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2019年4월28일, 사도행전 6:1-7(나는 히브리파 그리스도인 ? 헬라파 그리스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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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또한 강한 군대의 힘으로,
또한 커다란 돌의 힘으로 막고 감추려 했지만,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이기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요한복음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이 물음에, "아멘"으로 답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다음 주일부터 우리 본향의 지체들이 지금의 10배로 갑자기 늘어난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
물론 행복한 고민입니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갑작스럽게 10배가 된다면, 아마도 예배를 모두 모여 드릴 수 없어,
여기 계신 여러분들은 새로운 성도들에게 예배당을 양보하고 옥상에서 예배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배 후 식사를 위해, 1주일 내내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갑자기 늘어난 새로운 성도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어쩌면, 분위기가 서먹서먹하고 조금은 어색할 것입니다.
또한, 유년주일학교 어린이들이 100여명으로 늘어,
그들의 떠드는 소리에 교사 선생님들이 녹초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사람이든 재산이든 무엇이 갑자기 늘어나면
좋은 것도 많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문제도 생긴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받은 후,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되고 또 부흥되어 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도 베드로가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3천명, 5천명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信者)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런데 여기에는 여자와 어린아이들이 포함되지 않았으니까,
모두 합하면 예루살렘교회는 어림잡아 1만 명 이상의 초대형 교회였을 것입니다.
결국, 열두 사도는 이들을 섬기며 살피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파김치가 되도록 뛰고 또 뛰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아주 사소한 일로 인하여, 문제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문제가 발단되는 내용이 본문1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여기에 ‘헬라파 유대인’, ‘히브리파 사람’이란 말이 나옵니다.
즉,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솔로몬 왕 때까지 하나였던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부터 남과 북으로 분열됩니다.
그 후 북쪽 이스라엘은 主前(B. C.)722년에 앗수르에 멸망 당하고,
남쪽 유다는 主前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합니다.
그때 많은 유대인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거나,
아니면 스스로 이스라엘을 떠나 지중해 연안의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해외로 흩어진 유대인을 ‘디아스포라’라고 합니다.
해외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도달한 그곳에 정착해서 자자손손 살게 됩니다.
그러다가 主前300년경,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근동세계를 통일한 후,
그들은 헬라어(그리이스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가 헬라어를 지금의 영어처럼 세계공용어로 사용하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흩어진 유대인들인 ‘디아스포라’들도,
헬라 문화권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며 생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이스라엘이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자기들 고유언어인 히브리어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러던 중, 많은 ‘디아스포라’들이,
죽은 후에라도 자기 조국에 묻히기를 원해서,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예루살렘교회의 지체가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여러분 ! 그렇다 하더라도, 예루살렘교회에 헬라파 그리스도인들보다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한편 여러분 !
오늘 본문에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히브리파 성도들을 원망하는 소리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왜일까요 ?
그것은, 교회 안에 있는 어려운 지체들을 교회가 도울 때,
그 대상에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자꾸만 빠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헬라파 성도들이 볼 때, 이른바 차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
아마도 그것은, 교회의 구제와 봉사를 담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 히브리파 성도들의 중심에는 12사도들이 있었습니다.
본문2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그렇습니다. 열두 사도들은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한편, 열두 사도들은 교회에 닥친 첫 위기를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2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그렇습니다. 12사도들은 잠시 본질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해야 할 최우선의 사역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잠시 잊은 채,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구제와 봉사에만 온 힘과 마음을 쏟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본질을 잊어버리니까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 역시 본질을 잃어버리면 곤란함에 빠집니다.
여러분 ! 우리가 일본에 온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
우리들이 그 학교에, 우리들이 그 직장에 가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
사랑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까 !!!
또한, 우리 본향교회와 우리 가정들이 무슨 이유 때문에 세워졌습니까 ?!
분명한 이유가 있지요. 하나님이 계획하신 놀라운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더구나 여러분 ! 우리가 오늘 지금 이 자리에 왜 있습니까 ?!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함이 아닙니까 !?
본문의 사도들은 문제가 발생함을 통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된 부분을 주저 없이 고칩니다.
본문3-4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それで、 兄弟たち、 あなたがたの中から、 霊と知恵に満ちた評判の良い人を七人選びなさい。
彼らにその仕事を任せよう。 わたしたちは、 祈りと御言葉の奉仕に専念することにします。)
그렇습니다. 이렇게, 교회 최초의 집사님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집사님을 택하는 교회의 최초 회의에 몇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우선 자격을 보겠습니다.
본문3절에 보면, 그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지혜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그 성령을 통해 주시는 지혜이므로,
결국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의 교회의 청지기들의 조건은
학벌 좋은 자, 집안 좋은 자, 인기가 있는 자, 오랫동안 함께 했던 자가 아니라,
성령이 충만한 자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교회 직분자들의 첫 번째 자격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한 사람일까요 ?
성령의 소욕(所欲)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갈라디아서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행하는 성령의 법이고,
또 하나는 육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육신의 법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는 100% 성령의 뜻만을 따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가 연약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육신의 법보다 성령의 법을 따릅니다.
또한,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무관심과 찡그림, 조금도 참아 주지 못하며, 자기 자신 밖에 모르며, 화내기 잘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최선의 헌신을 기울이지 않으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투자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색한 사람은
결코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교회의 청지기들을 세움에 있어,
그 무엇보다 이렇듯 성령 충만한 사람을 제1조건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 위해,
우선 성령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둘째, 칭찬받는 사람을 선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는 조건이라 한다면,
이것은 함께 한 지체들로부터 칭찬받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 !
지체들 사이에서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도를 섬기는 일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함께 한 우리 본향의 지체들이, 나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 생각할 것 같습니까 ?!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을 볼 때, 제가 용기가 나고 힘이 납니다. 할렐루야 !
자 ! 이런 조건 가운데서 뽑힌 사람이 본문에 기록된 일곱 명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이렇습니다.
본문5절,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
그런데 이 이름들을 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위의 이름을 오늘날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本郷성집, 木村춘임, Sarah 김, Paul 최, Peter 강 ....... !!!
그렇습니다. 투표 결과, 일곱 명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 즉 디아스포라들이었습니다.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초대 예루살렘교회에서,
첫 번째 집사님들로 선출된 사람들은 모두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파 성도들이 헬라파 성도들에게 몰표를 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 히브리파 성도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온갖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땅과 전통을 지켜왔던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그들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정말로 눈물겨운 것이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헬라파 성도들, 그들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
그들은 모두 해외파였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그들은 나라가 가장 어려울 때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이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을 받아 주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파 성도들은,
한 마음으로 초대 집사 7명을 모두 해외파에서 선출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실제로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은 우리가 고생할 때 외국에서 잘 먹고 잘 살았잖아.
너희가 조국을 위해 한 일이 뭐니,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불만 ?!”
그러나 여러분 !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국내파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해외파에게 귀한 직분을 양보했습니다.
여러분 ! 그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
예 ! 히브리파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생각보다, 먼저 복음을 생각했습니다.
누가 더 하나님 복음 사역에 적합한가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에 남기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초대 교회는 이제 예루살렘에만 머물지 않고 세계 속으로 복음이 확산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의 폭넓은 세계 경험과 그들의 언어 실력은
분명 복음전파에 매우 필요했습니다.
히브리파 성도들은 자신들의 좁은 시각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겸손히 헬라파 성도들을 자신들보다 앞선 자리에 세웠습니다.
자 ! 초대교회가 헬라파 성도들을 직분자로 세운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본문7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그렇습니다.
해외파 집사님들이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한 후,
이제까지는 생각도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허다한 제사장들의 무리가, 그러니까 한 두 명의 제사장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집단적으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 제사장들, 그들이 누굽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협력자들이었습니다.
히브리파 성도들이 교회의 전면에 나서 있는 동안,
그들과 제사장 그룹은 어쩌면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서로 상대를 수용할 만한 그릇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헬라파 집사들이 나선 뒤에는, 제사장들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해외파들의 활약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복음 역사의 획을 근,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그는 대표적인 헬라파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소 출신으로서, 헬라어가 더 유창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 학문은 물론, 헬라의 학문과 헬라의 관습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세계 복음화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시 지금 우리들의 가정에, 신앙에,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
그렇다면, 본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 쓰임 받는 아름다운 청지기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도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또한 함께 한 지체들에게도 칭찬받는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그리고 여러분 !
우리는 본향의 히브리파 그리스도인입니까 ? 헬라파 그리스도인입니까 ?
히브리파 성도들이 교회의 기초를 쌓았다고 한다면,
헬라파 성도들은 히브리파 성도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입어 복음화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저는 요즈음 우리 교회를 보면서 참 행복합니다.
본향에 함께 한 후, 5년이 지난 이른바 히브리파 본향 지체들은 지체들대로,
또한 본향에 함께 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헬라파 지체들은 지체들대로
각각의 자리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먼저 된 히브리파들이 밀어주고 기도해 주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헬라파들은 헬라파대로,
자신들이 가진 새로운 아이디어와 달란트들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히브리파들은 언제까지 히브리파고, 헬라파는 언제까지 헬라파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우리를 앞장서는 자리에 세우기도 하시고,
또 협력하는 자리에 세우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겸손히 순종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 모두가 헬라파 본향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정적으로 일하시면서 역사를 주도해 나가는 주의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들 모두가 히브리파 본향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낮춰 섬기며, 언제든지 다른 지체가 나의 섬김을 통해
그 가진 달란트를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그런 사람이 됩시다.
우리 하나님은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 본향의 지체를 200명으로 500명으로, 1000명으로 부흥케 하실 줄 믿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 교회는 아무리 지체들로 가득 찬다해도,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땅의 복음화를 멋지게 감당할 줄 믿습니다.
부흥의 불길이 본향과 이 땅에 타오를 때, 방관자가 되지 말고,
아름다운 헌신의 빛으로 타오르며, 겸손한 소금되어 녹아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