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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9 2019년12월15일, 마태복음 11:2-6(의심을 이기기 위해, 성소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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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8,509回 日時 19-12-21 17:37

本文

  지난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 ! 어떤 일의 주인공도 되되,

  그보다 더 많이, 좋은 들러리(Best Man, 협력자)의 사명도 힘껏 감당합시다.
  들러리(협력자)는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자기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들러리(협력자)는 주인공의 기쁨이, 곧 자신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들러리(협력자)는 주인공을 위해, 한없이 작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도 세례 요한에 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

  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해 보면, 세례 요한은 주인공의 삶을 살았습니까

  아니면 들러리(협력자)의 삶을 살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참 귀한 들러리(협력자)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한 고백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3:29-30.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花嫁を迎えるのは花婿だ。花婿の介添え人はそばに立って耳を傾け、花婿の声が聞こえると大いに喜ぶ。

      だから、わたしは喜びで満たされている。)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あの方は栄え、わたしは衰えねばならない。)

  우리말성경.

  신부를 얻는 자는 신랑이다. 그러나 신랑의 친구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신랑의 음성을 들으면 그 음성으로 인해 매우 기뻐한다.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다. 그분은 흥해야 하고 나는 쇠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はっきり言っておく。およそ女から生まれた者のうち、 洗禮者ヨハネより偉大な者は現れなかった。)


  더구나, 여러분 ! 이 세례 요한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
  마태복음3:3. 그(세례 요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6개월 전에 출생해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라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직접 세례를 베푼 사명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예수님에게 임하심을 직접 목격한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향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これはわたしの愛する子、わたしの心に適う者)”(마태복음3:17) 하시는 하나님 음성을,

  직접 들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을 보면, 놀라운 사실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토록 대단한 믿음의 사람인 세례 요한, 큰 체험을 반복해 경험한 그 세례 요한이,

  신앙적으로 크게 흔들린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아마도 세례 요한의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예수님에 대한 의심(疑心)이, 물밀 듯이 밀려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의심하니 평안함이 없고 평안함이 없으니, 참으로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이렇게 묻습니다.
  본문2-3절. 요한이 .......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ヨハネは ..... 自分の弟子たちを送って、尋ねさせた。

 「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それとも、他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여러분 !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
  이미 앞에서 소개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직접 고백하며 담대히 선포했던 세례 요한,

  더구나 하나님께로부터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라고] 보냄을 받은 그 세례 요한이,

  이런 당돌한 질문을 예수님께 합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来るべき方は、あなたでしょうか。それとも、他の方を待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세례 요한의 의심(疑心, 疑い), 그의 흔들림은,

  사실 우리에게는 도리어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때때로 신앙에 대한 의심과 흔들림이 찾아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례 요한같이 위대한 분에게 의심이 생겼으면, 우리에게도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연약한 우리에게 의심이 찾아오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아주 좋은 책을 많이 쓰는 기독 작가 중 한 사람인 필립 얀시가 동역자와 공저한 책,

 [내가 크리스천이 되었을 때, 내게 들려주지 않았던 그 무엇들]에서, 이러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이 실재(実在)하시는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성경 속의 위대한 인물들도 이와 같았다.

  의심이 항상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의심은 우리의 믿음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의심(疑心, 疑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그 의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의심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의심을 가진 사람은,

  어떤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사실 기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식의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하는 의문은 가지지만,

  그에 대해 확신한 답을 얻기 위해, 힘쓰고 애쓰지 않습니다.

  이런 분에게는 하나님이 계셔도 괜찮고 안 계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있어서 교회는, 자신의 인간관계를 성장시키는 곳이며, 외로움을 달래주는 곳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에 대해 의심은 하지만, 그것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는 않습니다.


  둘째, 그 의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는 의심입니다.

  이 의심은, 결과적으로 더 깊은 이해와 더 큰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이러한 의심을 하는 사람은, 만약 의심이 생기면, 책을 읽고, 또 선배에게 묻고 해서,

  어떻게 하든지 자신의 그 의심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심이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것이면,

  목사님과 상담하고, 말씀을 간절히 묵상하며, 하나님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 ! 저에게 가르쳐 주세요. 이 의심을 풀 수 있게 해 주세요. 성령님 제 마음을 만져 주세요 !”


  사랑하는 여러분 !

  구약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사건들을 보면, 때때로 선인(善人)보다 악인(悪人)이 더욱더 형통하고,

  또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는 사람들과 세계를 다스리며 정복할 때가 있습니다.
  예 ! 바르게 사는 자들보다, 악한 자들이 더 잘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리어, 믿음의 사람들은 고통을 받습니다. 악인에게 지배당합니다.


  이런 황당한 일을 놓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계시는 것인가 ?”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 하나님은 정말 공의(公義)로운 분이신가 ?”
  여기에서 공의(公義)라는 것은,

  잘한 것에는 상(賞)을 주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벌(罰)을 주는 성품(性品)을 말합니다.

  시편73편을 기록한 아삽이라는 분도 이런 의심을 했습니다.
  1절. 하나님이 .......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절.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4절.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5절.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6절. 그러므로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7절.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8절.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9절.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렇습니다. 아삽은, 의심을 지나, 질투에 가까운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삽은 자신의 의심을 어떻게 해결 받았습니까 ?
  시편73:16-19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6절. 내가 어쩌면 이(악인들이 더 잘살고, 의인들이 도리어 고난 당하는 부조리)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절.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19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아삽의 의심은, 하나님의 성소에 나아가 기도하는 가운데 없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에게도 때때로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의심이 우리의 삶 전체를 흔들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수십 년간의 신앙생활이 헛된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그냥 견디시겠습니까 ?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정말로 신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습관적인 신앙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마음에 의심이 생길 때, 성소로 나아가 하나님께 물으십시오.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한 가르침과 확신을 얻으십시오.
  그래야 우리 속에 온전한 기쁨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본문의 세례 요한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세례 요한의 믿음이 흔들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主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또 자신의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 즉, ‘오실 그분’이 오시면, 로마의 압제와 세상 온갖 고통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메시아 대망(待望) 사상(思想)입니다.
  이러한 메시아 대망 사상은 당시 대다수 유대인의 소망이었고,

  세례 요한도 이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을 팔았던 가룟 유다도 이 사상(思想)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에 의하면, 메시아는 오셔서 완전히 승리하셔야 했습니다.
  정치적 혁명을 일으켜, 짓눌려있는 자신들에게, 자유와 평화와 번영을 주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생각하고 기다린 메시아는,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해야 할 분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이러한 일을 하실 분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천국을 건설하시고, 정의사회를 이루시기 위해,

  빨리 혁명을 일으키셔야 하는데, 이것을 안 하시는 겁니다.
  더구나 많은 시간 동안, 아픈 사람들만 돌보아 주고 계시고, 병든 자들 치료하고 계시며,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만 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의 믿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복음(福音)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 이것이 기독교 복음의 핵심입니다.

  물론 우리의 신앙은,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핵심은 뒤로하고,

  신앙을 가진 후에, 자신들이 얻을 것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이나 가룟 유다 등의 사람은 혁명을 통한 천국 건설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 찾아오는 마음의 평안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얻을 사업의 성공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얻을 좋은 학교의 합격과 좋은 직장의 취직을,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좋은 배우자 얻기를,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 인생의 성공(명예, 돈, 권력)을 얻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후, 자신들이 기대하던 것,

  즉 앞서 열거한 것들을 얻지 못하면, 서서히 의심이 일어납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처럼 말입니다.


  사실 요한은 영광의 메시아, 승리의 메시아를 바라봤습니다.

  오직 그것을 꿈꾸어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지금 세례 요한 앞에 나타난 메시아는 사랑의 메시아, 희생의 메시아, 고난의 메시아였습니다.

  세례 요한 자신이 기대하고 생각했던 영광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가장 옳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만이 절대적인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맞추는 것이, 바로 온전한 신앙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께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은 평생 흔들림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 사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항상 같을 수 없습니다.
  또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나를 향한 내 목적이 항상 같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하나님 말씀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 꿈은 이러한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과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하나님의 계획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는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한 앞서 소개한 아삽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성소로 나아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지혜를 얻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 ! 내 생각만이 맞는 것이 아니었구나 !”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구나 !”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것이 아닌, 훨씬 좋은 길을 예비해 주셨구나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런 깨달음의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보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5절.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렇습니다. 듣고 본 것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말씀은 참 무섭습니다.
  왜 무섭습니까 ? 세례 요한도 이것은 알았거든요.
  사실 세례 요한이 원했던 것은, “언제 이 땅에 천국을 건설합니까 ?”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은 혁명이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

  내가 메시아이니 네 생각을 버리고 내게 맞추라는 것입니다.
 “너 세례 요한의 방법이 아닌, 나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니

  너는 오직 순종함으로 받아들이라”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참 무겁습니다.
  본문6절.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방법이,

  때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 실족함을 줄 정도로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그저 순종하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혹시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길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

  기대했던 평안한 신앙생활과는 많이 차이가 납니까 ?!
  그래서 혹 신앙을 잃을 위기까지 처해 있지는 않습니까 ?!
  물론입니다. 당연히 정상입니다.
  의심과 불평, 질투는 우리 신앙인에게 반드시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즉 의심이 우리를 덮을 때,
  우리도 아삽처럼, 성소로 나아와 기도합시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본문의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께 직접 물읍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던 것처럼,

  우리 마음과 영혼도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모든 의심을 이겨내고,

  끝내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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