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9월27일, 골로새서 3:22-4:1(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하듯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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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 하나님은 중보기도를 하는 성도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바울이 먼 로마에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로 힘껏 싸우며 함께 했듯이,
우리도 중보기도로 가족과 또한, 이웃과 함께 합시다.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전투의 승패가, 전쟁터가 아닌 기도의 자리에서 결정이 되었으니,
우리도 중보기도로 가족과 동역자들을 이기게 합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직장이나 일터에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밝히는 쪽입니까 ?
아니면 밝히지 않는 쪽입니까 ?
만약 밝히신다면, 왜 여러분들은 자신의 영적 신분을 밝히십니까 ?!
밝히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뜻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자랑스러워서, 혹은 전도를 위하여,
혹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자신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혹은 그냥 .......
반대의 분들은, 왜 여러분들은 영적 신분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
밝히지 않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뜻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한받는 것(말과 행동)들 때문에 일하기에 불편하니까,
혹은 내 부족함이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될까 봐, 혹은 그냥 .......
사실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일을 하면,
나 한 사람의 언행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 대한 평판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의 부족한 삶 때문에 자칫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혀야 하는 것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세상 후미진 곳에 숨어 살아서는 안 됩니다.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그리스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말입니다.
마태복음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あなたがたは地の塩である。だが、塩に塩気がなくなれば、その塩は何によって塩味が付けられよう。
もはや、何の役にも立たず、外に投げ捨てられ、人々に踏みつけられるだけである。)
마태복음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あなたがたは世の光である。....... あなたがたの光を人々の前に輝かしなさい。
人々が、あなたがたの立派な行いを見て、あなたがたの天の父をあがめるようになるためである。)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들을,
그 당시 대표적 노사관계라 할 수 있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직장과 일터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질 자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로마의 사회 구조를 미루어 볼 때, 초대교회 안에 있는 信者 中에
가장 많은 직업은 역시 하인(從)과 노예(奴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인과 노예라는 직업은,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도무지 직업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월급은 고사하고 겨우 먹고살 것만 받았으며,
주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자칫 목숨을 잃는 예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는 종(従)과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종의 위치에 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답게 자신의 주인을 온전히 섬길 것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초대교회 안에는 종(從)들을 거느리고 있던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당시 주인이 종(從)을 대하는 세상의 풍조와는 달리, 섬김의 삶을 가르쳤습니다.
자 ! 지금부터 구체적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어떤 직장관(職場観) 가져야 할까요 ?
첫째, 성도의 직장은, 깨끗한 양심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22절. 종들아 !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奴隷たち、どんなことについても肉による主人に従いなさい。
人にへつらおうとしてうわべだけで仕えず、主を畏れつつ、真心を込めて従いなさい。)
본문23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何をするにも、人に対してではなく、主に対してするように、心から行いなさい。)
그렇습니다. 직장인은 ‘모든 일’에 직장의 상사나 선배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본문의 앞뒤 문맥에서 볼 때, 이 순종은 신앙과 관련된 것은 제외된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내가 직장인(職場人)으로서 해야 할 모든 일에 대하여,
직장 상사 혹은 선배에게 순종해야 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한편 여러분 ! 순종하는 자세는, ‘눈가림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글 사전에 눈가림은 “겉만 꾸며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눈가림이라는 것은, 그저 상사(上司)에게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
혹은 고객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윗사람이 볼 때 무척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없으면 적당히 시간만 보내고 맙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렇게 핑계합니다.
“주인도 보질 않는 데, 더 열심히 일한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만 보내면 되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
“나 하나 적당히 한다고 해서, 우리 회사 망하지 않아요 !”
“내 몸은 내가 아껴야지요 ! 평생 써먹어야 할 몸인데요 !”
여러분 ! 이런 잘못된 생각에 대해, 오늘 본문은 강력히 경고합니다.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人にへつらおうとしてうわべだけで仕えず、主を畏れつつ、真心を込めて従いなさい。
何をするにも、人に対してではなく、主に対してするように、心から行いなさい。)”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께 하듯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열악한 직장생활이라 하더라도, 바로 그곳에서
성도로서의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자세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지난 한 주간 동안, 각각의 직장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양심을 지켰습니까 ?!
우리가 만약 직장이나 일터에서, 사람의 눈을 속이고, 꾀를 부리고, 성실하게 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장이나 고객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을 속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전, 제가 아는 분 중,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어느 한식당에서 일했는데, 자신의 구역이 식사 당번이든지
혹은 무슨 행사가 있으면, 그 한식당에서 음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또한, 자신의 가족이 먹을 음식들도, 그 일터에서 만들어왔습니다.
물론, 이것을 일하는 식당 사장이 허락했다면 큰 문제일 수 없습니다.
수고하는 직원을 위해서, 나눔과 베품과 섬김을 하는 것이니까요 !
그러나 사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직장(식당)의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스, 전기, 수도, 양념, 기타 재료 ......,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장을 위해 일해야 할 매우 중요한 시간을 다른 곳에 쓰고 만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 이러한 모습을 우리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
우리 생각에는 직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가,
사원을 막 대하는 못된 사장과 나 사이의 문제이고,
신앙과 아무 관계 없는 불신자와 나 사이만의 문제인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 앞에서의 내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는 직장, 내 일터가 ‘성도의 양심’의 부분을 면제받은,
범죄 특별구역이라는 착각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곳,
신앙의 양심과 정절을 지키기 어려운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절을 지킴과 동시에,
그곳을 기도와 찬양과 예배의 자리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직장과 일터는 신앙인의 양심을 지키는, 가장 최전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그곳(일터)에 크고 놀라운 뜻이 있어, 우리를 그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마치 요셉을 보디발의 집과 감옥과 바로의 왕궁에,
다니엘을 바벨론 왕궁에 보내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통해, 또한, 우리 본향의 성도들을 통해,
그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자리가 되도록 말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 왕 바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세기41:38-39
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ファラオは家来たちに、「このように神の霊が宿っている人はほかにあるだろうか」と言い、)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ヨセフの方を向いてファラオは言った。「神がそういうことをみな示されたからには、
お前ほど聡明で知恵のある者は、ほかにはいないであろう。)
다니엘을 통해서 느부갓네살 왕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다니엘2:47.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あなたたちの神はまことに神々の神、すべての王の主、秘密を明かす方にちがいない。)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의 깨끗한 양심을 통해, 우리가 속한 직장과 일터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요셉과 다니엘을 통해 왕들이 놀라운 고백을 했던 것처럼,
우리들 때문에 우리와 함께 한 분들이 귀한 고백을 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성도의 직장은, 주님께로부터 받는 ‘물질 축복’의 자리입니다.
본문24절.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あなたがたは、御国を受け継ぐという報いを主から受けることを知っています。
あなたがたは主キリストに仕えているのです。)
이 말씀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직장과 일터의 상전을 마치 주님을 섬기듯 성실한 양심으로 섬기면,
그 상급은 우리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기업의 상’이라 함은,
성도가 주님께로부터 받게 될 이 땅의 축복은 물론, 천국의 상급까지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씀이 분명히 맞는 것은, 직장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섬기는 곳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앞의 말씀에서도 직장과 일터에서,
“오직 주 (예수님)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명하셨으니,
그에 대해 상(賞)을 내리시는 분도 당연히 주님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상급입니다.
또한, 가정에서 자녀를 낳고 그들과 함께 화목하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승진하고 사업의 이익이 늘어나는 역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상급(賞給)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배하고 봉사하고 섬기고 충성하는 것,
하나님의 주신 은혜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부족하고 연약하여 아무것도 온전히 할 수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케 하는 것이 특별한 은총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하나님께서는 맡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우리에게,
이 땅과 내세에서 큰 상급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여러분 !
직장에서 시간 외 일(残業)하고, 이런저런 많은 일을 맡김 받는 것도 큰 축복이며
큰 은총인 것을 인정하십시오.
더구나 그 일들은,
단순히 회사에 혹은 사장에게 혹은 상사에게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께 순종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 ! 직장(일터)의 일이 많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의 그 수고와 그 땀과 그 눈물을 주님께서 아시고,
우리에게 합당한 큰 복과 열매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내 직장을 통하여 물질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재물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 정직하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본문25절.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不義を行う者は、その不義の報いを受けるでしょう。そこには分け隔てはありません。)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직장과 일터의 일을 성실히 감당해,
하나님의 주시는 재물의 복을 크게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도의 직장은, 예수님만이 나의 참 주인이심을 항상 인정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4:1절. 상전들아 !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主人たち、奴隷を正しく、公平に扱いなさい。知ってのとおり、あなたがたにも主人が天におられるのです。)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초대교회 안에는 종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당시의 사회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노예 제도가 잘못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성도의 참된 의무는 이 세상의 모순된 사회제도 자체를 개조시켜 완벽한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보여주는 빛이 되고,
천국 행복의 맛을 내어 주는 소금이 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당시 성도로서 세상에서 상전(윗 사람)의 위치에 있던 지체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당시 사회는 자기 종이나 노예들에게 ‘의나 공평’을 베푼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가장 현명하다고 이름난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까지도
“노예는 말할 수 있는 도구다”라고 정의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당시 ‘의와 공평’은, 자유민이나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고차원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聖徒)인 상전들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행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22절에는 ‘육신의 상전(肉による主人)’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육신의 상전’뿐이 아닌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상전은, 바로 우리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24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あなたがたは主キリストに仕えているのです。)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까 ?
우리들의 육신의 상전은 직장의 상사이며 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상사와 사장을 섬길 때는,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우리에게는 그 육신의 상전보다 더 높으신 하늘의 상전이 계십니다.
하늘의 상전이신 예수님 만이 우리의 참 상전이시며, 참 주인이십니다.
이 땅의 상전들은 잠시 우리들의 삶을 제어하고 있지만,
하늘의 상전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금세(今世)와 내세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
‘나의 참 주인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이 사실을
가장 잊어버리기 쉬운 곳이 우리들의 일터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가장 똑똑히 기억하고 살아야 할 곳 또한,
바로 우리의 직장이며 일터인 것입니다.
사장이 내 밥줄을 움켜쥐고 있는 진짜 주인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나의 모든 것을 진정으로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우리의 직장과 일터 속에서도 하나님이 유일한 참 주인이심을 고백하십시오.
바로 그것이,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의 뜻을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비로소 가슴으로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심령에도 은혜의 단비를 부어 주옵소서”라고만 기도하다가,
“주님 ! 비 가운데서 일터를 향하는 성도들의 걸음을 지켜 주시고,
사업하는 성도들의 영업장에 비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도들에게 바른 헌금 생활을 말하고,
스스로 헌금의 본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비교적 일찍 시작했지만,
성도들이 주일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과 여러 예물들을 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생하는지는, 그보다 훨씬 뒤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전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정말로 애쓰는 것,
교회 및 가정에서 뿐 아니라,
엿새 동안의 일터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 주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주님께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매일 고되게 일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직장과 일터의 일들을, 바로 내게 하듯 하라”
한 주간 동안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한 푼을 더 벌기 위해서
악전고투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
“너희들의 그 생활 역시 나를 대하듯이 해 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직장과 일터와 사업장을 그저 비정한 곳이라고,
지겹고 짜증 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이야말로, 여러분께서 엿새 동안
우리 주님을 가장 자주,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이야말로, 우리들이 선한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며,
바로 그곳이야말로, 주님께서 주시는 금세와 내세의 상급을 받아 누리는 곳이며,
바로 그곳이야말로, 우리들이 예수님 만을 진짜 내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
아닌지가 완전히 판가름 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따라해 봅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바로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일터에서 우리의 양심과 성실성을 깨끗하게 발휘하고,
우리가 세상에서 받을 물질 축복의 문을 열고 터뜨리며,
우리가 오직 예수님 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믿고 있음을 진실하게 증명함으로써,
우리들의 직장과 사업을 통해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그곳을 통해 내려 주시는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