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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9 2019年2월3일, 요한복음 12:20-26(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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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1,432回 日時 19-02-06 10:47

本文

  오늘도 담임목사 입원으로 인해, 지난 설교말씀을 대신해서 올립니다.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이 오늘 성령의 능력, 성령의 권능을 받기를 축복합니다.
  당신을 통하여 죽어 가는 영혼들이 永生으로 옮기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으로부터 약2천년 전,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예수님을 따랐던 12제자들이 왜 예수님을 따랐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들은 왜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까 ?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이유는,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와 무엇이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실마리가 되는 성경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20:20-21,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태복음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가복음9:33-34,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겉으로 보기에는, 제자들은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께서 로마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왕국을 건설할 것으로 믿고,

  그 새 왕국에서 높아지기 위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즉, 세상에서의 명예와 성공을 위해 예수를 따랐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의 이러한 소망(즉, 예수님을 따라 성공하겠다는)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들이 따르는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때마다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행하셨고, 놀라운 교훈의 말씀을 주셨으며,

  백성들을 위로해 주심으로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키셨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지 만3년이 지난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의 가슴은 터질 듯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요한복음12:13, “호산나(‘이제 구원하옵소서’의 의미) 찬송하리로다

  主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王이시여”


  엄청난 환희와 엄청난 찬송의 소리였습니다.

  제자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자신들의 선택이 탁월한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광경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확실한 증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스가랴9:9-10, “시온의 딸들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여러분 !  이 내용이 무엇입니까 ?
  메시야이신 구세주는 아주 겸손하셔서 나귀새끼를 타고 오시고,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을 베푸시는 분으로 오신다는 예언입니다.

  또한 그분이 오시기만 하면 이 세상에는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권세와 능력은 땅 끝까지 미쳐서 아무도 그를 대적할 권세가 없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지금 제자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바로 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

  그러므로 제자들은 확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신들의 성공과 명예와 권력을 말입니다.


  더구나 당시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헬라인들도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마침 제자 중에 하나였던 빌립을 찾아가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본문21절,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요청을 받은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상의한 후, 안드레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헬라인들이 주를 뵙기를 청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23절,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도다”


  이 말씀에 제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입에서 처음으로 [영광]이란 말씀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전에도 예수님이 영광이란 말씀을 몇 번 하셨지만,

  오늘 栄光은 前의 영광하고는 그 쓰임새가 달랐습니다.
  이제까지의 영광은 예수님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영광은 자신을 위한 영광이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제자들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그렇지. 이제야 때가 왔구나. 그 동안 3년 넘게 죽은 듯이 지내셨지.

  조롱받으셨지. 수모를 받으셨지. 이제 드디어 영광을 받으시는구나.

  드디어 당신의 능력으로, 세상 권세자들을 무릎꿇게 하시는구나”
 “자 ! 그렇다면, 이제 나에게도 때가 왔구나”
 “이제 예수께서 로마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왕국을 건설하시겠구나”
  제자들은 마음은 흥분으로 점점 고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제자들의 마음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정신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인데, 이처럼 큰 충격이 되었을까요 ?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렇습니다.

  영광을 말씀하신 뒤 곧 바로 이어서 하신 말씀은 ‘죽음’이었고 ‘십자가’였습니다.

  더구나 이 말씀을,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6:6-7,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요한복음16:32-33,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15:13-14,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 곧 나의 친구라”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의 마음은,

  영광을 기대하고, 성공을 기대하고, 보화를 기대했는데,

  지금 그들 앞에는 근심과 환난과 죽음이 놓여졌습니다.
  예수님이 품은 것과, 제자들이 품은 것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한편 여러분 !  잠깐 예수님의 마음을 살펴볼까요 !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십자가로 꽉 차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십자가를 질 것인가 ?!

  그 힘들고 외로운 십자가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 ?!

  남겨진 제자들을 어떻게 해야되나 ?!
  온통 십자가와 구원해야 될 세상 생각으로만 꽉 차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제자들은 정반대의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어찌 보면 우리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십자가와 사명, 그리고 이 땅의 죽어 가는 영혼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득 차 있는데,

  우리들은 우리들 문제에만 푹 빠져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할까 ?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신앙생활 할까 ?

  어떻게 하면 좀 더 복을 많이 받을까 ?

  어떻게 하면 (취업을, 진학을, 결혼을, 비자를, 건강을, 자식을, 성공을) 얻을까 ?

  어떻게 하면 내 영향력이 더 커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가는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을 말입니다.


  자 ! 무엇일까요 ?

  다시 한 번 본문2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기 위해서는 첫째로 죽어야 합니다.
  한 알의 밀 알이 있습니다.

  그럱데 그것이 안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합니다.
  한 알의 밀 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땅에 떨어져서 무덤 속에 매장되듯이, 땅 속 깊이 묻힐 때입니다.
  그러면 썩습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거기서 싹이 나오고 그 연약한 싹이 몇 십 몇 백 겹의 흙을 뚫고 나옵니다.

  그리고 자랍니다. 그리고 결국은 수백, 수천 배의 열매가 맺습니다.


  1885년4월2일, 갓 결혼한 아내를 데리고

  한국 제물포항에 첫 발을 내디딘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아펜젤러였습니다. 그 나이 27세 때였습니다.
  그 날이 마침 부활절 날이었습니다.

  그가 한국에 도착하면서 미국 선교본부에 도착소식을 전했는데 그 마지막을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그 날 죽음의 철창을 깨뜨리신 주님께서 이 민족을 얽매고 있는 사슬을 깨뜨리시어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빛과 자유를 얻게 하소서”


  그는 당시 조선 땅에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떨어졌습니다.
  이 밀 알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지닌, 살아있는 밀 알이었습니다.
  이 밀 알은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감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밀 알은 더 많은 생명을 위해 자신을 드리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02년6월, 그는 선교사의 일을 수행하던 중,

  성서번역자 모임을 위해 목포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서번역을 돕던 조한규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던 이화학당의 한 여학생을 데리고

  일본 오사카의 선박회사 소유인 구마가와마루 호에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군산 앞 바다 오식도 근해에서

  또 다른 일본 배와 충돌해서 그만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펜젤러 선교사는 수영도 잘 하고, 탈출이 쉬운 일등석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기고 말았을까요 ?!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3등실에 있었던 이화학당 여학생 등을 구하러 내려갔다가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명보다, 동역자의 생명을 귀히 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그도 걸은 것입니다.

  당시 그의 나이 44살이었습니다.
  그는 조선 땅에서 17년을 살고 갔습니다.

  그리고 한 알의 밀 알이 되어 썩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밀 알은 100년 후, 5만 개의 교회가 되고 천만의 영혼을 살리는 열매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 이러한 예는 세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수없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진정으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 사는 것처럼 살기를 원하십니까 ?
  그렇다면, 한 알의 밀 알이 되십시오. 그리고 죽어서 썩어지십시오.
  자기를 밟고 올라설 수 있도록, 다른 사람에게 길을 터 주십시오.
  그래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삶과 소유를 내 드리십시오.
  그럴 때 우리들은 영광을 받게 되고, 진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밀 알 같은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기 위해서는, 내 생명을 미워해야 합니다.


  본문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믿음의 선배들 가운데는, 안락하게, 어려움 겪지 않으면서 살 수 있었던 사람들이

  일부러 희생과 봉사의 길에 접어든 경우가 많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그렇고, 슈바이처가 그렇고, 장기려 박사가 그렇습니다.
  리빙스턴이, 언더우드 선교사가, 토마스 선교사가 그렇습니다.


  이 사람 모두가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

  자기의 생애를 하나님과 남들을 위해 대담하게 희생한 사람입니다.

  그들 때문에 인류는 좀 더 풍요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만약 자기의 삶을 즐기고자 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혜택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구원과 평안은 그들의 희생 위에서 꽃핀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안이한 길을 택해서, 모든 긴장을 피하고,

  난로가에 담요를 쓰고 가만히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우리들 것만 돌보고, 우리들 것만 살핀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세상은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교초기 때 강원도 철원에서 활동하셨던 Miss Cook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자리를 잡게 됐을 무렵,

  하나님께 이끌려 한 선교단체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국으로 파견이 됐습니다.
  낯설고, 물 다르고, 풍습이 다른 한국에서,

  그것도 환경이 아주 열악한 시골에서, 여자의 몸으로 열심히 선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오래 전부터 사귀어 오던 애인이 있었습니다.
  이 Cook선교사님이 한국으로 온다고 할 때도 엄청나게 반대를 했지만

  그 결심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이 청년이 자기 애인을 한국으로 보내고 나서,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두 달 동안 배를 타고 한국으로 달려 왔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기 애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한 얘기가 뭐냐하면 자기랑 같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결혼해서,

  거기서 선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Cook선교사님은 그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 청년은 며칠 동안 고민을 하더니, 최종적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

 “조국은 잊을 수 있어도 당신은 잊을 수 없소”라고 하면서

 “당신과 함께 결혼해서 한국에서 살겠소” 그렇게 말했답니다.
  그때 Cook선교사님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미안해요. 저는 이미 결혼을 했답니다.

  한국이 제 신랑이고, 저는 그 신랑 하나만을 섬기기로 작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님은 본문26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희생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이며, 내 생명을 버리는 길입니다.
  온갖 멸시와 조롱과 수치를 당해야 하는 길입니다.
  침 뱉음을 당하고, 따귀를 맞으며, 채찍질을 당하고, 손에 못을 박혀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어야 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이 길을 걷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어느 날, 성 프란시스가 우물가에서, 자기 하인이 물을 긷는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이 물을 길을 때마다 두레박에 나무 막대기를 집어넣는 겁니다.
  그래서 왜 나무 막대기를 번번이 두레박에 넣고 물을 길어 올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통을 끌어올리면, 꽉 찼든, 안 찼든, 줄에 매달린 두레박은 반드시 흔들리게 되고,

  그러면 물이 많이 쏟아져 버립니다. 그런데 막대기를 하나 넣어두면 그렇지 않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깨달은 바를 프란시스는 자기 명상록에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의 물통과 같습니다.

  이 물통이 때로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고통 때문에 흔들리고,

  또 어떤 때는 죄책감에 흔들리고, 또 어떤 때는 가난에 시달리고, 때론 절망에 부서집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어찌해야 합니까 ?!

  그 물통 속에 나무를 하나 담아야 합니다.

  그 나무는 십자가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그것을 담으면, 물통은 흔들리지 않고 물은 쏟아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물론 엄청난 십자가였습니다.
  온 세상 죄를 다 지고 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십자가는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작은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인생의 열매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 ?

  또는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고, 얼마나 십자가를 졌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의 면류관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버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본향교회의 영광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고,

  본향의 지체된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마나 죽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부디 예수님 안에서 죽으시고, 밀 알이 되어서

  主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그 한 알의 밀 알로 많은 열매를 맺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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