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8월16일, 누가복음 10:38-42(대접하며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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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립시다.
성도님 ! 예배와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아,
온전한 예배, 마음과 중심을 다 한 예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립시다.
성도님 ! 예배 전 온전한 회개 기도로, 정결(淨潔)한 예배를 드립시다.
성도님 !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예배는,
예배를 통해 주신 하나님 말씀을, 내 삶 속에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가끔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 가십니까 ?!
저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이나 전시품 등을 보면,
이런저런 배움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가끔 전시회를 보러 갑니다.
지난 7월 중순에도, 우리 본향 지체 한 분이 미술관 관람권을 선물해 주셔서,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東京 上野公園에 있는 국립서양미술관(國立西洋美術館)이었습니다.
지금 그곳에서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 전(展)]이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인 [런던 내셔널 갤러리(畫廊)]가
자신들이 특히 자랑하는 60여 개의 작품을 일본으로 잠시 가져와,
약 6개월에 걸쳐 東京과 大阪에서 전시하는 특별한 전시회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품은,
세계적인 미술가 빈센트 반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ひまわり)]입니다.(참고. 약 60억엔)
바로 이 그림입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3%81%B2%E3%81%BE%E3%82%8F%E3%82%8A_(%E7%B5%B5%E7%94%BB)#/media/ファイル:Vincent_Willem_van_Gogh_127.jpg
고흐의 [해바라기(ひまわり)]는 그 명성만큼 참으로 멋진 그림이었지만,
저에게는 그 그림보다 더 눈과 마음에 끌리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계신 그리스도]입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https://search.daum.net/search?nil_suggest=btn&w=img&DA=IIM&q=%EB%94%94%EC%97%90%EA%B3%A0%20%EB%B2%A8%EB%9D%BC%EC%8A%A4%EC%BC%80%EC%8A%A4%20%EB%A7%88%EB%A5%B4%EB%8B%A4%20%EB%A7%88%EB%A6%AC%EC%95%84&docid=338G0ELJ7EU1g44bNW
이 작품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1618년에,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0장의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그린 유명한 그림입니다.
그림 앞쪽에는 주방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있는 마르다의 표정이, 왠지 밝지 않습니다.
마르다의 뒤에 서 있는 어떤 노인의 표정도 그렇구요.
그리고 그림 오른편의 뒤쪽에는 거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는 마리아와 어떤 여인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늘 본문을 잠시 설명하겠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까운 베다니라는 마을에,
마르다라는 여인과 그녀의 오빠 나사로, 그리고 여동생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 베다니에 가셨을 때,
마르다가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잘 대접하기 위해 매우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동생 마리아는 언니의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에 은근히 화가 난 마르다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40절. 주여 !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主よ、わたしの姉妹はわたしだけにもてなしをさせていますが、何ともお思いになりませんか。
手伝ってくれるようにおっしゃってください。)
그러자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1-42절.
41. 마르다야 !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マルタ、マルタ、あなたは多くのことに思い悩み、心を乱している。)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しかし、必要なことはただ一つだけである。
マリアは良い方を選んだ。それを取り上げてはならな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섬기고, 또 이웃을 섬기고 대접하는 모습에는,
마르다형(形)과, 마리아형(形)이 있습니다.
우선 마르다형(形) 섬김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마르다의 섬김은, 반갑게 맞이하는 섬김이었습니다.
본문38절.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一行が歩いて行くうち、イエスはある村にお入りになった。
すると、マルタという女が、イエスを家に迎え入れた。)
이 말씀에서, ‘영접하더라’는 말씀은, 헬라어 ‘휘페데자토’로서,
그 뜻은 ‘환대하다, 접대하다, 손님으로 맞아들인다’ 인데,
이 단어 속에는 자발적이고 진심 어린 마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는 자기 마을에 예수님의 일행이 오셨음을 듣고,
곧바로 달려가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습니다.
분명 피로에 지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렇듯 마음을 다한 영접과 환대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여는 것입니다.
배척을 많이 받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人子,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그런데 이러한 주님을, 마르다는 적극적으로 맞이해 섬겼습니다.
우리 교회는 사람들의 왕래(往來)가 상당히 잦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우리 교회 앞을 서성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들어와 보고는 싶은데, 선뜻 용기가 나질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현재 우리 본향 지체 중 몇 분은, 그렇게 서성이고 있을 때,
반갑게 맞이한 본향의 마르다를 통해 교회로 들어오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마르다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섬김을 본향에 가득 채웁시다.
반갑게 맞이하는 마르다의 섬김을, 이 땅 일본에도 가득 채웁시다.
그리할 때, 본향은 예수님을 새롭게 맞이한 지체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마르다의 섬김은, 부지런히 대접하는 섬김이었습니다.
본문40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マルタは、いろいろのもてなしのためせわしく立ち働いていた。)
이 말씀에서, ‘분주한지라’는 말씀은, 헬라어 ‘페리에스파토’로서,
그 뜻은 ‘다른 방향으로 돌리다’인데, 오늘 본문의 음식 준비하는 상황에서는,
이 음식을 준비하면서, 다른 음식 준비에도 마음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 대접을 위해 열심을 다했습니다.
잠시도 손을 쉬지 않았습니다. 참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우리들이 이런 섬김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지체가 찾아오면, 열심을 다해 손을 쉬지 말고,
섬기며 대접하는 우리들의 섬김 말입니다.
이것이 사랑 많은 교회의 모습입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매우 안타까운 것은, 마땅히 섬김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일부 본향의 임직자와 제직이, 섬김을 멈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人の子は仕えられるためではなく仕えるために、
また、多くの人の身代金として自分の命を献げるために来たのである。)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섬기신 예수님을 본받아,
섬기기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셋째, 마르다의 섬김은, 곤비한 주님께 음식을 대접한 섬김이었습니다.
우리가 조금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복음을 위해 사신
공생애의 삶은, 결코 편안한 날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부터 밤이 되도록, 쉬지 않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상처받은 자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육신은 많이 쇠약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
마르다는 정성을 다한 음식으로, 지친 그들을 섬겼습니다.
참으로 시기적절한 섬김이며, 맞춤 섬김입니다.
그렇습니다.
섬김은, 섬기는 쪽에 그 중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쪽에 그 중심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올해는, 더욱 성숙한 섬김, 특히 섬김받는 지체들에게 꼭 필요한 섬김을 행하는 우리들이 됩시다.
자 ! 다음으로, 마리아형(形) 섬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마리아의 섬김은,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섬김이었습니다.
본문39절.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라>
(彼女にはマリアという姉妹がいた。マリアは主の足もとに座って、その話に聞き入っていた。)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른바 ‘듣는 섬김’을 했다는 것입니다.
삼성테크노글라스의 이동열 사장이, 이런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에게 호감(好感)을 주는 사람은, ‘Good Listener’이다.
그들은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말뿐만 아니라 고개를 끄떡이는 등의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대화를 나눌 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그에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단순히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가질 때, 좋은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들은, 잘 듣는 섬김에도 힘을 써야 합니다.
둘째, 마리아의 섬김은,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긴 섬김이었습니다.
신명기8:3.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人はパンだけで生きるのではなく、
人は主の口から出るすべての言葉によって生きることをあなたに知らせるためであった。)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온전히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리아는, 그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41-42절.
41. 마르다야 !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マルタ、マルタ、あなたは多くのことに思い悩み、心を乱している。)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しかし、必要なことはただ一つだけである。
マリアは良い方を選んだ。それを取り上げてはならな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마리아가, 음식 만드는 일이 힘들어 못 하겠다거나,
또한,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이 하찮다거나 생각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마리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이 우선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이 주신 말씀을 기다린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23:12.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その唇が与えた命令に背かず/その口が語った言葉を胸に納め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귀히 여기는, 마리아의 섬김을 본받읍시다.
그래서, 본향의 말씀이 선포되는 그 자리에, 우리도 섭시다.
그런데 여러분 !
왜 참 귀한 섬김을 한 마르다가, 이 대목에서 책망을 받았습니까 ?
우리가 여기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금 마르다가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책망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분명 마르다의 섬김도 예수님을 위한 참으로 귀한 섬김입니다.
그러나 마르다에게 한 가지 부족했던 것은,
주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마리아의 믿음과 섬김을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다른 지체들의 섬김을 오해하지 맙시다.
또한, 폄하(貶下, 가치나 수준을 깎아내려 평가함)하지도 맙시다.
특히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41절. 마르다야 ! 마르다야 !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マルタ、マルタ、あなたは多くのことに思い悩み、心を乱している。)
이 말씀에서, ‘근심하나’의 헬라어 ‘도뤼바제’는, ‘소란, 부르짖음’이라는 뜻의
명사 ‘도뤼보스’에서 연유된 동사로, 정신적 흥분이 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마르다는 자신의 섬김을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마르다를 책망하신 것은, 그녀의 열심 자체를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그녀의 그 열심이 스스로에게 올무가 되어,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섬김은 감사와 즐거움으로 해야 합니다.
섬김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괴롭히거나, 가족과 이웃까지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중심(中心)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섬김과 헌신을, 기쁨과 감사로 드릴 수 있는 자리까지 성장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과 이웃을 섬기고 대접하는 것은, 마르다형이 있고 마리아형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본향의 성도들이, 이 두 부분 모두를 힘쓰기 바랍니다.
특히 “나는 마르다 形, 나는 마리아 形”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모두 다 말씀만 듣고, 전도만 하면, 봉사는 누가 합니까 ?
모두 다 찬송만 하고, 기도만 하면, 새로운 지체는 누가 안아주며,
맛있는 음식을 통해 주는 기쁨은 누구로부터 옵니까 ?
내 섬김의 스타일만을 주장하는 것은, 자칫 편협(偏狭)된 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마르다처럼, 반갑게 맞이하는 섬김을 행합시다.
마르다처럼, 힘껏 부지런하게 섬기는 우리가 됩시다.
마르다처럼, 섬김 받는 사람에 딱 맞는, ‘맞춤 섬김’을 행합시다.
또한,
마리아처럼, 말씀에 귀 기울이는 섬김을 행합시다.
마리아처럼, 하나님 말씀을 가장 귀히 여기는 섬김을 행합시다.
올 한 해,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또 죽은 영혼이 살아나는 기적이 이어질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