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년6월22일, 열왕기하 4:1-7 (받았던 상처를 섬김과 사명으로 바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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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의 말씀을 되돌아보며, 우리 함께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가 받는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인생의 수 없는 위기로부터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님 ! 다윗처럼, (가장 큰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 매달립시다.
또한. 신앙의 멘토와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합시다.
그리고 아무리 절박하고 다급해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먼저 합시다.
하나님은 분명, 위기 뒤에 준비하신 큰 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여기에 모인 우리 중에, 단 한 번도
마음에 상처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성도가 있을까요 ?! 아니면 없을까요 ?!
물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
상처받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의 경우 이 둘 중 어느 한쪽의 삶을 삽니다.
첫째, 자기 받은 상처를 알기에, 그대로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입니다.
둘째, 자기 받은 상처를 알기에,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받은 사람을
싸매어 주고, 또 위로해 주는 사람입니다.
어느 남성(男性) 알코올 중독자를 소개합니다.
술이 없으면 잠시도 견딜 수 없는 어느 알코올 중독자가,
결국에는 간암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훗날, 큰아들은 입에 술을 한 잔도 대지 않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술고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술을 마시지 않습니까 ?"
큰아들이 대답합니다.
“우리 아버지를 봐서도, 제가 어떻게 술을 마실 수 있겠습니까 ?!"
두 아들을 잘 아는 그 사람이, 둘째 아들에게도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십니까 ?”
둘째 아들이 대답합니다.
“우리 아버지를 봐서도, 제가 어떻게 술을 안 마실 수 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아버지의 술 습관 때문에, 큰아들은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사람이 되었고,
도리어 둘째 아들은 술을 퍼 마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처를 끊는 사람도 있고, 상처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
어떤 직장인이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신경질을 냈습니다.
화가 난 며느리는 부엌에 나가서 고양이를 걷어찼습니다.
고양이도 화가 나서 쓰레기통을 업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상처는 마치 화살과 같아서, 맞은 화살을 꺾어버리지 않으면,
자칫 다른 사람을 향해 날려 보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군대도 보면, 상관에게 괴로움을 당한 사람이 부하를 괴롭힙니다.
가정에서도, 시집살이한 며느리가, 자기의 며느리를 괴롭힙니다.
미워하면서도 닮는다(닮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우리는 우리가 받았던 상처와 그 아픔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그런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상처와 그 아픔을 알기에,
비슷한 아픔을 당하는 사람을 싸매주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58년째 성구(聖具)를 만드는, 성애성구사 임선재 장로님을 소개합니다.
임선재 장로님은 어릴 때, 너무나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심장병에 걸려, 죽을 위기에 빠졌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부탁했지만, 병원비가 없다고 치료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브란스 병원의 한 의사가 무료로 치료해 주어 살아났습니다.
그 후 그가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되자,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무료로 치료해 주셔서 내가 살아났다.
아마도 나와 같은 환자가 세상에는 많을 것이다. 그들을 돕는 삶을 살자 !"
그래서 장로님은 매년 한 사람이 심장 수술을 받을 만큼의
큰 금액을 그 의사 선생님에게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2004년 전부터는 장학재단을 만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도 열심히 도왔습니다.
작년 2024년까지 임 장로님이 지원한 금액은 40억 원쯤 된다 합니다.
작년 12월, ‘제4회 참인간봉사상’을 수상한 임 장로님은,
국민일보 기자의 인터뷰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가 받았던 상처를 끊고,
그 상처와 아픔을 사명과 섬김으로 바꾸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상처를 경험했기에, 자신의 겪은 상처의 아픔을 바탕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다른 한 가족을 위로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엘리사 선지자입니다.
그가 경험했던 상처는,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부모님 및 가족과 헤어진, [이별의 상처]였습니다.
엘리사는 소 24마리로 농사를 짓는, 매우 부유한 농부였습니다.
열왕기상19;19.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エリヤはそこを去って、シャファテの子エリシャを見つけた。エリシャは、
十二くびきの牛を先に立て、その十二番目のくびきのそばで耕していた。)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그를 선지자로 부르셨습니다.
열왕기상19:19.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エリヤが彼のところを通り過ぎるとき自分の外套を彼に掛けた。)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은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열왕기상19:20.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エリシャは牛を放って、エリヤの後を追いかけて言った。「私の父と母に
口づけさせてください。それから、あなたに従って行きますから。」)
여러분 ! 엘리야가 허락을 했을까요, 허락하지 않았을까요 ?!
물론입니다. 허락했습니다. 그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열왕기상19:20.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エリヤは彼に言った。「行って来なさい。私があなたに何をしたか。」)
이에 엘리사는 돌아가 가족들과 작별하고, 엘리야를 따릅니다.
열왕기상19:21. 엘리사가 그를 떠나 돌아가서, 한 겨릿소를 가져다가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엘리야를 따르며 수종 들었더라
(エリシャは引き返して、一くびきの牛を取り、それを殺して、
牛の用具でその肉を調理し、人々に与えてそれを食べさせた。
それから彼は立ってエリヤについて行き、彼に仕え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선지자로 부름을 받은 엘리사는
하루아침에 부모 형제와 생이별을 하고,
사명의 길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것은 분명, 엘리사가 경험한 큰 아픔과 상처였을 것입니다.
둘째, 부유한 부모를 떠난 후 겪은, [가난의 상처]였습니다.
당시의 선지자는 일반적인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다른 일을 하려고 하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경제적으로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가난을 경험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불편했고, 또 부족했을 것입니다.
셋째, 진리를 외치는 것 때문에 겪는, [고독과 외로움의 상처]였습니다.
바른 소리를 외치고, 쓴소리를 외치니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주위에는, 부모님과 같은 따뜻한 위로자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엘리사가 받았던 상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상처를 안고 있는 엘리사에게,
선지 생도의 아내 중 한 여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습니다.
본문1절.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あなたのしもべである私の夫が死にました。ご存じのように、あなたの
しもべは主を恐れていました。ところが、債権者が来て、
私の二人の子どもを自分の奴隷にしようとしています。)
이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본문2절.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何をしてあげようか。私に話しなさい。あなたには、家の中に何があるのか。)
그러자 여인이 대답합니다.
본문2절.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家の中に何もありません。ただ、油の壺一つしかありません。)
그러자 엘리사가 다시 여인에게 말합니다.
본문3절.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빌릴 수 있을 만큼 많이 빌리라>
(外に行って、近所の皆から、器を借りて来なさい。
空の器を。それも、一つや二つではいけません。)
본문4절. <그리고>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そして、家に入ったら、あなたと子どもたちの背後の戸を閉めなさい。
そしてすべての器に油を注ぎ入れなさい。
いっぱいになったものは、わきに置きなさい。)
여인은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 그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그렇습니다. 빌려 온 그릇마다 기름이 가득 찼습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다시 말합니다.
본문7절.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行ってその油を売り、あなたの負債を払いなさい。
その残りで、あなたと子どもたちは暮らしていけま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엘리사는 가족과 헤어지는 아픔, 가난의 아픔, 고독의 아픔을 가진
선지자였기에 그 여인의 상처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상처 깊은 여인의 마음과 삶을 위로하고, 고쳐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어떤 상처를 안고 살고 계십니까 ?!
지금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상처는 무엇입니까 ?!
그것 때문에 얼마나 힘드십니까 ?!
그러나 여러분 !
아픔을 겪어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고통을 잘 압니다.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잘 압니다.
큰 상처를 받았던 사람이, 큰 상처 받은 사람의 마음을 잘 압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상처를, 너의 아픔을, 사명으로 바꾸라, 섬김으로 바꾸라 !"
"그리고 엘리사처럼 상처를 받은 사람을 향해 나아 가라 !"
사랑하는 여러분 !
엘리사처럼 이번 한 주간, 다음 세 가지를 행합시다.
첫째, 상처받은 사람을 찾아갑시다.
우리 주변에는 아픔으로 신음하며 부르짖는 이들이 많습니다.
너무 힘들고 아파, 신음조차 못 하고,
부르짖는 것조차도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주께 구합시다.
특히, 여러분 !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도울 수 없다고 말하지 맙시다.
몇 년 전,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30년 동안 한결같이,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한 분이, 한국의 TV 방송국을 통해 소개되었습니다.
그분은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30년간이나 그 일을 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방송국 기자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30년 전, 제 아들이 학교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곳은 보시다시피, 도로 구조상 교통사고가 나기 쉬운 지역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이 저와 같은 상처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매일 이곳에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당신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어줍시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는 남편의 죽음으로
큰 위기와 고통에 빠진 여인에게 말합니다.
본문2절.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何をしてあげようか。私に話しなさい。)
예수님이 길을 가실 때, 소경 두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소리 질러 외쳤습니다.
마태복음20:31.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
(主よ、ダビデの子よ。私たちをあわれんでください。)
그러자 예수님이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마태복음20:32. 예수께서 .......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イエスは言われた。「わたしに何をしてほしいのですか。」)
성도여러분 ! 우리도 물어줍시다.
"당신을 위해, 제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
셋째,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주고, 구체적으로 도와줍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사람이 나갈 길을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협력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야고보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2:14-17.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私の兄弟たち。だれかが自分には信仰があると言っても、
その人に行いがないなら、何の役に立つでしょうか。
そのような信仰がその人を救う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か。)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兄弟か姉妹に着る物がなく、毎日の食べ物にも事欠いているようなときに、)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あなたがたのうちのだれかが、その人たちに、「安心して行きなさい。
温まりなさい。満腹になるまで食べなさい」と言っても、
からだに必要な物を与えなければ、何の役に立つでしょう。)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同じように、信仰も行いが伴わないなら、それだけでは死んだものです。)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 은평교회에서 사역하셨던 김택수 목사님이란 분이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앞을 보지 못하시는 소경 목사님이십니다.
김 목사님이 소경이 된 것은, 1965년 12월 4일, 19세 때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에 가,
양잿물과 청산가리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가마솥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솥 안의 화학물질이 끓어 넘쳐, 김 목사님의 눈으로 튀었고,
그로 인해 양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두 눈을 잃고 절망하며 살던 어느 날,
택수 씨가 지팡이를 집고 비틀비틀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택수 씨에게 팔을 내밀었습니다.
그러면서 택수 씨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택수 씨가 내민 팔을 만져 보니,
그에게는 손이 없고 손목만 있었습니다.
“당신은 손이 없는 장애인이시군요. 나도 두 눈 없는 장애인입니다.”
이렇게 말했더니 그가 말을 했습니다.
"형제님 ! 나도 두 눈이 없습니다.”
택수 씨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더 하군요. 손도 없고 눈도 없고 !!!"
그러자 그 전도자가 말했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택수 씨가 그분에게 '당신이 누구세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은 당시 한국에 하나밖에 없던 맹인(시각장애인) 교회를
담임하며 목회하는 강영준 전도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성냥 공장을 하는 아버지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두 손목이 잘리고, 두 눈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 매우 낙심한 그도, 심하게 타락한 생활을 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강영준 전도사님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타락해 가는 아들 영준을 호되게 야단쳤습니다.
“어찌하여 이토록 방탕한 삶을 사느냐 ?!
너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서, 부끄럽지도 않으냐 ?!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예수님을 잘 믿어라.”
어머니의 불같은 충고에,
영준은 그때부터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가서 전도사님이 되었고, 지금 이렇게
예수님을 잘 믿으면 소망이 있다고 전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강 전도사님으로부터 큰 감동을 받은 택수는
그날부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후 택수는 안마와 침술도 배웠습니다.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려고요.
그리고 얼마 후, 신학교에 달려갔습니다.
강영준 전도사님처럼,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요.
그러자 사람들이 '어떻게 볼 수 없는 눈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겠냐' 야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택수 씨에게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감당할 수 있다'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학을 공부했고, 마침내
목사님이 되어, 지금까지 행복한 복음 사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한 사람이 상처를 끊어 내고, 그 상처를 경험 삼아 섬김의 삶,
사명의 삶을 사니까, 비슷한 상처를 입은 다른 사람이,
멋진 삶을 살게 되지 않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시간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픈 상처를 믿음으로 끊어버리고,
도리어 그 아픔의 경험으로 아파하는 이웃을 섬기라"
모든 상처를 딛고, 섬김과 사명의 삶을 살아,
도리어 상처받은 사람을 섬기며 치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