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8월2일, 아모스 5:21-24(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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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 모든 인간은, 죽음을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천국으로 이사(引っ越し)하는 것입니다.
성도님 !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심판]입니다.
성도님 !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갈라디아서6:7).
여러분은 어떤 계절을 좋아하십니까 ?
아마도 이 무더운 계절에 ‘좋아하는 계절’을 물으면, 당연히 겨울을 말씀하시겠지요.
저도 겨울이 좋습니다.
제가 겨울에 태어난 것도 있지만,
저의 지난 추억을 떠올려 보면, 아름다운 추억들이 겨울에 많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 평소 무뚝뚝하던 아버지가 대장간에서 만들어다 주셨던, 특제(特製) 썰매를 타고
얼음판 위를 씽씽 달릴 때, 친구들이 부러워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참 가슴 뿌듯함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겨울 토끼사냥을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
눈밭에서의 토끼들은 참 빠릅니다.
그래서 눈이 하얗게 덮인 산에서 토끼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토끼를 잡는 방법은 대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산등성이 양쪽에서 골짜기로 토끼를 모는 겁니다.
왜냐하면, 토끼는 산 아래로 달리는 것보다 산 위로 달리는 것을 더 잘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토끼가 잘 다니는 길에 올무를 놓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토끼는 빠르고 잽싸기로는 사람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토끼는 자기가 다니는 길로만 다닙니다.
평소에 다니는 길이 아니면 좀처럼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토끼 발자국이 보이면 그 길목에다가 올무를 둡니다.
다음 날 가보면, 토끼가 걸려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토기사냥을 잘하는 분들은 그 길목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왜 토끼들은 바보같이 다니는 길로만 다니다가, 잡히고 말까요 ?!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이상한 일은 토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이들 숨바꼭질하는 것을 보면, 대개 숨는 곳에 또 숨습니다.
가위, 바위, 보도 그렇습니다. 대개 먼저 내는 것을 꼭 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것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말씀을 통해, 혹시 잘못된 쪽으로 익숙해 져버린 것이 있다면,
바꿔주시는 主님의 은혜를 꼭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약 2800년 전 이야기입니다.
목자이자, 농부였던 아모스를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아모스에게, 당시 백성들에게는 익숙해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름답지 않았던 한 가지를 바꾸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제사, 즉 예배였습니다.
여러분 ! 예배드리는 것이 서투십니까 ? 아니면 익숙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익숙해 있는 것처럼,
본문의 배경이 되는 아모스 시대의 사람들도 예배에 매우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 때로부터 천 년 이상 예배를 드렸던, 예배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그들이 가장 잘 알고 또, 잘하고 있다고 느끼던 예배의 잘못된 부분들을 지적하셨습니다.
아마도 백성들은 아모스의 지적에 이렇게 반응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잘 드리고 있는 우리 예배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까 ?”
오늘날 같으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목사님, 잘 드리고 있는 예배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겁니까 ?”
유명한 덴마크의 종교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모든 예배하는 사람들을
연극의 관객(觀客)과 무대 위의 배우(俳優)로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연극에서 관객은 연극을 보는 쪽이요, 배우는 연극을 하는(드리는) 쪽입니다.
이처럼, 예배도, 예배를 보는 이와 예배하는(드리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속하십니까 ?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4장의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가운데,
예수님이 예배에 대한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4:23.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父はこのように禮拝する者を求めておられ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 말씀이 놀라운 것은, 아모스 때나,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는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22절을 보세요.
참으로 충격적인 하나님 말씀입니다.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たとえ、焼き尽くす献げ物をわたしにささげても/穀物の献げ物をささげても/
わたしは受け入れず/肥えた動物の献げ物も顧みない。)
아모스 선지자 당시, 많은 성도들이 이런저런 예배를 드렸지만,
그 예배들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아름다운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성도들이 금식하며, 소 잡고 양 잡아서 나름대로 힘껏 번제(燔祭)도 드렸고,
목소리 높여 찬송도 드리고, 악기도 연주했지만,
그 예배 역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본문23절.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お前たちの騒がしい歌をわたしから遠ざけよ。竪琴の音もわたしは聞かない。)
찬양대의 찬양과, 피아노와 모든 악기 연주도 멈추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하나님은 예배드리는 사람의 신분이나 외모,
또는 예배 형식이나 절차가 아닌, 예배자의 마음 中心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중심을 다해 드리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의 가장 초창기로부터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와 그렇지 않은 예배를 분명히 구분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벨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였고,
가인의 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지 못했습니다.
창세기4:4-5.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主はアベルとその献げ物に目を留められたが、カインとその献げ物には目を留められなかった。)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약과 신약의 여러 시대(時代) 속에서도,
바른 예배드림을 무척 강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이사야 시대(이사야1:11-14)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お前たちのささげる多くのいけにえが/わたしにとって何になろうか、と主は言われる。
雄羊や肥えた獣の脂肪の献げ物に/わたしは飽いた。雄牛、小羊、雄山羊の血をわたしは喜ばない。)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こうしてわたしの顔を仰ぎ見に来るが/誰がお前たちにこれらのものを求めたか/わたしの庭を踏み荒らす者よ。)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むなしい献げ物を再び持って来るな。香の煙はわたしの忌み嫌うもの。
新月祭、安息日、祝祭など/災いを伴う集いにわたしは耐ええない。)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お前たちの新月祭や、定められた日の祭りを/わたしは憎んでやまない。
それはわたしにとって、重荷でしかない。それを担うのに疲れ果てた。)
미가 시대(미가6:6-8)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何をもって、わたしは主の御前に出で/いと高き神にぬかずくべきか。
焼き尽くす献げ物として/当歳の子牛をもって御前に出るべきか。)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主は喜ばれるだろうか/幾千の雄羊、幾万の油の流れを。
わが咎を償うために長子を/自分の罪のために胎の実をささげるべきか。)
8. 사람아 !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人よ、何が善であり/主が何をお前に求めておられるかは/お前に告げられている。
正義を行い、慈しみを愛し/へりくだって神と共に歩むこと、これである。)
말라기 시대(말라기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わたしは多くの鉄の枷で引き据えられ、/罪のゆえに、頭を上げることができません。
わたしには、安らぎがありません。あなたを怒らせ、/
御前に悪しきことを行い、/忌まわしき像を立て、とがを重ねたからです。)
또한, 우리 예수님께서도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드리는 예배가
너무도 잘못된 예배인 것을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이 시대에도, 거의 매일 수많은 예배가 드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아닙니다.
자 !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받으시는) 예배일까요 ?
혹,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은 없을까요 ?
앞에서 소개한 잘못된 예배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에, 몇 가지가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가운데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음 주일에 이어서 말씀 전하겠습니다.)
첫째, 그들의 예배는 마음이 빠진 예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마가복음7:6. 이사야가 너희 ....... 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イザヤは、あなたたちの ....... ことを見事に預言したものだ。彼はこう書いている。
『この民は口先ではわたしを敬うが、/その心はわたしから遠く離れている。)
그렇습니다. 말로만 아무리 “주님 ! 영광 받으소서 !”하면 뭐합니까 ?
가장 중요한 예배자의 마음이 빠졌는데요.
그렇다면 여러분 ! 마음이 빠졌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우리들은 흔히 마음이라고 하면 감정을 생각합니다.
마음이 뭉클 하다든지 소름이 끼친다든가, 그런 감정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것은, 감정적(感情的)인 부분보다는
지적(知的)인 요소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인,
마가복음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しなさい。)는 말씀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입니다.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너의 모든 감정(heart)과, 너의 모든 혼(soul)과, 너의 모든 마음(mind)과,
너의 모든 힘(strength)을 다하여 主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을 ‘heart’(심장, 감정, 기분)라고 하지 않고,
‘mind’(知性, 知力)라고 쓰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루디아가 바울에게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사도행전16:14을 보면,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主が彼女の心を開かれたので、彼女はパウロの話を注意深く聞いた。)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여셨다]는 것은, 루디아가 바울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즉, 여기서 마음은,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각(自覚)이나 발견 같은 지적(知的)인 요소입니다.
요한복음17:3절에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생(永生, 구원)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永遠の命とは、唯一のまことの神であられるあなたと、
あなたのお遣わしになったイエス․キリストを知ることです。)
그렇습니다.
영생은 우선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는 지적(知的)인 요소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코, 단순한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마음이 빠진 예배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은 예배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모르고 예배당에 앉아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묻습니다. 잘 모르는 대상을 온전히 예배할 수 있습니까 ?
없지요.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분이 뭘 기뻐하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온전히 경배하고 온전히 예배합니까 ?
실제로, 가인이 예배에 실패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하나님을 많이 아는 분과,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분은,
그 예배의 모습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예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는 분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예배는 드릴 때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질 때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느 정도 알고 계십니까 ?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어느 정도나 알고 계십니까 ?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
만약, 잘 모르신다면, 우리는 마음이 빠진 예배를 드리기 쉽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한 두 번 왔다가 오지 않습니까 ?
아니 어떤 사람들은, 한 동안 교회를 다니다가 갑자기 그만둡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잘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향교회가 가장 시급히 할 일 중 하나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약간의 관심과 매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음의 고통 때문에, 위안을 얻어볼까 하고 교회에 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 마음에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없고, 성경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며,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배울 마음이 없으면,
좀처럼 온전한 신앙인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어느 쪽입니까 ?
성경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싶은 쪽입니까 ? 아닙니까 ?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일예배 외에도,
찬양예배,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각종 성경공부 등의 시간을 주십니까 ?
물론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욱 늘려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6:3.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実際には何者でもないのに、自分をひとかどの者だと思う人がいるなら、その人は自分自身を欺いています。)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조상들이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물을 떠놓고,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렇게 했습니까 ?
그렇게 해야 천지신명이 감동해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습니까 ?
혹시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것 같은, 자기 나름대로의 신앙생활이 아닙니까 ?
여러분 !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를,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배우고 익혀, 하나님을 더욱 알아,
온전한 예배, 마음과 중심을 다 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익숙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익숙한 일이 사실은 잘못된 것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피의 공로가 있습니다.
분명, 우리에는 스스로 자신을 볼 때도 부끄러운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알아보려고 성경을 펼쳐도 잘 모르는 말씀이 많고,
또 내 양심을 봐도 오염된 부분이 많으며, 교회 안과 교회 밖에서의 삶이 다른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에게는 나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의 그 보혈의 공로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의 모든 죄는 정결케 됩니다.
혹, 우리의 삶이 모순투성이라도,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 예배를 받아 주십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제부터 예배드릴 때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겠다고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결단은 모든 예배 때마다 필요합니다.
저는 지금도 분명히 확신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 번의 예배로도 우리의 생애는 놀랍게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놀라운 일이 가능할까요 ?
그것은,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고, 그 사람을 통해 온전한 예배를 받으시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하늘과 땅의 은혜를 폭포수처럼 넘치게 쏟아부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마음을 다해 예배드릴 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예배드릴 때, 죄 용서받는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다해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허락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을 앎으로 드리는 마음의 중심을 다 한 예배를 드립시다.
오늘부터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서, 더 아름다운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