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2월9일, 야고보서 3:1-12(말<言葉> 조심하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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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성도님은 정말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도님 !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처럼,
우리도 우리의 죄로 인해, 사단 마귀에게 고발당해, 꼼짝없이 죽을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당할 죄의 형벌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당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구원(救援)해 주셨습니다.
성도님 ! 이처럼 우리가, 무서운 죄의 짐을 벗어버렸으니,
우리가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1949년 독일의 암 바흐에서 태어나
[비둘기](1987년), [좀머 씨 이야기](1991년) 등의 소설로 널리 알려진 작가가 있습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인데, 그가 쓴 단편 소설 중 [깊이에의 강요]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단편 소설의 주인공은 한 여류 화가(畫家)입니다.
소설 속의 화가는, 재능도 있고, 또 열심히 노력도 하여,
드디어 자신이 그린 그림을 발표하는 첫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전시회 첫날, 어느 평론가가 그녀의 작품을 돌아본 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당신의 작품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으나,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평론가로부터 자신의 작품 평을 들은 이 화가는,
"당신의 작품은 재능도 보이고 마음에도 와 닿으나"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다만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라는 말에만 마음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그 두 글자에 집착(執着)하기 시작합니다.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깊이'를 진전시키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비방하며,
술과 약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급기야 아름다웠던 그녀의 모습은, 고뇌와 집착으로 엉망이 되고 말았고,
마침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그녀는, 자신의 그림들을 전부 찢어버린 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참 슬픈 소설입니다.
여러분 ! 소설 [깊이에의 강요]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말하고 있지만,
그중 하나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성경은 말의 중요성에 대해 몇 번을 강조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16:24.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親切な言葉は蜜の滴り。魂に甘く、骨を癒す。)
잠언18: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死も生も舌の力に支配される。舌を愛する者はその実りを食らう。)
에베소서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悪い言葉を一切口にしてはなりません。ただ、聞く人に恵みが与えられるように、
その人を造り上げるのに役立つ言葉を、必要に応じて語りなさい。)
그런데 여러분 ! 정작 우리는 삶 속에서, 너무 쉽게 말을 합니다.
내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
혹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불쑥 내뱉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한 번 입에서 나간 말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말하고 나서 후회해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한마디의 말실수 때문에, 많은 인간관계에 깨지고 맙니다.
여러분 ! 말, 즉 대화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좋은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의 실수로 인하여, 오히려 좋았던 관계를 깨뜨려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말을 통해, 상대를 비방하며 자기 의로움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좋은 언어습관입니다.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나쁜 언어(말) 습관을 버리고,
긍정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는 좋은 언어습관을 지녀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나쁜 언어습관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는 좋은 언어습관이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좋은 언어습관을 가지려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
첫째, 좋은 언어습관을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말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의 마음속에 확실히 새겨야 합니다.
본문4-5절.
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また、船を御覧なさい。あのように大きくて、強風に吹きまくられている船も、舵取りは、ごく小さい舵で意のままに操ります。)
5. 이처럼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同じように、舌は小さな器官ですが、大言壮語するのです。御覧なさい。どんなに小さな火でも大きい森を燃やしてしまう。)
그렇습니다.
비록 키(배의 키)는 배의 전체 크기로 볼 때, 아주 작은 것이지만,
배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 혀의 말도 그렇습니다.
한 잡지의 글을 소개합니다.
제목 : 나는 누구일까요 ?
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고도, 그로부터 모든 걸 빼앗을 수 있습니다.
나는 수많은 가정과 교회, 국가를 파괴했고 지금도 파괴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껏 수많은 인생을 파괴하였습니다.
아무리 순결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하며, 아무리 정갈한 사람도 내게는 무력합니다.
나는 바다의 모래보다 더 많은 나의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
예 ! 나는 [부정적인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앞서 소개한 것처럼,
잘못된 말 한마디가, 사람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야 합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말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말 중에 가장 대표적인 말은, [칭찬의 말]입니다.
좋은 생각이라는 잡지에 실린, 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제목: 칭찬은 건달(깡패)도 춤추게 한다.
글쓴이가 대학 시절, 어느 여름날 친구들과 계곡으로 캠프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의 건달들이 여행객들을 위협하며, 자릿세를 받았습니다.
드디어 글쓴이의 텐트로도 건달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앞장서 걸어오던 건달 두목이 쌍절곤을 휘두르는데,
그것이 순간 너무 멋있게 보여, 글쓴이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애들아 ! 저분 정말 멋있다. 진짜 이소룡 같지 않니 !!“
그러자 건달 두목이 이 소리를 듣고서는 기분이 좋아져,
그때부터 자그마치 네 시간이나, 글쓴이와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났다고 합니다.
물론 자릿세는 내지 않았고요.
그리고 다음 날, 경운기를 가지고 계곡을 다시 찾아온 건달 두목이,
괜찮다고 사양하는 그들을 억지로 태워,
20분이면 갈 역까지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려 가면서, 또 자랑을 늘어놓더랍니다.
마침내 역에 도착하니, 먹을 것도 챙겨주고, 용돈까지 주면서,
내년에도 꼭 놀러 오라고 신신당부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칭찬은 건달도 춤추게 할 정도로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언어습관을 가지려면,
이렇듯 말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과 능력이 있는지를,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둘째, 가장 좋은 언어습관은, 말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본문7-8절.
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あらゆる種類の獣や鳥、また這うものや海の生き物は、人間によって制御されていますし、これまでも制御されてきました。)
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しかし、舌を制御できる人は一人もいません。舌は、疲れを知らない悪で、死をもたらす毒に満ちていま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말은 길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길들기까지는 절제하고 또 절제해야 합니다.
더구나 말은, 사람의 마음과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온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혀를 절제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말로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줌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말을 절제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
무조건 말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요 ?!
물론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사실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실수하는 말이 있게 되고,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단지 듣기만 해서는 온전한 절제가 아닙니다.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은 하지 않되,
생명을 위한 말, 도움과 격려의 말, 칭찬하고 인정하는 말은 적극적으로 해야 합니다.
몇 해 전, 행복마을이라는 잡지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인간의 뇌세포는 98%가 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말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을 하면, 그 말이 뇌에 박히고, 뇌는 척수(脊髓)에게 지시하고, 척수는 몸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입으로 할 수 있다고 말하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반대로 우리의 입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하면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긍정적인 말, 희망적인 말, 복된 말을 통해, 가족과 친구와 동료를 축복하여,
그들에게, 매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축복한 대로, 그들의 뇌에, 척수에, 손과 발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여러분 ! 아침 시간을 귀하게 쓰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른 사람들을 축복해야겠지만, 우선 자신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거울을 보면서,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통해 아름다운 일을 이루실 거야 !"
"오늘 직장(학교)에서 감당할 일을, 멋지고 놀랍게 잘 감당할 수 있어"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야 !"
이렇듯 자신을 향해서도, 긍정적인 말, 격려의 말을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그 말대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셋째, 우리 말의 근원인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은혜로 변화 받아야 합니다.
본문11절.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泉の同じ穴から、甘い水と苦い水がわき出るでしょうか。)
여기에서 샘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키고, 단물은 생명을 살리는 말을,
그리고 쓴 물은 생명을 죽이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물의 근원이 샘인 것처럼, 말의 근원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한 근원에서 나오는 물이 다 똑같은 맛인 것처럼, 말도 그 마음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사실 '좋은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을 해야지 !"라고 누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냥 험한 말, 비판하는 말, 상대를 조롱하는 말이 나오고 맙니다.
왜 그렇습니까 ?
예 ! 우리 마음이 아직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2:34-35.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蝮の子らよ、あなたたちは悪い人間であるのに、どうして良いことが言えようか。
人の口からは、心にあふれていることが出て来るのである。)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善い人は、良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良いものを取り出し、
悪い人は、悪いものを入れた倉から悪いものを取り出してく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좋은 말을 하려면, 우리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생각을 바꾼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인격이 하나님 자녀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선지자 이사야는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여러분 ! 아마도 이사야는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 오늘도 제 입술을 지켜주세요.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을 버리고, 긍정적인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변화시켜 주세요."
우리 하나님은 이사야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주신 응답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사야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主なる神は、弟子としての舌をわたしに与え/疲れた人を励ますように/言葉を呼び覚ましてくださる。
朝ごとにわたしの耳を呼び覚まし/弟子として聞き従うようにしてくださ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매일 아침 하나님께 엎드려, 하루의 입술(말)을 주님께 의탁하여,
우리의 말(언어)로도 사람을 살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19세기, 런던의 가장 유명한 설교자였던 알렉산더 매클라렌 목사님이,
어느 주일날 그 도시에서 무신론자로 잘 알려진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목사님은, 그 무신론자에게,
4주 동안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를 가르쳐 주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드디어 네 번째 주일예배가 끝난 뒤, 그 무신론자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매클라렌 목사님은 너무나 기뻐서, 어느 설교에 특히 감동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무신론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설교와 가르침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독교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 할머니였습니다."
"몇 주 전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을 향하다가,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 할머니 한 분을 보았는데,
길이 얼어서 걷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제가 좀 도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저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구주이신 예수님을 선생님도 아시는군요 !"
"그분은 제 인생의 전부예요. 선생님도 그분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그 한마디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을 사랑하는 어떤 성도의 한마디 말이,
때로는 능력 있는 설교자의 설교보다도,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 그리고 이번 한 주간도,
우리 입의 복된 말로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