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8월30일, 출애굽기 8:25-32(예배자의 길을 막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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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섬김과 봉사는 일부 그리스도인이 아닌,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행하여야 할, 매우 소중한 사명입니다.
성도님 ! 우리가 하는 섬김과 봉사에는, 반드시 희생과 수고가 동반(同伴)되어야 합니다.
내 손에 쥔 것이 줄어들고, 몸에 땀과 피가 흘러야 참된 섬김입니다.
프랑스의 루이14세 때에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루이14세는 신앙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主日이면 어김없이 가족들과 함께,
프넬론 대주교가 담임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항상 그 교회는 빈자리가 없이 가득했는데,
하루는 대주교가, 교인들이 바른 믿음으로 교회에 나오는가를 시험해 볼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리하여 대주교는 왕이 예배를 마치고 나간 후에,
조용히 “다음 주일에는 폐하께서 예배를 못 드리십니다”라고 광고를 하였습니다.
교인들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려고 오는 것인지,
아니면 왕에게 잘 보이려고 오는 것인지를 알아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 과연 다음 주일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
그렇습니다.
그 교회의 신자들 대부분은,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아니라,
루이14세에게 아부하고 루이14세를 보러 온, 거짓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어떻습니까 ?!
사람을 보러 온 것입니까 ?! 아니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온 것입니까 ?!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예배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신자에게 ‘바른 신앙 성장’ 있을 수 없고,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신자에게 ‘하늘의 복’ 임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 하나님은 온전한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요한복음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靈)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まことの禮拝をする者たちが、霊と真理をもって父を禮拝する時が来る。
今がその時である。なぜなら、父はこのように禮拝する者を求めておられるからだ。)
그렇습니다. 여러분 !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 말씀에 대한 순종이 있는 예배를 통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이 찾으시는 온전한 예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온전한 예배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 온전한 예배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려 할 때, 우리의 대적 사탄이 우리를 방해하겠습니까 ?
아니면 예배를 잘 드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해서든지 방해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사탄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소개하고,
더욱 바른 예배로 나아가는 결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애굽 왕과 담판을 짓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본문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 다음과 같은 지시를 하십니다.
출애굽기8:1. 너는 바로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예배할> 것이니라 <하라>
(ファラオのもとに行って言え。主はこう言われる。
[私の民を去らせ、彼らがわたしに仕える<禮拝する>ようにせよ。])
이에 모세는, 애굽 왕 바로에게 가서 몇 번에 걸쳐 말합니다.
그중 하나가 아래의 말입니다.
본문27절.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我々の神、主に犠牲をささげるには、神が命じられたように、三日の道のりを荒れ野に入らねばなりません。)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바로에게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협력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 ! 바로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까요 ?
아니요 ! 바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하러 가려는 하나님의 자녀들 앞을 가로막습니다.
첫째,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고 막아섭니다.
본문25절.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ファラオがモーセとアロンを呼び寄せて、
「行って、あなたたちの神にこの国の中で犠牲をささげるがよい」と言った。)
그렇습니다.
바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먼 곳까지 갈 것 없이,
이 땅 즉 애굽 땅에서 예배드리라고 합니다.
즉, 바로는 하나님이 정한 곳이 아닌, 애굽 땅에서의 예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애굽 땅에서의 예배는, 어떤 예배를 의미할까요 ?
그렇습니다. 그것은 성별(聖別)되지 않은 예배를 의미합니다.
애굽은 세상 권세를 의미하고, 욕심 가득한 육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을 의지하려 하는 이들을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이사야31:1-3.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災いだ、助けを求めてエジプトに下り/馬を支えとする者は。
彼らは戦車の数が多く/騎兵の数がおびただしいことを頼りとし/
イスラエルの聖なる方を仰がず/主を尋ね求めようとしない)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しかし、主は知恵に富む方。災いをもたらし/御言葉を無に帰されることはない。
立って、災いをもたらす者の家/悪を行う者に味方する者を攻められる。)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エジプト人は人であって、神ではない。その馬は肉なるものにすぎず、霊ではない。
主が御手を伸ばされると/助けを与える者はつまずき/助けを受けている者は倒れ、皆共に滅びる。)
어떤 신자는 거듭났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세상에 속하여 세상 욕심을 따라 자기중심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교회 갈 시간과 마음이 없다고,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립니다.
섬기는 교회를 두고, 편한 곳에서 예배를 때웁니다.
물론 여러분 ! 예배는 세상 모든 곳에서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이 머무는 모든 곳이,
하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자리로 변화되기를 분명히 원하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하나님은, 예배를 위해 거룩하게 구별된
성전(혹은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시편 기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시편134:1-3.
1.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主の僕らよ、こぞって主をたたえよ。夜ごと、主の家にとどまる人々よ)
2.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聖所に向かって手を上げ、主をたたえよ。)
3.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天地を造られた主が/シオンからあなたを祝福してくださるように。)
하나님께서도, 거룩한 성전이 있는 시온을 이렇게 축복하십니다.
시편132:13-14
13.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主はシオンを選び/そこに住むことを定められました。)
14. 이는 내가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주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これは永遠にわたしの憩いの地。ここに住むことをわたしは定め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구별된 자리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사흘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성별된 곳에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곳에 나아가, 그곳에서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내가 편한 곳에서 예배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삶의 자리를 떠나, 하나님이 지정하신 거룩한 성소(예배당)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구별된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예배는 드리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고 막아섭니다.
본문28절.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ファラオが、「よし、わたしはあなたたちを去らせる。荒れ野であなたたちの神、主に犠牲をささげるがよい。
ただし、あまり遠くへ行ってはならない。わたしのためにも祈願してくれ」と言う。)
여기에서, 너무 멀리 가지는 가지 말라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
그렇습니다. 세상과 너무 멀리 떨어지지 말라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께 너무 가까이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가족들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
“믿는 것도 좋지만, 너무 깊이 빠지지는 말아 !”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이렇게 유혹합니다.
“주일 낮 예배는 드려도 좋지만, 뭐하러 찬양 예배까지 드려 !”
“주일 헌금은 드려도 좋지만, 십일조 헌물까지 하는 것은 광신자(狂信者)야 !”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좋지만, 봉사와 헌신은 절대로 하지 말아 !”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아내, 남편, 자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좀 적당히 해 !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누가 알아줘 ? 하나님이 먹여 살려줘 !? 교회가 먹여 살려 주냐고 !?”
더구나 본문의 바로의 유혹처럼,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
(ただし、あまり遠くへ行ってはならない。わたしのためにも祈願してくれ。)
그렇습니다. "나를 위해서도 기도해 줘 !"하면서, 우리의 길을 막아섭니다.
지금의 재앙을 물러가게 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시편84:10, 12.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あなたの庭で過ごす一日は千日にまさる恵みです。
主に逆らう者の天幕で長らえるよりは/わたしの神の家の門口に立っているのを選びます。)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万軍の主よ、あなたに依り頼む人は/いかに幸いなことでしょう。)
이러한 고백이 우리에게도 항상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바짝 다가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어른들만 가서, 예배를 드리라”고 막아섭니다.
출애굽기10:9-11.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 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若い者も年寄りも一緒に参ります。息子も娘も羊も牛も参ります。
主の祭りは我々全員のものです」とモーセが答えると、)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 보라 !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ファラオは二人に言った。「お前たちの前には災いが待っているのを知るがよい。」)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いや、行くならば、男たちだけで行って、主に仕えるがよい。)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 성장에 너무나 관심이 없습니다.
부모인 자기들만 믿음을 지키면, 자녀들은 자동적으로 복을 받고,
더구나 큰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이라는 커다란 착각에 빠진 분들도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많은 문제아의 부모가, 대부분 기독교인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더구나 그 부모는 대부분 교회의 중직자(重職者)들이었습니다.
오늘날 ! 좀처럼,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와 같은
믿음의 어머니들, 맥아더 장군 같은 믿음의 아버지들이 나타나질 않습니다.
반대로, 자녀의 신앙과 성품보다, 자녀의 공부 성적과 세상성공에 더욱 관심을 두는
대책 없는 크리스천 부모들이, 우리 주위에는 가득히 차고 넘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는 어떤 부모들입니까 ?
사탄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어른들만 가서 예배하면, 멀지 않아 그들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버릴 것을 말입니다.
더구나 많은 부모들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자기 자녀들입니다.
사탄 마귀는 그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래서 아이들만 자기가 데리고 있으면, 아무리 부모들이 사흘 길을 걸어가서 구별된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세상에 있는 자식들 때문에 다시 세상(애굽)으로 돌아올 것을, 사탄 마귀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우리들 가정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제사장 엘리와 그 아들들의 가정이 아닙니까 !?
여러분 ! 그 자식들과 그 후손들이 얼마나 참혹했습니까 ?
저는 오늘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선포합니다.
“어른들만 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은 사탄의 교활한 전략입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의 자녀들의 믿음은, 참으로 어리고 연약한 수준입니다.
그 모든 책임은, 바로 저를 포함한 우리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해도, 하나님을 主人으로 섬기며 살지 않는다면,
결국 그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우리들의 자식보다, 우리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자식을 최고로 귀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부모들이 끝끝내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면,
우리들의 가정은 어쩌면 엘리의 가정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함께, 자녀와 더불어,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양과 소는 남겨두고 가서 예배를 드리라”라 하며 막아섭니다.
출애굽기10: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ファラオがモーセを呼び寄せて、「行って、主に仕えるがよい。
ただし、羊と牛は残しておけ。妻子は連れて行ってもよい」と言う。)
그렇습니다.
사탄은 지금, 제물 없는 예배, 헌신 없는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헌물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헌물이 없는 예배, 드림이 없는 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신명기16:16-17
16.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主の御前、主の選ばれる場所に出ねばならない。ただし、何も持たずに主の御前に出てはならない。)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あなたの神、主より受けた祝福に応じて、それぞれ、献げ物を携えなさい。)
가인과 아벨도 자기들의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창세기4:3-4,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カインは土の実りを主のもとに献げ物として持って来た。
アベルは羊の群れの中から肥えた初子を持って来た。)
사도 바울도, 매 주일 ‘미리 준비한 헌물을 드리라’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16: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私がそちらに行ってから獻金を集めることがないように、あなた方はそれぞれ、
いつも週の初めの日に、各自収入に応じて、幾らかでも手もとに蓄えて置きなさい。)
그렇습니다. 이처럼 참된 예배는, 온전한 드림을 통해 완성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우리 본향의 성도들이, 힘에 겹도록 드리기를 힘쓰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30배 60배 100배로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고린도후서9:6절의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惜しんでわずかしか種を蒔かない者は、刈り入れもわずかで、惜しまず豊かに蒔く人は、
刈り入れも豊かなのです。)”는 말씀처럼, 많이 거두시기를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사탄 마귀를 굴복시킬 굳건한 믿음으로, 온전한 예배를 회복합시다.
모세는 바로(즉, 사탄 마귀)의 유혹에 결코 타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단호하게 바로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이 땅 애굽(이집트)에서 예배하라”
“예배는 드리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아이들은 두고 어른들만 가서 예배드리라”
“양과 소는 남겨두고 가서 예배드리라”하는 마귀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쳤습니다.
그러자 결국 바로는, 하나님과 모세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출애굽기12:31-32절에 보면, 바로가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ファラオは、モーセとアロンを夜のうちに呼び出して言った。
「さあ、わたしの民の中から出て行くがよい、あなたたちもイスラエルの人々も。
あなたたちが願っていたように、行って、主に仕えるがよい。)
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羊の群れも牛の群れも、あなたたちが願っていたように、連れて行くがよい。
そして、わたしをも祝福してもらいたい。」)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희의 말대로”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서서, 온전히 예배드리기를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대로, 우리의 소망대로, 우리의 말(즉,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제 온전한 예배를 포기하게 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뜻만 생각하고,
하나님 은혜만 바라보며, 예배하는 우리가 됩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자녀, 생업에 크게 복 주실 것입니다.
온전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복과 땅의 원천의 복을, 더더욱 크게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