110년 전, 평양에 大부흥의 은총을 주신 하나님 !
이 땅 일본에도 그와 같은 大부흥을 허락해 주옵소서 !
우리 본향교회와 본향 한 지체 한 지체들이, 일본 大부흥의 큰 씨앗들이 되게 하옵소서 !"
자 ! 그렇다면, 평양 大부흥운동의 씨앗(혹 불씨)은 무엇이었을까요 ?
1907년1월2일부터15일까지, 평안남도 전역에서 올라온 성도 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平安南道 道사경회가 열렸습니다.
(참고) 사경회(査經會) - 일정한 기간 동안, 성경을 공부하거나 성경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어느 한 장소에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
첫 3일 간은 각 지역에서 올라온 성도들을 중심으로 한 집회였고,
평양시내 성도들이 참석할 수 있는 저녁집회는 1월6일부터였습니다.
그런데 사경회 첫 날부터
성령의 은혜가 참여한 성도들에게 임하기 시작했고,
집회가 계속되면서 성경말씀에 대한 간절한 사모함과 믿음의 열기가,
젊은 학생들과 여성들에게 급속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이에 1907년1월14일, 당시 사경회를 주도했던 선교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금번 평안남도 도(道)사경회가 성령의 은혜로 충만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열매 없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14일 정오기도회에 모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날 저녁, 헌트 선교사가 말씀을 전한 후,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가 나와 합심기도를 요청하자 지체들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합심기도는 이제가지와는 완연하게 달랐습니다.
뜨거운 회개의 눈물이, 온 예배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새벽2시까지 계속되었고,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그곳에 모인 지체들 모두에게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이렇듯, 평양 대 부흥의 첫 씨앗은 간절한 합심(合心)기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また, 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
どんな願い事であれ, あなたがたのうち二人が地上で心を一つにして求めるなら,
わたしの天の父はそれをかなえてくださる.
二人または三人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集まるところには, 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のである.)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
대한민국을 위해,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고영산성도님의 가정과 가족들을 위해,
팀을 위해, 교회를 위해, 그리고 가정을 위해,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합심 기도의 불을 피웁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고, 반드시 응답도 주실 것입니다.
평양 大부흥의 두 번째 씨앗(불씨)은 끝없이 이어지는 회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된 회개가,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임하게 했습니다.
1907년1월14일 밤, 회개의 포문을 연 사람은 길선주장로였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바로 저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집회에 함께 한 우리 모두에게 큰 은총을 주실 수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약1년 전, 임종을 앞둔 제 친구가, 저를 자신의 집에 불러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소.
그러나 내 아내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주면 좋겠소."
"저는 그때, '친구 걱정마오 ! 내 그렇게 하리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친구의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그만 100달러를 사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친구와 그의 아내를 배신했으며,
더구나 그 죄에 대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저는 죄인의 모습으로 이 집회에 참석해,
하나님이 하시고자하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했습니다.
이제 저는, 내일 아침 사취한 100달러를 미망인에게 돌려드리며 사죄하겠습니다"
라며 눈물로 통곡하며 자기 죄를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진실 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길선주장로의 얼굴은,
뜨거운 눈물과 통회의 고백으로 빨갛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런데 길선주장로의 이런 진실한 회개는,
마치 뇌관에 불을 당긴 것처럼 그곳에 모인 온 성도들의 마음에 회개의 불을 붙여버렸습니다.
장대현교회에 모인 모든 성도들은, 앞 다투어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자신들 안에 은밀하게 숨겨졌던 온갖 죄악들을 다 쏟아 내었습니다.
아내를 구타하고 구박한 죄, 도적질한 죄, 간음한 죄 ......
그렇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성령의 강력한 역사 안에, 자신의 죄를 감추지 않고
하나님 앞에 철저히 토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 날 사경회가 끝나자, 성도들은 훔친 물건을 들고 주인에게로 갔고,
자신의 잘못 때문에 고통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온전히 죄 용서를 구하고,
그에 따른 변상도 철저히 시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110년 전 장대현교회에 모인 성도들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자신 속에 감춰 있었던 단 한 톨의 죄악도 숨길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이 행했던 부끄러운 죄악까지 공개적으로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평양 大부흥은 거룩한 회개운동이었습니다.
평양 大부흥이 있던 때로부터 40년 전(1866년)에,
대동강변에서 성경을 가지고 선교하기 위해 왔던 토마스 선교사를 살해했던 박춘권이
그 사실을 자복(自服)하고 회개한 것도 바로 이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당시 평양 및 온 한반도의 교회에 진실된 회개의 불이 퍼져나갈 때,
미궁에 빠졌던 사건들이 많이 해결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솔직히 고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찰들이 사경회 장소에 몰래 들어와, 자복하고 회개하는 교인들의 신상을 파악해 두었다가,
집회 후 범인을 잡기도 했다합니다.
또 그런 목적으로 많은 경찰들이 예배당 안에 들어왔다가,
도리어 회개하고 교인이 된 경찰들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한반도에서 일어난 평양 大부흥은,
합심 기도와 진실된 회개가 大부흥의 씨앗임을 확실히 보여준 현장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이 일본의 부흥의 씨앗이 되기 위해,
또한 우리 본향 大부흥의 씨앗이 되기 위해,
또한 우리의 가정·기업·삶이 부흥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심기도와 온전한 회개입니다.
그렇습니다. 합심기도는 예수님이 친히 응답을 보장하셨습니다.
또한 진정한 회개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우리 삶의 현장에 임하게 합니다.
끝으로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1907년 평양 大부흥운동은,
합심기도와 진실된 회개로부터 시작된 강력한 성령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1907년의 평양 大부흥의 불길은,
사실은 1903년8월부터 1906년12월까지 있었던 원산 부흥운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03년8월, 女선교사 Mary Culler White와 Louise Hoard McCully는
한국(당시 조선)에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회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 둘씩 그 기도회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선교사들은 1903년8월24일부터 30일까지 한국의 부흥을 위해 특별기도회를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 기도회 가운데
'어떻게 하면 한국을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하여,
당시 의료 선교사로 입국해 있던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에게
세 시간의 강의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렇게 선교사들로부터 특별한 강의 부탁을 받은 하디 선교사는,
그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통해 거듭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하디는 명문 토론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당시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하디는,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남들에게 자신을 멋지게 보이기 위한, 자랑과 교만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하디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학력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만함,
더구나 영국시민이라는 백인 우월주의, 그리고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 등등 .......
우월감과 교만함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1901년부터 원산과 강원도 통천 지방에서 3년 간 선교활동을 했는데,
당연히 결실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교만한 그에게 나타난,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원산의 여러 선교사들로부터 강의 부탁을 받았을 때,
그는 이러한 이유 등으로 인해, 심한 좌절감과 패배감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디는, 강의를 준비하던 중, 자신의 큰 교만과 가식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강의 당일, 그는 모인 선교사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한국민들 앞에서도 낱낱이 자신의 교만과 가식을 고백했습니다.
우월주의와 교만에 빠졌던 때의 하디의 모습은,
심한 환자들은 기피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환자를 선별하여 치료하는,
쌀쌀맞은 가짜 의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지"하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받기를 거부했던 환자들이,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자신들의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디 선교사의 진실된 회개의 소식은,
당시 한국에 와있던 여러 선교사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들 중에는 진실로 겸손히 한국인을 사랑하지 못한 선교사들도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디의 진실된 회개의 눈물이 그들의 가슴을 두드렸고,
그들 역시 참된 회개의 자리에 서게 된 큰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디 선교사의 회개에 이야기가 조선 땅에 온 모든 선교사들에게 퍼져나가고 있던 1906년 여름,
8월26일부터 9월2일까지 평양에서 선교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100여 일 후, 세계 교회역사상 가장 큰 부흥이 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강사는 하디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잘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꿈과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그런데 그 '영적인 힘'은, 오직 계속적인 기도로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체력이 날마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것 같이,
우리의 영적인 강건함도 날마다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때, 우리 인생의 목적이,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부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바뀌어지게 될 것입니다."
1907년1월14일, 평양 大부흥의 씨앗이 되었던 길선주장로도,
사실은 바로 이 말씀과 이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경험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선교사 하디 한 사람의 온전한 회개가,
믿음의 동역자들을, 그리고 교회를, 그리고 한 민족을 놀랍게 변화시켰습니다.
또한 하디 선교사의 회개의 배후에는,
女선교사 메리 컬러 화이트와 루이스 홀드 맥컬리로부터 시작된
한국을 위한 합심 기도에 있었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들 속에 있는 깊은 죄악들이
하디 선교사와 같이, 길선주 장로와 같이,
한 가지 한 가지 깨달아지고 생각나는 한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에게도, 온전한 회개의 역사의 시작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하며 기도한 하박국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처럼,
우리의 회개를 통한 합심기도에 분명 응답하실 것입니다.
간절한 합심 기도와 진실 된 회개를 통해,
이 땅 일본 大부흥의 귀한 씨앗 되는 우리 모든 본향지체들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