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017년8월20일, 호세아 1:2-7(“왜 ?”냐고 묻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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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는, 우리 주님 [예수님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우리가 그것을 위하여 부름 받았습니다.
성도님 ! 무엇보다도 [기도와 복음전도의 싸움]을 결코 피하지 맙시다.
특히,
우리 안에 있는 [옛 사람과의 싸움]을 승리로 장식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여러분 ! 혹시 이런 말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왜 하필 나입니까 ?" 혹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하셨습니까 ?
지난2016년6월30일, 미국의 NBC 텔레비전 방송국이,
매우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열린 기독교 집회 현장을 전 미국에 생중계로 방송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인데,
미국에 사는 청(소)년들을 위한 JAMA대회(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를 생중계한 것입니다.
이 대회가 금년 22번째를 맞이했는데, 1996년에 이 JAMA대회를 처음 시작하고 지금까지 이끄는 분이,
바로 한국인 김춘근 장로입니다.
1939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난 김춘근은 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성장했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대학까지 졸업하고,
마침내 1967년(28세) 미국유학을 떠납니다.
미국유학을 떠날 때 그의 꿈은, 세계의 중심국가인 미국을 연구해서,
우리나라도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큰 꿈을 가진 김춘근은, 단돈 200불 들고 미국에 가,
하루 3시간씩 자며, 아르바이트로 병원의 시체 치우는 일까지 하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양인 1세대로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한 미국 정치학을 공부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마침내 108: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미국 페퍼다인 대학의 조교수가 됩니다.
더구나 교수 채용 4년 만에 최우수 교수상을 받아, 이제 그의 앞길은 뻥 뚤린 대로와도 같았습니다.
그 때 그의 나이 37세였습니다.
그런데 그 해(1976년) 김춘근은 악성 간경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의사로부터, 1년을 못 넘길 것이라는 사형선고까지 받습니다.
그는 큰 절망에 빠졌습니다.
점점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고, 체중은 급격히 줄어들고,
그럼에도 배가 불러오면서 호흡이 가빠졌습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 앞에 절규했던 것이 "왜(why)?"였습니다.
"하나님 ! 왜 하필 납니까(Why me)? 왜 하필 내가 이런 몹쓸 병에 걸려야 합니까 ?"
"제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고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 젊은 나이에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까 ?"
"why me ?"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일이 비단 김 장로님만의 문제이겠습니까 ?!
우리 주변에는 이해도 못하고 수긍도 못해서, "왜 하필 나입니까 ?"라는 말을 한없이 반복하며,
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들 중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왜 하필 내가 ?"라는 마음을 가진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해, "왜 하필 내가 ?"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합니다.
어느 날 호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이해 할 수 없는 지시를 받습니다.
본문2절,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여러분 ! 만약 이런 지시가 우리에게 있었다면, 우린 어떻게 했을까요 ?
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에게는, 분명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아내를 취하라니요. 더구나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니요.
당연히 이 말씀은 충격 그 자체이고, 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마땅히 성결(聖潔)과 거룩을 말씀하셔야 하는 하나님이,
지금 거룩하게 살려는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와 음란한 가정을 세울 것을 명하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왜 이토록 황당하게 느껴지는 말씀을 하셨는지를, 성경을 통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은 변함 없이 아내를 사랑하는데, 아내는 다른 남자(즉 우상)와 바람이 난 겁니다.
더구나 집을 가출해서 몸 파는 일까지 하다가, 결국은 노예로 팔려가고 맙니다.
이러니 어쩝니까 ? 남편은 돈을 지불하고 다시 그 아내를 사옵니다.
그랬더니 또 가출을 합니다. 그래서 다시 또 돈을 주고 데려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이런 아내와 사는 남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당시 이스라엘 백성을 바라보시는 하나님 마음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런 안타까운 마음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음란한 여인을 아내 삼아, 음란한 자식을 낳아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세아를 보면서, 자기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충격요법(衝擊療法)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것은 그렇다 하지요. 하지만 호세아 본인은 뭡니까 ?
왜 하필 자기입니까 ? 왜 하필 자기가 그런 샘플이 되어야 합니까 ?
호세아는 민족의 어려움을 보며,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젊은이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어떤 헌신도 할 각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말입니까 ?
우리들이야 성경을 통해, 금방 말씀드린 하나님의 계획을 이미 알고 있지만,
당시 호세아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호세아가 황당해 보이는 하나님의 요구에 어떤 반발도 없이 가서,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삼고, 말씀대로 음란한 자식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먼저 살필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주 중요합니다. 잘 들으십시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은 왜 그래야 하는가를 먼저 설명하시고,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신 적이 거의 없으십니다.
도리어, 먼저 순종을 요구하시고, 그 순종의 과정 속에서 당신의 뜻을 깨우쳐 주십니다.
사실 우리는 동물이 아니고 최고의 피조물이요 걸작품인 인간입니다.
저나 여러분에게 있는 솔직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 ! 충분히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으니,
먼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자상하게 설명을 해 주세요"하는 마음입니다.
"설명부터 해 주시고 나서 '너 할래 안 할래 ?'하시며, 선택권을 우리에게 주시면 좋겠습니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성경을 보십시오.
거의 대부분, 하나님은 설명보다는 먼저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십시다.
그리고 그 순종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깨우쳐 주십니다.
예를 들면,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항아리 맨 위까지 물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하인들이 물을 다 채우자,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인들은 이미 그 물에서 최상품 포도주 향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설명하시지 않고, 다만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순종을 통해, 가장 먼저 기적을 맛보는 특권을 누린 것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는 너의 독자 이삭을 바치라"하셨습니다.
그 외는 아무런 설명도 없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아들을 드린 후에야,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그는 그 산 위에서 보여주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뜻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즉, 미리 준비하신 수양도,
또한 그 수양을 통하여 장차 온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도 결코 보질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겠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 여기에 큰 진리가 있습니다.
철저한 순종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철저한 순종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순종의 사람들이, 믿음의 비밀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앉아 하나님을 알기보다는,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그렇습니까 ?"하고 묻고 싶은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
어리석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향해 왜냐고 묻는 것은 진정한 지혜가 아닙니다.
미련한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
이사야에게 주신 主의 말씀을 보십시오.
이사야55:8-9, ".......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통해, 중요한 한 가지, 우리가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한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해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되는 것입니다.
이삭의 예를 보겠습니다.
그렇게 자상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자기를 묶어서 제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높이 치켜듭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 앞에 왜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기를 사랑하는데, 아버지 괜히 이러실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의심 없이 자기를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해하기 때문에 믿어지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호세아의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비록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호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묵묵히 순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알렉산더 대왕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연전연승을 거둔 알렉산더는 한 신하에게는 큰 재물을 주고,
다른 신하에게는 넓은 영토를, 또 다른 신하에게는 큰 권력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측근 한 사람이 "이러다가 폐하께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겠습니다."하며 염려했습니다.
그때 알렉산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아직도 내게 가장 귀중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 내게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있다네 !"
사실 알렉산더 대왕이 가졌던 미래의 소망은 예수님 없는 세상적인 소망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망은 권력과 재물, 명예와 영광에 대한 집착과 욕심을 극복하게 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또 한 가지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 아픔과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 형제의 아픔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거나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체의 고통을 보면서, "저 사람은 기도 안 해서 그래. 저 사람은 말씀 안 봐서 그래, 봉사 안 해서 그래"하며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미처 모르는 하나님이 뜻이, 지금 그에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 있는 지체들에게 마땅히 할 일은, 판단이 아닌 따뜻한 위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쳐오더라도 왜냐고 묻지 마십시오.
거기엔 틀림없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신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합니다.
오직 순종함으로서, 그 순종 속에서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치더라도 믿음 가운데 하나님을 따르고,
그 순종 속에서 주님의 뜻을 새로이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호세아를 통해 주시는 또 다른 깨우침이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호세아는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해 음란한 여인 고멜과 가정을 꾸렸습니다.
하나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세아에게 자녀들 셋을 차례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기막힌 일이 호세아에게 또 벌어졌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치더라도, 자녀들에게만은 희망이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
그러면 자식들을 통해서라도 위로를 받지 않겠어요 ?!
그런데 호세아의 두 아들과 딸도 딱 엄마를 닮은 것입니다.
호세아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내보기도 힘든데, 자식들까지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
한국말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남편(아내) 복이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
호세아의 경우 도대체 위로 받을 곳이 없는 겁니다.
더구나 가족들을 포함한 주위의 시선들은 참 호세아를 힘들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항상 "아멘 !"하며 순종했습니다.
무엇이 호세아를 항상 "아멘"하며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
러시아에서 있던 실화를 소개하겠습니다.
공산치하에서 복음을 전하다 시베리아로 잡혀가신 러시아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귀환을 놓고 매일 기도 드렸습니다.
특히 그 교회 장로님은 눈물 마를 날 없이 기도했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리움도 사라질까 했지만,
목사님의 모습은 좀처럼 그 장로님의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몇 해가 흘러 어느새 늙어 버린 장로님,
그 장로님의 소원은 이제 단 한 번이라도 목사님을 보고 죽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늘 기도하시던 그 장로님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그 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시 몇 해가 흘러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권이 일어나자 목사님이 풀려나게 됐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목사님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그 옆에는 그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장로님은 이발 기계 하나를 들고 시베리아로 가서,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 주는 봉사를 하며 목사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났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면서, 그 목사님이 하신 마지막 말씀이 이것입니다.
"사람은 꼭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단 한 사람의 사랑에도 살기엔 넉넉합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아마도 호세아가 자신에게 닥친 모든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또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면 족하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정말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아야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한 분이면 족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신 분입니다.
또한 여러분 !
호세아에게 중요했던 것은, 세상의 평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가 더 중요했고, 하나님의 생각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세상 가치에 허우적거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 대통령급 경호를 받으면서 온 국민이 지켜야 한다는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그가 연구하는 줄기세포에 희망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에도 노벨 의학상 수상자가 나오나 싶을 만큼 많은 박수를 쳤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왜 그 교수가 그랬습니까 ?
세상 평가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었으니까
조작을 해서라도 성과를 만들어 내야 했던 것입니다.
거짓 논문이라도 써 내지 않으면 그 중압감을 이길 수 없었던 겁니다.
한 마디로 세상 평가에 춤을 춘 겁니다.
여러분 ! 확실히 기억하십시오.
누구든지 세상의 평가에 마음을 두고 살면 그 인생이 초라해지고 맙니다.
그러나,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을 행하게 됩니다.
이 시간 정말 여러분의 속마음을 한 번 들여 다 보십시오.
우리들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이 자꾸만 곤고(困苦)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
진짜 힘들어서라기보다, 세상의 눈과 세상의 평가에 귀를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곤고 함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하늘나라에서는 아무짝에 필요 없는 것들을, 너무나 귀중히 여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태초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큰 것도 작게 하실 수 있으며, 작은 것도 크게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귀중한 존재로 여기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처소를 이미 예비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어도 좋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 것이기 때문이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도 좋은 것은, 영원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이 모든 것이 분명한데 우리들에게 뭐가 그렇게 힘듭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무엇 때문에 그렇게 버거워 하십니까 ?!
무엇이 힘들어서 인생 끝난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사십니까 ?!
행복하고 기쁜 것이 가득한데, 왜 근심과 걱정만 가득합니까 ?!
호세아가 너무 힘들 때, 혹시 아내 고멜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지금 당신이랑 사는 게 좋아서 사는 건 줄 아니 ?"
"내가 지금 당신하고 수준이 맞는다고 생각해 ?"
"하나님만 아니면 우리 사이 벌써 쫑 났어. 당신 그거 알아 ?"
그러나 호세아는 이런 말을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 명령대로 음란한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흉내를 낸 것이 아니라, 정말 온 마음 다해 사랑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렇게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고 계시듯이 기다려 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이며,
또한 우리가 배워서 우리들의 이웃에게 베풀어야 하는, 바로 그 사랑인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올해도 어느덧 3분의 2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8개월 余를 돌아보면서도 왜냐고 묻고 싶은 것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래도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희망을 가슴에 안고 나머지 3분의 1, 아니 우리의 나머지 인생을 살아가십시다.
이런 우스개 말이 있습니다.
"희한하게 망하지 않는 것이 희망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희망을 가지면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절대로 망하지 않는 것이 절망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면, 매일 같이 절망할 일만 생깁니다.
더 이상 "왜 ?"냐고 묻지 마시고,
우리 가는 길을 고르게 하실 주님의 은혜를 신뢰하면서 미래를 꿈꿉시다.
분명 여호와 이레의 복을 경험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에 휘청대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에 주목하십시다.
지체를 판단하는 자가 되지 말고, 위로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기필코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아름다운 생애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