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018年2월11일, 사사기 21:25(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것은, 큰 착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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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은, 그 어느 것도 우연이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 어려움과 아픔들을 주시지만,
이 모든 것들을 통해, 멋진 성장과 큰복을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당하는 일들이, 이 땅 복음화에 큰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신구약 성경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약1500년 간에 걸쳐서(B. C. 1446∼A. D. 95), 하나님께서 여러 믿음의 사람들을 친히 붙잡으셔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고 또 행하시는 지,
또한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게 되는 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 지 등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성경에는 가끔은 매우 이상하고 끔찍한 사건들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런 내용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
예 !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매우 이상하고 끔직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살던 때 중,
사사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B. C. 1370년경)
한 레위 사람이 에브라임 산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겐 첩이 있었는데, 그 첩이 바람을 핀 후 친정에 가 넉 달째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레위인은 첩을 데려 오기 위해 첩의 친정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무사히 도착했고 장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4일 후, 이제는 떠나려 했는데 장인이 하도 붙잡아 하루를 더 있게 됩니다.
닷새 째 되는 날 오후, 레위인은 첩과 함께 자기 집을 향합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떠난 탓에 기브아라는 곳에 오니까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그곳은 베냐민 지파 땅이었는데 그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박한 민심으로 방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길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을 만나 그의 호의로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부터 일이 벌어집니다.
그 지방 사람이 레위인 일행이 노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밤, 불량배들이 그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립니다.
사사기19:22,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이들은 동성연애자들이었는데, 레위인과 관계하기를 바라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노인이 한사코 말립니다.
또한, 자기 집에 온 손님을 제발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거듭 거듭 부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걸음도 물러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대문을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습니다.
결국 노인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자기 딸과 레위 사람의 첩을 내 줄 테니까 맘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량배들은 노인의 말을 들을 태세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광경을 두려움으로 지켜보던 그 레위 사람이,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자기 첩을 밖으로 내 보냅니다.
이에 불량배들은 그 여인을 밤새도록 폭행하고 새벽에 놓아줍니다.
다음날 아침, 레위 사람이 보니까 자기 첩이 대문 앞에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레위인은 시신을 나귀에 얹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그 시신을 열 두 개로 토막을 내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한 토막씩 보냅니다.
여러분 !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
온 이스라엘에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의 시신을 토막내는 이런 일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본 일도 없었고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스바에 백성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수가 어른만 40만이었습니다.
분노한 백성들이 그 레위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이에 레위 사람이 설명합니다.
"내가 어느 날 사정이 있어 베냐민 지파의 땅인 기브아에 하룻밤 머물렀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내게 성폭행을 하려 했고, 또 내 아내를 처참히 폭행하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지른 이 악행을 알리기 위해, 재 아내의 시신을 토막내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그 자리에서 결의를 합니다.
"이 일이 수습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자"
그리고 곧바로 베냐민 지파로 사람을 보내서 그 불량배들을 넘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열 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른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베냐민 지파의 군사는 적었지만 강했습니다.
특히 그들 중 기브아 출신 왼손잡이 7백 명은 특공대에 가까웠습니다.
처음 두 번의 전투에서 베냐민 지파가 크게 이겼습니다.
이스라엘 열 한 개 지파의 군사들 역시 용맹한 자들이었지만,
두 차례의 싸움에서 자그마치 4만 명이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전체 숫자로는 이스라엘의 열 한 개 지파가 훨씬 많았고,
전체적인 전력 역시 베냐민 지파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결국 세 번째 전투에서, 열 한 지파의 연합군이 큰 승리를 거둡니다.
그 후 연합군은 베냐민 땅에 들어가 처참한 살육을 저지릅니다.
사사기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그 날에 베냐민 병사 600명만이 겨우 목숨을 건진 정도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결과가 난 후,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열 한 지파 연합군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한 지파가 없어질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은 600명 밖에 남지 않은 베냐민지파를 살리기로 하고,
그들에게 아내를 주어 베냐민 지파를 보존케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기 전에,
그 누구도 자기 딸을 베냐민의 아들들에겐 주지 않기로 서원을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그들에게 묘한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이 사태가 터져 열 한 지파가 모일 때,
그곳에 단 한 사람도 보내지 않은 부족이 있었는데, 바로 길르앗의 야베스 부족이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 부족을 공격하여 처녀들을 제외한 남녀노소를 다 죽이고,
처녀 4백 명을 베냐민 지파에게 줍니다.
그러나 아직도 200명의 신부감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연합군 지도자들이 또 다시 꾀를 냅니다.
당시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서는, 매년 예배 축제가 열렸습니다.
그 축제에는 이스라엘 처녀들이 춤을 추러 나오는데 그때
그 처녀들을 붙잡아서 아내를 삼으라고 나머지 200명에게 허락을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붙잡혀간 처녀들의 부모나 오빠들이 항의를 하면,
그때는 지도자들이 알아서 뒤처리를 해 주겠다는 밀약도 했습니다.
결국, 베냐민 지파의 200명의 용사들이, 처녀들을 보쌈해 갑니다.
사사기21: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사기19장에서 21장까지 기록된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마음에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
말 그대로 기괴하고, 이상야릇하고 또한 엽기적이지 않습니까 !?
대충 살펴보더라도, 이 사건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1> 레위인이면 제사장이나 성전 일을 보는 사람인데 웬 첩 ?
문제2> 마을에 온 손님을 어떻게 동성연애자로 취급 ?
문제3> 노인이 레위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자기 딸과 손님의 첩을 대신 내 주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가 ?
문제4> 자기 살자고 첩을 내 준 레위 사람은 과연 어떤 인간인가 ?
문제5> 자기 대신 죽은 불쌍한 여인을 장례는커녕 열 두 토막 ?
문제6> 어떻게 한 사람의 충동질에 온 나라가 휩쓸리나 ?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생각을 가진 현명한 지도자가 그들에게는 아무도 없었나 ?
문제7> 베냐민 지파는, 못된 불량배를 위해 웬 의미 없는 전쟁 ?
문제8> 베냐민 지파를 보존하도록 결정을 해 놓고, "자기들 딸은 줄 수 없다" 이것은 또 무슨 궤변 ?
문제9> 베냐민 지파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애매한 한 부족을 모두 학살하는 이스라엘 연합군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들 ?
문제10> 모자란 신부를 충당하기 위해, '예배드리러 온 여인들을 보쌈을 하라'
도대체 이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가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이 있기는 한 것입니까 ?
무엇이 이들의 삶의 기준이고, 행동의 지표입니까 ?
오늘 본문은 이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25절, "그 때에 ......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そのころ, ....... それぞれ自分の目に正しいとすることを行っていた.)
그렇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사회상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떠들어라. 당신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내 맘대로 살겠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생각은 비단 오늘 본문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과 교회가 무엇을 하는 지를 보십시오.
본문의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부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사도 자기 마음대로, 성도도 자기 마음대로, 다 자기 뜻대로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금방 악해 집니다. 본색을 드러내고 맙니다.
성경을 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인간에 대해 무엇이 느껴집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은 죄악의 덩어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진단하시고 내 놓으신 결론입니다.
여러분 !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정말 대책 없는, 큰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온전히 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聖徒)는 스스로 거룩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성도가 아니라,
자신이 참으로 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며 회개하는 사람이 聖徒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인 것입니다.
본문25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무엇이 없다고요 ? '왕이 없으므로'입니다.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마음에 왕을 모시고(두고) 사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자기의 왕이 되어, 자기 생각대로만 살다가,
점점 교만해 지고, 의미 없는 삶, 엉뚱한 삶을 살다가, 결국 불쌍한 인생의 끝을 맞이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왕답지 못한 것을 왕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재물을,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어떤 사람은 자식을,
어떤 사람은 명예를 자신의 왕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누구를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할까요 ?!
물론입니다. 우리의 왕은,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더구나 여러분 !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온갖 수욕(羞辱, 부끄럽고 욕됨)을 당하시고,
끝내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왕이십니다.
또한, 죽음에서 3일 만에 부활하사, 사망권세 이기시고,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과 확신을 주신 '능력의 왕'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편 여러분 ! 오늘 본문의 비극적인 사건의 시발점은, 한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 레위인이 정말 레위인답게 살았더라면,
어쩌면 오늘의 본문 같은 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시의 레위인은, 제사장이든지 아니면 제사장을 도와 성전 일을 보는 사람입니다.
먹고사는 것도 다른 열 한 지파가 다 책임져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최고, 최선의 임무는 하나님의 전에서 자기 책무를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직분에 맞게 성결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레위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어떻게 성직자가 첩을 두며, 또한 자기 살겠다고 연약한 여인을 사지로 밀어냅니까 ?
더구나 백성들 앞에서 사건 경위를 말할 때는,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했지,
자기가 저지른 악행은 전혀 말하지 않습니다.
"나 살자고 아내를 불량배들에게 내 주었습니다.
밤새 남자들에게 시달리다 다 죽어 돌아왔을 때, 빨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아침까지 그냥 놓아두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습니다"고 말했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레위인은 레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레위인 때문에 민족적 비극이 일어났다면,
만약에 우리 교회같이 작은 공동체에서 레위인 하나가 잘못되면 우리 모두가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레위인이 레위인답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누가 레위인입니까 ? 누가 본향교회의 레위인입니까 ?
첫째, 목사인 저와 목사사모 등이 레위인입니다.
우리 본향의 지체들은, 먼저 목사와 사모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잘못되면 우리 모두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여파가 갈 수 있기에 기도하시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유혹들이 우리들 앞에 있습니다.
앞장 선 자로서 스스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도의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둘째, 본향의 집사님들, 권찰님들이 레위인입니다.
고린도후서6:1에서 바울은 자신, 그리고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 힘쓰는
청지기들을 향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16:3에서는, 브리스길라 집사 부부를 향해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자'의 의미입니다.
오늘 함께 하신 사랑하는 여러분 ! 본향의 집사님들, 권찰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분들이 성령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고,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며, 겸손히 본향의 지체들을 섬길 때,
우리 교회는 신실한 공동체가 될 것이요, 또 갑절로 부흥될 것입니다.
셋째, 우리들 모두가 레위인입니다.
베드로전서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즉, 레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레위인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향해 제사장이라 축복하면서, 이어 이런 권고를 했습니다.
베드로전서2:11-12,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육체의 정욕, 즉 인간의 썩어질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우리 ! 욕심과 욕망으로 살지 말고, 오직 말씀을 따라,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갑시다.
또한, 세상 속에서도 선한 삶, 정직한 삶,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여러분과 저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끔 합시다.
이것이 바로 영적 레위인인 우리들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
끝으로,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마지막으로 나눌 하나님의 뜻은 이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 레위인의 영적 생활을 한 번 보십시오.
레위인은 아내의 집에서 무려 닷새를 머물렀습니다.
그 닷새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
사사기19:4-6을 보면,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 사람의 집이 에브라임의 산골짜기였고,
아내의 집은 베들레헴이었으므로, 이틀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머문 날자 5일과, 오고 간 날자 3-4일을 합하면,
분명히 중간에 안식일이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가 에브라임 산골짝에 살았다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레위 지파의 사명을 던져버린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성전도 예배의 처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많은 레위인들은, 이렇듯 사명과 예배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레위인이 그러하니 다른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
한 마디로 당시 이스라엘은 예배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배공동체입니다.
마치 우리 본향교회가 예배공동체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배가 무너지면 그들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배만큼은 가장 귀하게 구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족속들의 행위를 부러워하고, 그들의 악행을 도리어 배웠습니다.
당시 이방인들은, 각자 신상 하나를 세워놓고 거기에다 간단히 제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볼 때 그것은 너무나 간편해 보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단하게 예배드립니다. 예배를 대충 때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자기 방에서 앉아 예배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절대로 예배를 쉽게, 더구나 대충 드려 치울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온 정성과 온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우리의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야 합니다.
온 정성을 다해 드리고, 시간도 꽉 채워 드리고, 마음도 완전히 드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항상 최상,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배드림에 전심을 다 하십시오. 예배드림에 목숨을 거십시오.
예배 중에 다른 생각일랑 말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십시오.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되도록,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촉촉이 임할 것입니다.
여러분 !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예배를 우습게 알았으면,
예배를 드리러 온 여인들을 납치하라고 했겠습니까 ?
성도여러분 ! 이렇듯 온전한 예배가 사라지면 엽기적인 일들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소견은 참으로 좁습니다. 더구나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견대로, 우리가 생각한대로 살지 맙시다.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 내려놓고 묻고, 깨달아,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삽시다.
더구나 여러분 !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레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막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통해, 이 땅의 사람들이,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오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 ! 무엇보다도 온전한 예배를 회복합시다.
온 정성을 다해 진액(津液)을 쏟아 붇는 간절한 예배를 이제는 드립시다.
의무적으로 드리는 예배, 시간만 때우는 예배, 마음과 정성이 없는 예배,
이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로 바꿉시다.
하나님은 온전히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온전한 뜻을, 반드시 말씀을 통해 應答하십니다.
오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여러분들에게, 이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이 번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빛을 발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