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020년7월26일, 히브리서 9:27-28(모든 인간이 반드시 맞이할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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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사랑하는 성도님 !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그런 분이십니다.
성도님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상처, 약점, 흠, 이 모든 것은,
그것을 통해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하려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도님 ! 우리가 부족하고 약한 만큼, 하나님을 더욱 의지합시다.
우리가 이 땅 일본에 살면서, 좀처럼 피하기 힘든 자연적인 어려움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일까요 ?!
첫째, 바람입니다.
여름에는 태풍, 봄가을에는 계절풍,
그리고 겨울에는 발달한 고기압에서 부는 북서풍 등 이 땅 일본에는 사철 내내 바람이 강합니다.
둘째, 지진입니다.
약 10년 전에 있었던 東日本大震災는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셋째, 찌는 듯한 찜통더위입니다.
수일 내로 장마가 끝나면, 올여름도 만만치 않게 덥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을 포함해 성경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더구나 그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일까요 ?!
자 ! 구약 전도서와 신약 야고보서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전도서3:19-20
19.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 같이 사람도 죽으니 .......
(人間に臨むことは動物にも臨み、これも死に、あれも死ぬ。)
20.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리라>
(すべてはひとつのところに行く。すべては塵から成った。すべては塵に返る。)
야고보서4:13-14.
13. 들으라 !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よく聞きなさい。「今日か明日、これこれの町へ行って一年間滞在し、
商売をして金もうけをしよう」と言う人たち、)
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あなたがたには自分の命がどうなるか、明日のことは分からないのです。
あなたがたは、わずかの間現れて、やがて消えて行く霧にすぎません。)
끝으로, 본문27절의 말씀은 제가 읽겠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人間にはただ一度死ぬことと、その後に裁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죽는 날이 정해져 있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할 뿐입니다.
일본 후생노동성(厚生勞動省)이 발표하는 [日本の1日]라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하루에 일어나는 것들을 통계로 발표하는 것입니다.
그 발표에 의하면, 작년 2019년도 일본의 사망자(死亡者) 수는
약 1376000명으로 하루 평균 3770명, 즉, 23초에 1명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배드리는 1시간(주일1부예배)에서 1시간30분(주일2부예배) 동안,
160명에서 240명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 일본이 아무리 장수(長壽)하는 나라여도,
120년 전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분은, 단 한 분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죽음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옵니다.
세상적으로 잘 나가던 사람도 죽고, 또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도 모두 죽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평등합니다.
또한, 죽음은 슬픔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확실한 이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죽음은 모든 것의 중단입니다. 무엇을 했더라도 멈춰집니다.
또한, 죽음은 누군가가 대신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해줄 사람도 없습니다.
대개의 경우, 혼자 죽음을 맞이해야 합니다.
자식을 백여 명이나 둔, 백 살이 다 된 왕이 있었습니다.
그 앞에 어느 날 죽음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너의 수명이 다했으니, 자 이제 함께 가자 !”
그러나 왕은 지금 죽는 것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정을 합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나라의 기틀을 더욱 바로 잡아야 합니다.
使者님 ! 내 많은 자식들 중에, 분명 나를 대신해서 죽어 줄 자식이 있을 것이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
왕은 자녀들을 모아놓고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자식도 죽음을 대신하겠다는 이는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제일 나이가 어린 막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대신 죽겠습니다. 아버지 !”
죽음의 사자가 막내에게 말합니다.
“네가 아직 어려서 죽음을 잘 모르는구나. 젊은 네가 살날이 많은데 네가 어찌 나서느냐 ?!”
그때 막내가 대답합니다.
“아버지가 백 년 가까이 사셨어도 저렇게 삶을 아쉬워하시는데,
분명 먼 훗날, 저 자신도 그럴 것이 아닙니까 ?!”
“아무리 오래 살아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그때도 아쉬워할 것이 이 삶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일찍이 제가 죽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아무리 거부하고 아무리 부정한다 해도, 우리에게 죽음은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무작정 기다리지만 말고,
그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까]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신앙인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바울은, 디모데후서4:6절에서 제자 디모데에게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世を去る時が近づきました。)”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없어지는 소멸(消滅)이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나 영원한 천국으로 이사(引っ越し)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무디 목사님은
자신의 임종을 당하여 슬피 우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
내일 아침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거든, 내가 완전히 죽은 줄로 생각지 마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저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라오”
여러분 ! 함께 찬송합시다.(찬송가491장, 일본어찬송가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괴로움과 죄가 있는 곳, 나 비록 여기 살아도
빛나고 높은 저곳을 날마다 바라봅니다.
내 주여 내 마음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아멘.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 갈 그곳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눈물을 친히 씻어 주시는 곳이며,
위로와 평강이 가득한 곳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은, 하나님 은혜로 천국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본 천국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요한계시록21:1. 3-4.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わたしはまた、新しい天と新しい地を見た。最初の天と最初の地は去って行き、もはや海もなくなった。)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そのとき、わたしは玉座から語りかける大きな声を聞いた。
「見よ、神の幕屋が人の間にあって、神が人と共に住み、人は神の民となる。
神は自ら人と共にいて、その神となり、)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彼らの目の涙をことごとくぬぐい取ってくださる。もはや死はなく、
もはや悲しみも嘆きも労苦もない。最初のものは過ぎ去ったからであ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죽은 후에 갈 곳은, 정말 복된 곳입니다.
그곳은 이 세상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안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대해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천국의 삶을 기다리고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노인이 죽어, 使者의 손에 이끌려 심판대를 향하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당황해하면서 죽음의 사자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아니 ! 이렇게 갑자기 데려가면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
세상 일들을 정리할 것이 많으니, 당연히 미리 예고해 주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요새는 날씨도 미리 예고해 주지 않습니까 ?”
이때 죽음의 사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主님께서 당신에게 이미 다섯 차례나 예고해 주셨지 않았소 !”
“먼저 눈 밑에 잔주름이 있게 한 것이 1차 예고였고,
귀밑의 머리 색깔이 희어지게 된 것이 2차 예고였으며,
입가의 잔주름이 3차 예고였고,
목 밑에 많은 주름이 생기게 한 것이 4차 예고였으며,
더욱 분명한 예고는 당신이 뱃가죽을 당기면 20cm나 늘어나게 한 것인데,
이렇게 분명한 예고가 어디 있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예고를, 몇 차까지 받으셨습니까 ?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 앞에 예고된 그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죽음을 앞둔 우리가, 지금 당장 준비할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그 믿음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는, 그 믿음 말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이 땅에 살 동안, 수많은 고생과 수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의 문을 통과할 때,
우리 앞에는 영원한 기쁨과 희락과 평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섯 자녀를 둔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자녀들 하나 하나에게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자녀들에게는 “see you again, Heaven”(ではまた,天国)라고 인사를 나누었는데,
넷째 아들에게만큼은 눈물을 흘리며, “Good bye”(さよなら)했습니다.
넷째 아들이 묻습니다. “엄마 ! 나는 왜 ‘Good bye’에요 ?”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시던 어머니가 넷째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 너와는 다시는 만날 수 없기 때문에 ‘Good bye’란다.
그러나 너의 형제들은 천국에서 나와 다시 만날 수 있기에 ‘see you again’이지 !
미안하구나, 끝내 너를 믿음의 길로 인도하지 못해서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죽음을 후회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천국을 소유하는 것뿐입니다.
요한복음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はっきり言っておく。わたしの言葉を聞いて、わたしをお遣わしになった方を信じる者は、
永遠の命を得、また、裁かれることなく、死から命へと移っている。)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神は、その独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
独り子を信じる者が一人も滅びないで、永遠の命を得るためである。)
귀하신 여러분 !
피할 수 없는 멸망과 죽음을, 영생으로 바꾸는 복된 여러분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죽음과 함께, 우리 인간들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
다시 한 번 본문27절을 읽겠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人間には、ただ一度死ぬことと、その後に、裁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또 한 가지는 [심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람에게 주어진 세상에서의 삶이 길지도 않은데, 자기 마음대로 실컷 즐기며 살다가,
때가 되어 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마치, 어떤 학생이, 아무런 시험도 없이,
그저 학창 생활을 마음껏 즐기며, 놀며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학생들은 반드시 시험을 칩니다.
여러분 ! 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합니까 ?
물론입니다.
첫째는 학업 성취도를 알려 하는 것이고, 다음은 차등(差等)을 두기 위함입니다.
구별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한 학생에게는 상을,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는 벌을 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인간이 죽은 후,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 것은,
죽음 후에 펼쳐질 우리들의 영원한 삶에 차등(差等)을 두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고, 그 죽음 후에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영원히 살 삶의 등급 혹은 수준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상을 받는 인생도 있고, 벌을 받는 인생도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신 주님께서 행하시는 심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복음심판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하는 심판입니다.
이것은 나이도 문벌도 학벌도 경제력도 체력도 건강도 성별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救世主)로 믿었느냐 믿지 않았느냐’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원한 희락과 기쁨의 천국이냐,
아니면 영원한 고통과 불의 지옥이냐’로 판가름 납니다.
둘째, 행위심판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행한 것대로 갚으시는 심판입니다.
전도서11:9. 청년이여 !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若者よ、お前の若さを喜ぶがよい。青年時代を楽しく過ごせ。心にかなう道を、目に映るところに従って行け。
知っておくがよい/神はそれらすべてについて/お前を裁きの座に連れて行かれると。)
베드로전서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あなたがたは、人それぞれの行いに応じて公平に裁かれる方を、「父」と呼びかけているのですから、
この地上に仮住まいする間、その方を畏れて生活すべきです。)
물론, 여기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는, ‘세상에서 살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지금 내가 하는 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또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여러분 !
다음의 말씀은, 우리가 평생 꼭 기억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人は、自分の蒔いたものを、また刈り取ることにな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심는 것을 따라, 우리는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 아니 지난 7개월 동안, 무엇을 심으셨습니까 ?
썩어 없어질 욕망을 심으셨습니까 ?
아니면 영원한 사랑과 헌신을 심으셨습니까 ?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밧모라는 섬에 갇혀 지내던 중,
하나님이 주시는 환상을 통해 마지막 날에 있을 일들을 보게 됩니다.
그중에 이러한 장면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0:12-15.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わたしはまた、死者たちが、大きな者も小さな者も、玉座の前に立っているのを見た。
幾つかの書物が開かれたが、もう一つの書物も開かれた。それは命の書である。
死者たちは、これらの書物に書かれていることに基づき、彼らの行いに応じて裁かれた。)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海は、その中にいた死者を外に出した。死と陰府も、その中にいた死者を出し、
彼らはそれぞれ自分の行いに応じて裁かれた。)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았던 삶의 모습들이,
천국에 있는 [행위록]이라는 책에 다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死も陰府も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この火の池が第二の死である。)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その名が命の書に記されていない者は、火の池に投げ込まれた。)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불 못’은 ‘지옥’, ‘영원한 고통’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불 못, 즉 영원한 지옥에,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가까운 장래에 죽음으로 주님 앞에 설 때,
잘했다고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믿음과 헌신을 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앞에서 소개한 대로 사도 요한은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들을 보면서,
불 못에 빠지는 자들도 보았지만, 곧바로 영원한 생명, 곧 ‘천국’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21-22장에는 (요한이 본) 우리가 들어갈 천국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21:10-11.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この天使が、聖霊に満たされたわたしを大きな高い山に連れて行き、
聖なる都エルサレムが神のもとを離れて、天から下って来るのを見せた。)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都は神の栄光に輝いていた。その輝きは、最高の宝石のようであり、透き通った碧玉のようであった。)
요한계시록21:19-21.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都の城壁の土台石は、あらゆる宝石で飾られていた。
第一の土台石は碧玉、第二はサファイア、第三はめのう、第四はエメラルド、)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第五は赤縞めのう、第六は赤めのう、第七はかんらん石、第八は緑柱石、
第九は黄玉、第十はひすい、第十一は青玉、第十二は紫水晶であった。)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また、十二の門は十二の真珠であって、どの門もそれぞれ一個の真珠でできていた。
都の大通りは、透き通ったガラスのような純金であった。)
요한계시록21: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この都には、それを照らす太陽も月も、必要でない。神の栄光が都を照らしており、小羊が都の明かりだからである。)
요한계시록22:1-5.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天使はまた、神と小羊の玉座から流れ出て、水晶のように輝く命の水の川をわたしに見せた。)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川は、都の大通りの中央を流れ、その両岸には命の木があって、年に十二回実を結び、
毎月実をみのらせる。そして、その木の葉は諸国の民の病を治す。)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もはや、呪われるものは何一つない。神と小羊の玉座が都にあって、神の僕たちは神を礼拝し、)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御顔を仰ぎ見る。彼らの額には、神の名が記されている。)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もはや、夜はなく、ともし火の光も太陽の光も要らない。
神である主が僕たちを照らし、彼らは世々限りなく統治するからである。) 아멘 !!!
그렇습니다. 우리가 들어갈 천국에는, 수정 같은 생명수 강물이 항상 흐릅니다.
다시는 밤이 없습니다. 죽음도 없습니다. 세세토록 주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시는 우리 모두가 꼭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이 귀한 예배에 참석한 복스러운 여러분 !
우리들의 인생은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장 복된 인생은 천국을 차지한 인생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해도,
그것은 100년, 아니 10년도 간직하지 못할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천국은 한 번 차지하면, 절대로 빼앗기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곧 올 천국의 영원한 백성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