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년7월16일, 열왕기상 17:8-16(순서를 바꿔, 기적의 삶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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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 ! 후반전에는(도) 꼭 승리합시다.
그러기 위해,
너무 지난 실패를 질책하지 말고, 主님 앞에 나아가 평안을 얻읍시다.
무엇보다, 충분한 하프타임을 가져, 예수님의 작전을 지시함 받읍시다.
그리하여 먼 훗날, 후반전이 끝난 후, 金 면류관 쓰는 우리가 됩시다.
오늘은, 조금 재미있는 퀴즈로 메시지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자 ! 잘 듣고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들어가 변기에 앉았습니다. 소변과 대변 중 어떤 것이 먼저 나올까요 ?"
사람마다 다를 까요 ?
아니오 !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정답이 있습니다. 어느 쪽일까요 ?
그렇습니다. 정답은 '급한 쪽부터 나온다'입니다.
여러분은 샤워하실 때의 순서가 어떻습니까 ?
저는 양치질, 머리 샴푸, 몸 샴푸, 면도, 얼굴 세안(洗顔)의 順입니다.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이 순서로 하게 되었고,
저도 모르게 이 순서가 제 샤워의 고정된 순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순서로 하는 샤워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가장 먼저, 얼굴을 씻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욕실에 들어가면, 욕실 안은 우리의 체온과 욕실의 습기로 인해,
금방 고온다습(高溫多濕)한 환경이 된다고 합니다.
이 때 가장 영향을 받는 곳이 인체의 모공(毛孔)인데, 그 중 특히 얼굴의 모공이 크게 확장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먼저 얼굴을 씻지 않으면, 얼굴에 쌓였던 더러운 노폐물이, 모공이 열린 틈을 타 더욱 깊숙이 침투 해,
우리의 얼굴 모공이 노폐물로 더욱 커지게 된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샤워의 첫 순서는 세안(洗顔)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 씻어야 하는 곳은, 머리 샴푸랍니다.
머리에 샴푸와 린스를 한 뒤 물로 헹구고 나면,
본인은 깨끗하게 헹궜다고 생각해도, 실제로는 샴푸나 린스 성분이 몸에 남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분들이 나중에 트러블을 유발해,
등드름(등 여드름)이나 가드름(가슴 여드름) 등을 생기게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깨끗한 몸 피부를 유지하고 싶다면, 머리부터 감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많은 사람들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 여러 부분(일, 공부, 식사, 운동 等々)에,
나름대로의 순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순서를 바꾸면 큰 일 나는 줄 압니다.
그래서 좀처럼, 그 순서를 바꾸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에는, 평소 생각하던 순서를 과감히 바꿔, 놀라운 기적의 복을 체험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바꿔야 할 순서가 있지 않는가 생각해보고,
만약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과감히 바꿔, 우리 역시 기적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와 한 여인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사르밧이라는 마을로 가서 한 과부를 만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빌붙어(얹어) 살라고 하십니다.
본문8-9절,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여러분 ! 사르밧이 어떤 곳입니까 ?
그곳은 두로와 시돈의 중간에 위치한 곳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왕후가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던 이세벨,
그녀의 父親이 다스리는 이방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가서,
가뭄 동안에, 이방여인에게 빌붙어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명령이었지만,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르밧에 가서 그 과부 여인을 만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을 만나고 보니, 그녀의 형편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엘리야가 얹어 살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뭔가를 얻어먹을 상황은 더더구나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 선지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녀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을 겁니다.
본문10절,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器に少々水を持って來て, わたしに飲ませてください.)
여인의 입장에서 볼 때, 가뭄으로 인해 모든 우물이 마른 시점에, 갑자기 나타나
난데없이 물을 달라는 것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근동지역에서는, 나그네에게 물을 대접하는 것을 매우 귀한 일로 여겼기에,
이 여인은 아끼고 아끼던 물을 가지로 갑니다.
그런데,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불러 세워, 엘리야는 또 한 가지의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본문11절,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パンも一切れ, 手に持って來てください.)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아마도 여인은 엘리야를 한참 쳐다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놀란 여인은, 선지자에게 자신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본문12절,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新共同譯, "あなたの神, 主は生きておられます. わたしには燒いたパンなどありません.
ただ壷(つぼ)の中に一握り(ひとにぎり)の小麦粉と,瓶の中にわずかな油があるだけです.
わたしは二本の薪を拾って帰り, わたしとわたしの息子の食べ物を作るところです.
わたしたちは, それを食べてしまえば, あとは死ぬのを待つばかりです."
즉, 최후의 만찬을 할 것 밖에 없다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을 들었으면 엘리야는 바로 자기 뜻을 철회해야지요 ?!
그런데도 엘리야는 웬일인지, 가난한 여인에게 다시 요청합니다.
본문13절,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新共同譯, "恐れてはならない. 帰って, あなたの言ったとおりにしなさい.
だが, まずそれでわたしのために小さいパン菓子を作って, わたしに持って來なさい.
その後あなたとあなたの息子のために作りなさい."
여러분 ! 사르밧 여인은, 그 후 어떻게 했을까요 ?
예 ! 사르밧 여인은 엘리야 선지자의 말에 믿음으로 순종했고,
그 결과 그녀 집의 밀가루통과 기름통은 가뭄이 끝나는 약3년 동안, 마르지 않고 늘 채워져 있었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잘 아는 본문 말씀을 통해, 은혜 받을 비결을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그것은 [순서를 바꿔 기적을 체험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서론에서, 사람들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 여러 부분(일, 공부, 식사, 운동 等々)에
나름대로의 순서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자 !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순서가 나타납니다.
첫째는 엘리야 선지가가 생각한 순서입니다.
본문13절에 보면, '먼저'와 '그 후에'라는 말이 나옵니다.
엘리야가 생각한 순서는, 사르밧 여인이 '먼저' 엘리사 선지자가 먹을 떡을 만들고,
'그 후에' 여인과 아들의 떡을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사르밧 여인이 생각한 순서입니다.
그녀가 생각한 순서는, 굶주린 자기 아들을 먼저 먹이고, 그 다음에 자기가 먹고,
그리고 혹 남으면 마지막이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어느 것이 더 객관적이고 더 상식적인 순서입니까 ?
그렇지요. 사르밧 여인이 생각한 순서가 훨씬 더 상식적입니다.
당연하지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 둘 모두 본래부터 선지자의 것이 아닌 사르밧 과부의 것이었으니까요 !!!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어른보다는 약한 어린이가 먼저 먹어야지요.
또한 둘 다 어른일 경우에는, 당연히 연약한 여인이 먼저지요.
그런데 지금 엘리야 선지자는 그 순서를 뒤집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지금 엘리야가 이런 황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 엘리야 선지자 자신의 뜻입니까 ? 아니면 하나님의 뜻입니까 ?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지금 자기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셨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과부의 입장에서는,
엘리야 선지자는 뻔뻔하고 몰염치한, 참 이기적인 선지자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르밧 여인에게, 과감하게 순서를 바꿀 것을 선지자를 통해 촉구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리할 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적이 그 여인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여인에게 순서를 바꿀 것을 말하면서, 이렇게 용기를 줍니다.
본문13절,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라)"
(恐れてはならない. 帰って, あなたの言ったとおりにしなさい.)
그렇습니다. 지금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
물론입니다.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으려고 했는데,
그 마지막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또한, 자신과 사랑하는 아들 앞에, 성큼 다가온 죽음이 두렵습니다.
바로 그 두려움이, 순서를 바꾸기 어렵게 하는 큰 걸림돌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실, 이 여인의 두려움은 우리들의 두려움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도 두려움 때문에, 내 것을 먼저 챙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와 같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르밧 여인은 선지자의 요구가 아무리 황당하고, 또 비상식적이고,
또 두렵고, 또 이기적인 것으로 보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한 순서를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순서대로 삶의 방향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본문15절을 보십시오.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やもめは行って, エリヤの言葉どおりにし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무리 다급해도, 또한 아무리 두려워도,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마음이 힘들고 삶이 어려워도, '예배의 자리', '사명의 자리'는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십니다.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결코 우리들의 삶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사업장과 세상의 삶을 팽개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한 번 보면, 본문13절에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라)"(恐れてはならない.帰って,あなたの言ったとおりにしなさい.)
그렇습니다. 누구의 말대로 하라는 것입니까 ?
엘리야의 말입니까 ? 아니지요. 여인의 말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즉, 여인 자신과 생명보다 소중한 아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먼저 선지자의 것을 준비한 다음에 하라는 것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6:31-32,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렇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우리에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먼저 찾는 인생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마태복음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것을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신 특별한 두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가정처럼 섬기고, 또한 가정을 교회처럼 섬기면서,
거기서 행복을 누려야만, 인생의 참된 기쁨을 맛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모두를 통해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세상의 다른 것에서 절대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갑자기 웬 교회얘기냐 하실 텐데,
지금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순서를 바꿔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 공부하는 지체들에게 지금 학교생활과 교회생활의 순서를 한 번 바꿔보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즉 학교생활을 교회생활 하듯이, 교회생활을 학교생활 하듯이 해 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냐 하는 겁니다.
학교 시험기간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놀고 싶어도 전날은 열심히 공부하지요 ?!
또한 어려운 과목의 강의가 있으면, 미리 책을 보고 갑니다. 즉 예습을 합니다.
그냥 강의실에 들어 갔다간, 시간 내내 그냥 앉아 있다 오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 학교생활을 한 번 교회생활 하듯이 해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시험 보는 날인데도 별 준비 없이 터덜터덜 갑니다.
강의시간에 교과서도 노트도 준비하지 않고 빈손으로 그리고 별 기대 없이 수업에 들어갑니다.
더구나 뭔가 이유만 있으면, 강의에 빠집니다.
여러분 ! 만약 이렇게 학교생활을 한다면, 그 학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학기가 끝날 때쯤, 학교로부터 귀국하라는 통고를 받을 것입니다.
반대로 교회생활을 학교생활 하듯이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매일 얼마간이라도 예습과 복습을 합니다. 즉 말씀 읽고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主日 전날이 되면 그야말로 열심히 준비합니다.
기도를 외우고, 찬양을 부르고, 성경을 읽습니다. 다른 지체에게 전화도 합니다.
여러분 ! 그 主日날 그 성도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물론입니다. 충만한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임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바로 우리들의 일과 신앙생활의 순서,
즉 우선 순위를 바꾸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명한 교부(敎父)인 키프리안은
"'교회는 구원의 방주다'라고 말하면서도 교회를 어머니로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다"
고 했습니다.
또한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노아 홍수의 때에 방주에 들어가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오늘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핵심은 교회생활입니다.
교회생활을 통해 행복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 결코 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에서 우선 기쁨을 얻고, 그것을 신앙생활로 가져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는 과감히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혼이 잘 될 때에 비로서 범사가 형통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르밧 과부처럼 순서를 바꾸면 죽는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 과감히 우선순위를 바꾸는 그곳에 기적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이 시간 함께 하신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믿음생활의 관계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
만약 순서를 말하라 한다면,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입니까 ?
여러분 ! 만약 우리들의 세상생활이 믿음생활보다 앞에 있다면,
우리들은 사르밧 과부가 가지고 있던 그 어려움과 두려움에서, 결코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와 나중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더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먼저'와 '나중'을 바꾼다 해서, 우리들이 별로 잃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새벽예배를 드리면, 당연히 몸이 피곤해집니다.
말씀 읽고 묵상하는 시간만큼, 내가 자유롭게 즐기던 시간이 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잠시 기도하러 교회 왔다가, 누군가를 섬기느라, 세상 일 놓쳐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에서 사명을 맡으면, 괜히 신경 쓰이고, 그 준비 때문에 토요일 리듬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확실히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보시지요 !!!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새벽예배 드리려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사실 피곤하긴 하지만,
하루 더 잠을 더 잔다고 그만큼 우리가 더 건강해 지고, 떠 싱싱해 집니까 ?!
또한, 우리가 자유롭게 즐기는 시간을 많이 가진다해서,
그 자유로운 시간이 우리들의 삶을 항상 즐겁게 해 줍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정해 놓은 먼저와 나중의 순서가 바꿔도, 우리들이 잃을 것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순서를 바꾸면, 전부 잃어버릴 것 같아도, 절대로 잃지 않고, 도리어 더 풍성해 집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놀라운 복들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 이번 주간, 우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순서들을, 한 번 깊이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해왔던 순서를 과감히 바꿔봅시다.
우리 하나님은 분명, 사르밧 여인에게 주신 기적의 은혜를, 우리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에게 순서의 바꿈이 일어나,
기근과 가뭄을 통과할 수 있는 하늘의 복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우리 主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