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5월31일, 누가복음 11:9-13(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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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과 가족을 통하여 주시는 행복은,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신 채울 수 없는,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먼저 부부가 행복해야 합니다.
성도님 ! 부부가 한 몸, 한마음이 되어야 온 가정이 행복합니다.
아내가 자기 남편을 경외(敬畏)해야 온 가정이 행복합니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온 가정이 행복합니다.
여러분 ! 요즘 어떠십니까 ?
혹, 별말 아닌 것에 짜증 나거나, 혹은 화를 내거나 하지 않으십니까 ?
혹, 만사(萬事)가 귀찮게 느껴지거나, 피로감을 자주 느끼십니까 ?
예배드림이 부담되거나, 홀로 앉아 기도했던 적이 오래전 일입니까 ?!
자 ! 세 가지 중, 몇 가지를 ‘예’라고 대답하셨습니까 ?
정반대 방향에서 다시 한번 묻겠습니까 ?
여러분 ! 요즘 어떠십니까 ?
혹, 괜히 콧노래가 나오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우십니까 ?
무슨 일이 다가와도 두렵지 않고, 하루하루가 금방 지나갑니까 ?
주일(主日)이 기다려지고, 찬송과 기도와 예배드림이 행복합니까 ?
자 ! 이번에는 세 가지 중, 몇 가지를 ‘예’라고 대답하셨습니까 ?
만약 먼저 드린 질문에 두 번 이상 ‘예’라고 대답하셨다면,
우리의 영혼(靈魂) 상태는 별로 건강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나중 드린 질문에 두 번 이상 ‘예’라고 대답하셨다면,
우리의 영혼(靈魂) 상태는 매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 ! 우리들의 영적 건강은 어떻습니까 ? 건강하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부디 영혼이 강건하여, 범사(凡事)가 잘 되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에도 똑같이 나오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기도에 대한 말씀이지요.
유명한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마태복음의 말씀과,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의 말씀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자 ! 어느 부분일까요 ?
마태복음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りながらも、自分の子供には良い物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
まして、あなたがたの天の父は、求める者に良い物をくださるにちがいない。)
본문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りながらも、自分の子供には良い物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
まして天の父は求める者に聖霊を与えてくださる。)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에 대해,
마태는 그냥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누가는 주실 것이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두 부분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좋은 것’은, 바로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다시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믿으십니까 ?
물론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
이것 자체가 이미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신종코로나 시대에, 수많은 방해와 소문을 물리치고,
이처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 성령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여러분 가운데 성령이 함께하심을 믿으십시오.
한 가지 또 묻겠습니다.(오늘은 참 많이도 묻습니다)
자 ! 이처럼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이 분명한데,
또 성령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 아니면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까 ?!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성경 말씀을 몇 말씀 보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사도들을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一同は聖霊に満たされ)
자 ! 여러분 !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때 처음 성령을 받은 것입니까 ?
아니면, 그전에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까 ?
물론입니다. 사도들은 이미 전에 성령을 받았었습니다.
언제였습니까 ?!
요한복음20:22.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彼らに息を吹きかけて言われた。聖霊を受けなさい。)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날 두려움에 떨던 사도들을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성령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사도들은 부활의 날에는 성령을 받았고, 오순절 날에는 성령 충만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몇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 속에 성령이 계신 것과,
그 계신 성령이 충만한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 헌신하는 것,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 등은 오직 성령의 인도로 가능합니다.
고린도전서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聖霊によらなければ、だれも「イエスは主である」とは言えないのです。)
그런데, 성령의 인도로 이런 기본적인 신앙생활은 하면서도,
때로는 예배가 지루하고, 말씀이 안 들리고, 찬송에 마음이 안 담깁니다.
이상하게, 기도만 하려고 하면, 졸리고 다른 생각이 마∼악 납니다.
물론입니다.
우리가 이러는 이유는,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기는 한 데,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해, 성령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기는 하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갈급하십니까 ?!
혹, 주일을 예배와 봉사와 섬김으로 보냈는데도, 저녁이 되면 괜히 짜증이 납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빨리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끔 술에 취하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에 취해야(충만해야) 합니다.
에베소서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酒に酔いしれてはなりません。それは身を持ち崩すもとです。むしろ、霊に満たされなさい。)
사랑하는 여러분 ! 왜 주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화가 납니까 ?
때로는 무력감에 빠집니까, 때로는 지치고 짜증 나고 힘이 없습니까 ?
그것은 주님의 일을, 오직 우리의 힘으로만 행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스가랴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성령)으로 되느니라
(武力によらず、権力によらず/ただわが霊によって、と万軍の主は言われ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힘으로 해야, 정말로 즐거운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해야, 감사가 넘치는 것입니다.
본향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별별 생각이 다 납니다.
힘들고 지칩니다.
그런데 깨닫습니다.
그런 부분들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노력과 힘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오직 성령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신앙생활만 그렇고,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행하는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본향지체들이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직장 일 중에서도 우리의 힘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도, 결혼도, 자녀교육도, 사업도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만 주시려고 남겨 두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역을 채움 받기 위해,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우리들 앞에, 종이 한 장씩을 주고, 가장 간절한 기도제목을 쓰라고 한다면,
무슨 기도의 제목을 쓰시겠습니까 ?
저나 여러분이나 똑같이 “성령 충만을 주옵소서 !” 그것이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본문을 통해서,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주시고 싶으신 것이 성령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본문13절.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まして天の父は求める者に聖霊を与えてくださる。)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성령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기도는,
우리가 성령 충만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여러분 !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 충만함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여, 성령 충만 받읍시다.
둘째, 성령 안에 좋은 것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평소에 “주님 답답해 죽겠습니다. 제 마음에 기쁨을 주옵소서. 왜 제 마음이 시원하지 않습니까 ?”하며
기도하던 사람이, 성령 충만을 받으면, 그 기도가 사라집니다.
성령께서 그 마음에 기쁨과 시원함을 넉넉히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에 막혔던 것을 뻥 뚫어 주시니까, 기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성령 안에 기도의 응답이 다 들어있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의 기도가 참 단순해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복잡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이 다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구해,
성령 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풍성히 누리게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령은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성령 충만함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말씀을 하시기 직전, 이런 예화를 말씀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 누가복음11:5-8, 너희 가운데서 누구에게 친구가 있다고 하자.
그가 밤중에 그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여보게, 내게 빵 세 개를 꾸어 주게.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는데, 그에게 내놓을 것이 없어서 그러네 !’할 때에,
그 사람이 안에서 대답하기를
‘나를 괴롭히지 말게. 문은 이미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누웠네.
내가 지금 일어나서, 자네의 청을 들어줄 수 없네’ 하겠느냐 ? .......
그 사람의 친구라는 이유로서는, 그가 일어나서 청을 들어주지 않을지라도,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만큼 줄 것이다.
그렇습니다. 친구라서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빌려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매우 귀찮게 여기실 정도로, 우리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8절에는 간청(懇請)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원문 헬라어는 ‘아나이데이안’인데, ‘체면 불고하고’, ‘끈질기게’, ‘낯두껍게’란 뜻입니다.
즉, 상대방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뻔뻔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뻔뻔해도 좋고, 부끄러운 줄 몰라도 좋으니, 체면 불고하고 끈질기게,
성령 충만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해 주셔도 좋고, 안 해주시면 할 수 없고”가 아닙니다.
얌전빼지 말고, 안면박대하고, 그냥 성령 충만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한 것이, 우리에게 최고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본문13절)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얌전을 뺍니까 ?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 달라고 끝까지 떼써야 합니다.
약 20년 전, 미국의 Christian Today라고 하는 잡지에서,
미국 기독교회의 부흥과 쇠퇴에 대한 통계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그 통계에 의하면, 지난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약15년 동안,
미국 대부분의 기독교단의 성도들이 평균20% 정도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순절 계통의 교단은, 그 기간 동안 530%나 성장했습니다.
여러분 ! 오순절 계통의 신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
물론입니다. 성령 충만 달라고 기도하는 것을, 둘째라면 서러워하는 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들은 끝없이 회개하고, 끝없이 성령 충만함을 구합니다.
특히, 그분들은 이 두 가지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다.
사도행전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悔い改めなさい。 めいめい、 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洗禮を受け、
罪を赦していただきなさい。 そうすれば、 賜物として聖霊を受けます。)
본문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りながらも、自分の子供には良い物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
まして天の父は求める者に聖霊を与えてくださ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이 두 말씀을 붙들고 끈질기게 구합시다.
뻔뻔하게 구합시다.
그리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과거 북극의 에스키모인들이 늑대를 잡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칼끝이 매우 날카로운 칼에, 짐승의 피를 흠뻑 묻힌 다음에, 그것을 얼린답니다.
그리고 피가 묻은 칼날을 위쪽으로 향하게 하고, 칼의 손잡이는 얼어붙은 땅속에 박아 놓는답니다.
그러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와서 칼날을 핥는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
늑대의 혓바닥에서 피가 나기 시작하겠지요 ?!
그런데 그 추위에 혀를 내놓으니까, 어느 순간 그 혀가 얼어서 무감각해진답니다.
그래서 늑대들은 자기의 혀에서 피가 나는데도 못 느끼고, 계속 칼끝을 핥는답니다.
자기 피를 흘리면서, 그 피 맛에 도취해서, 계속 그 칼날을 핥는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요 ?
예 ! 자기의 피를 다 흘려 쓰러질 때까지 계속이요.
우리가 세상 생활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이대로 성령 충만하지 않고 살다 보면,
우리는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나는 세상의 삶’에 그냥 중독(中毒)되어 버리고 맙니다.
아무 생각 없이, 몸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다 보면,
우리 삶은 그렇게 굳어지게 되고 인생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뭔가 이제는 변화되어야 합니다.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길, 그 방법은 분명합니다.
여러분 ! 성령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능력과 최고의 힘은, 역시 성령 충만함입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앙꼬(餡子) 안 들어간 찐빵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누리는 평강, 응답, 기쁨, 감사, 행복, 감격, 환희 ......
이 모든 것을 100이라고 할 때, 성령 충만하면 이 100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100중에 10도 못 누리고, 100중에 10도 못 느낍니다.
이번 한 주간, 두 가지 말씀 붙들고 간절히 구하여,
성령 충만함 받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본문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あなたがたは悪い者でありながらも、自分の子供には良い物を与えることを知っている。
まして天の父は求める者に聖霊を与えてくださる。)
사도행전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悔い改めなさい。 めいめい、 イエス․キリストの名によって洗禮を受け、
罪を赦していただきなさい。 そうすれば、 賜物として聖霊を受け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