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11월22일, 다니엘 6:1-10(하나님 말씀 따라 사는 것 때문에 고난이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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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인생을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님 ! 그 모든 일은, 반드시 우리에게 복이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님 ! 우리 인생은 우리 스스로가 그리는 작품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그리시는 걸작품인 것을, 절대로 잊지 맙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제껏 인생을 사시면서 혹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 빠진 적이 있으십니까 ?!
약 35년 전, 제가 청년 시절에 섬기던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그 교회는 여름 수양회를 몇 해째, 전교인 수양회로 개최했었습니다.
수양회 모든 사항을 주관하는 부서는 청년회였는데,
특히 청년회장은 몇 개월 전부터 계획을 수립하고 기도하고,
또 수양회에 참석하여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1986년7월, 이한길이라고 하는 후배가 청년회장이었습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기아자동차에 입사했는데 그 해가 입사 첫해였습니다.
바쁜 회사생활 속에도 수양회의 모든 준비를 잘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수양회가 다가올수록 큰 걱정거리가 있었습니다.
회사가 너무나 바빠서, 도저히 수양회 일정과 맞춰 휴가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수양회 날이 되었습니다.
회사를 가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양회를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다 보면,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다른 한쪽은 섭섭한 일이 되고,
그리고 그에 따르는 후유증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바로 그렇습니다.
B. C.(主前) 586년, 유다왕국은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 당합니다.
많은 유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시작합니다.
당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유다왕국의 젊은 인재들을 뽑아, 바벨론 학문을 배우도록 명합니다.
바벨론의 인재로 삼고자 함이었습니다.
여기에 뽑힌 소년 중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다니엘은 지혜가 얼마나 뛰어났던지, 느부갓네살 왕을 거쳐서 벨사살 왕, 다리오 왕 때까지 왕궁에 머물면서,
일반 백성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인 총리까지 올라갑니다.
오늘 본문은 다리오 왕 때의 일입니다.
다리오 왕은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백성을 원활하게 다스리기 위해,
120개의 道에 각각 지방 장관을 세워서 관리토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이 볼 때, 다니엘은 모든 총리와 관리들 가운데서도 가장 정직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리오 왕은 다니엘에게 전권(全権)을 주어, 제국을 통치할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행합니다.
그런데 왕의 이러한 마음이 다니엘에게는 화근(禍根)이 되었습니다.
왕의 총애(寵愛)가 다니엘을 향하는 것을 시기한 다른 두 총리와 지방장관들이,
다니엘을 모함할 계략을 세웁니다.
그러나 청렴결백(淸廉潔白)한 다니엘에게서 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5절.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彼らは、「ダニエルを陥れるには、
その信じている神の法に関してなんらかの言いがかりをつけるほかはあるまい」と話し合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상과 사단 마귀는, 우리 신앙인들을 함정에 빠트리려 합니다.
더구나 세상과 사단 마귀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을 함정에 빠트리는 도구로,
때로는 우리의 신앙이나,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까지도 이용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무리들도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본문5절.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ダニエルを陥れるには、その信じている神の法に関してなんらかの言いがかりをつけるほかはあるまい。)
그리고 그들은, 아주 교묘한 법안(法案)을 만들어 왕에게 보고합니다.
그 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삼십 일 동안 누구든지 王 以外의 神이나 사람에게 기도하거나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함”
왕이 처음 이 법안을 받아 들었을 때, 그는 별생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자신을 높여주는 법으로 느꼈기에, 뿌듯한 마음으로 그 법안에 왕의 도장을 찍었습니다.
법은 즉시 그 효력이 발생했습니다.
이제부터 30일 동안, 다리오의 다스림을 받는 모든 백성은 누구에게도 기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직 다리오 왕에게만 구해야 됐습니다.
한편, 이 소식은 수석 총리 다니엘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에게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신앙의 결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일 하루 세 번씩 무릎 꿇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 집 가장 높은 곳의,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 앞에서였습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모습은, 그 집 앞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 대적자들은 이것을 보고 계략을 꾸몄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다니엘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어 보이는 이 상황 속에서 어떤 결단을 내렸습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결심에 따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대적자들은 쾌재를 부르며 왕에게 다니엘을 고발했습니다.
한편, 다리오 왕은 그제야 자신이 도장 찍어 공포한 법이,
다니엘을 시기한 다른 신하들의 음모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다니엘을 아끼고 귀중히 여겼던 왕이었지만,
다니엘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법을 어길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왕은 눈물을 머금고 다니엘을 사자(獅子) 굴로 보내고 맙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말씀입니다.
자 ! 이제 다니엘은 대적자들의 손에 이끌려 사자 굴 앞에 섰습니다.
지금 그는 사자 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 이 상황에서 다니엘의 형편을 좀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다니엘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 사자일까요 ?
예 ! 물론 눈앞의 상황은 그렇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사자 굴에는 뼈도 부숴뜨릴 만큼 힘센 굶주린 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놀랍게도 오늘 우리가 본 다니엘의 사자 굴엔 사실상 사자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 다니엘은 아무런 해(害)도 받지 않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굴속에 사자가 있긴 했지만, 그 사자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실제로 다니엘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자는 어디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진짜 사자는, 사자 굴 밖에 있었습니다. 누구입니까 ?
옳습니다. 다니엘을 향해 시기의 발톱을 세우고, 질투의 이빨을 갈면서,
음모와 계략을 꾸몄던 두 총리와 방백들이 진짜 사자였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사자에 물려, 뼈까지 으스러지는 것을 음흉한 눈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분명 굶주린 사자의 눈입니다.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드립니다.
결국, 다니엘에게는 굴속과 굴 바깥이 전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짐을 받기 전에, 이미 질투와 모함과 시기의 사자 굴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가는 인생의 길 역시, 다니엘 앞에 있는 사자들과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맹수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행을 보내시며 파송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遣わす。それは、狼の群れに羊を送り込むようなものだ。)
그렇습니다.
이리가 양들이 모인 곳에 와서 양 한 마리를 잡아먹는 경우는 흔한 일지만,
반대로 양 한 마리가 이리들 가운데로 보내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마 별다른 경우가 아니라면, 양은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사정없이 찢겨서 이리떼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렇게 비유하셨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우글거리는 사자 굴 앞의 다니엘이나,
이리떼들 가운데 벌벌 떨고 서 있는 양이,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자 굴 같은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전혀 힘들어하지 않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
우리가 사자 굴 같은 세상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큰 믿음의 사람이든지, 아니면 사자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이 시간 세상을 이길 큰 믿음을 얻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까지 말씀을 한 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하는가 ?
둘째, 굴속도 두렵지만 굴 바깥의 사자들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
셋째,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감당해서 둘 다 좋을 수는 없는가 ?
여러분 ! 이 세 가지는, 각각의 모양새는 다 달라 보이지만
다시 보면, 결국 하나입니다. 모두 같은 문제입니다.
따라서 해결 방법도 모두 같습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과 본문을 통해 분명한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자 ! 함께 따라해 봅시다.
첫째,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 하자.
앞에서 소개한 제자들을 보내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마태복음16:10. 보라 !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を遣わす。それは、狼の群れに羊を送り込むようなものだ。
だから、蛇のように賢く、鳩のように素直になりなさい。)
그렇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하나님을 바로 믿으며,
험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방법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만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고 천국 시민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어려움입니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두 나라에 살고 있어 좋은 것 같지만, 실은 두 나라에 끼인 존재입니다.
마치 일본에 5년 이상 생활한 한국인이 일본과 한국에 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다니엘은, 하나님도 잘 섬기고 다리오 왕도 잘 섬겼습니다.
여러분 ! 양쪽 모두를 잘 섬긴 다니엘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
융통성이었습니까 ?
아니면 합리성이었습니까 ?
아니면 시기적절한 처세술 때문이었습니까 ?
아니면 정확한 판단력이었습니까 ?
아닙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뱀의 지혜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
뱀은 평지에서는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만약 뱀을 운동장이나 아스팔트 길에 던져 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 같으면 장애물이 없어 편히 갈 수 있는 그 길을, 뱀은 오히려 불편해합니다.
그렇습니다. 뱀은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는 오히려 힘을 못 냅니다.
오히려 바위나 수풀과 같은 장애물이 있을 때, 뱀은 민첩하게 움직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들이 가져야 할 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핍박이나 환난 같은 영적 장애물이 있어야 우리는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지혜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지혜가 아니라,
오히려 뱀처럼 장애물을 이용하는 지혜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가져야 할 지혜는, 고난을 제거하는 지혜가 아니라, 고난을 기회로 삼는 지혜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만약 다니엘의 인생에 장애물이 없었다면,
다니엘은 그냥 이스라엘의 작은 왕궁에 살았던 평범한 인물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나라의 망함을 경험했고,
머나먼 이국땅에 포로로 끌려가는 망향민(望郷民)의 고통도 경험했습니다.
또한, 그는 소년 시절에 뜻을 정하여 왕이 먹으라 한 음식을 거절하므로,
스스로의 인생을 [장애물 경기]로 만든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원치 않아도 장애물이 많은 세상입니다.
굶주린 이리떼들, 굶주린 사자 떼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오히려 장애물 경기 같은 그 삶을 즐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말씀하셨다면, 주님의 뜻은 자명(自明)합니다.
우리 앞의 장애물, 즉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종류의 핍박이나 환란이나 방해나 반대를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는 지혜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통해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언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잠언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主を畏れることは知恵の初め/聖なる方を知ることは分別の初め。)
이 시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께로부터 크고 놀라운 지혜가 임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런데 여러분 ! 매우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순결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하되, 반드시 순결(純潔)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순결(純潔)이 없는 지혜(智慧)는 참 지혜가 아니라,
자칫 사악(邪惡)함이요, 교활(狡猾)함이요, 간교(奸巧)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기에서 비둘기 헬라어를 보면 ‘집비둘기’였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일찍부터 집비둘기를 훈련 시켜, 인간의 삶에 도움을 받았는데,
당시 집비둘기의 가장 큰 사명은 편지를 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집비둘기는 참으로 충성스러워, 주인이 부탁한 것은 반드시 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말씀은
그저, ‘온순하라’, ‘순수하라’는 뜻만이 아닌, ‘충성하라’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온순함이나 순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그 모습인 것입니다.
또한, ‘순결’의 헬라어 원어는 ‘아케라이오이’입니다.
그 뜻은 ‘뒤섞이지 말라’입니다.
금(金)에 다른 어떤 금속도 포함되지 않은 금을 순금(純金)이라고 합니다.
순결이 바로 그 뜻입니다.
따라서 주께서 말씀하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이 세상과 뒤섞이지 말고 오직 주님께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본문의 다니엘의 믿음을 보십시오.
그의 믿음은 하나님 섬김과 세상 섬김을 뒤섞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내내 채식을 할지언정 제사음식을 먹지 않았고,
비록 사자 굴에 던져질지언정 하루 세 번 기도하기로 한 자기 믿음의 결심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믿음은, 참으로 순결한 믿음이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의 믿음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러실 리 없겠지만, 만약 하나님이 자신들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으시더라도,
더 이상 은혜 베푸시지 않으시더라도, 더 이상 부하게 하지 않으시더라도,
오직 하나님만을 따르겠다는 순수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모두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힘은, 가장 큰 능력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순결로 가득 채워진, 온전한 지혜에 있습니다.
겉보기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결한 지혜만이
이 사나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입니다.
십자가밖에는 알지 않겠노라고 한 사도 바울의 그 순결이 가장 큰 힘이고,
뜨거운 풀무 불에서 던져지면서도,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는 결코, 절하지 않겠다는 그 순결이 가장 큰 능력이고,
사자 이빨에 으스러지더라도,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않는 다니엘의 그 순결이 가장 큰 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결국, 이들은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되었고,
하나님께 놀라운 영광을 돌린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둘째,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믿음을 가지고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워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자 굴(세상)은 두려운 곳입니다.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방식대로 살려고 합니다.
적당히 타협하고, 불의와 합력하고,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높아지고 풍부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자 굴이 아니라,
그곳에서 [세상과 타협해 버리려 하는, 우리의 약한 마음]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사자 굴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 무엇이라 기도하였겠습니까 ?
“주여 ! 이 굴속에서 저를 구원해 주옵소서”였을까요 ?!
아니면 “주여 ! 나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해 주옵소서”였을까요 ?!
그렇습니다. 그들 모두의 기도는 한결같았습니다.
사자 굴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할 것은 사자 굴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믿음대로 사는 것 때문에 세상에서 당할 고난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나를 불꽃 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마땅한 신앙의 대가(代價)를 지불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이한길 청년은, 몇 번 휴가를 요청했지만 휴가를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수양회 기간 동안, 회사가 아닌 사명을 선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땅한 신앙의 대가를 크게 지불한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회사에서 쫓겨나지도 않았고, 오히려 격려를 받았으며,
훗날 그 자동차 회사가 어려움을 당해 수많은 직원이 정리해고를 당할 때도 그는 끄떡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십수 년이 지나, 그는 그 교회의 초대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사건은 음모를 꾸민 악인들의 예상대로 진행되질 않았습니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데까지는 자기들 뜻대로 되었지만,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게는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그 사자의 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리오 왕은 이 사건 후 이러한 조서를 전국에 내립니다.
다니엘6:26-27.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わたしは以下のとおりに定める。
この王国全域において、すべての民はダニエルの神を恐れかしこまなければならない。
この神は生ける神、世々にいまし/その主権は滅びることなく、その支配は永遠。)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この神は救い主、助け主。天にも地にも、不思議な御業を行い/ダニエルを獅子の力から救われ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굶주린 사자 굴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를 언제 공격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두려워하지 말고, 순결함으로 아름답게 채워진 주님의 지혜를 가지고, 사자 굴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불에서 타지 않게 하셨던 주님께서,
또한, 다니엘의 사자 굴에서 사자 입을 꽉 봉해 놓으셨던 그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순결한 지혜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