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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1 2021년8월15일, 열왕기상 7:13-22(성전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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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9,007回 日時 21-08-2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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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사랑하는 성도님 ! 삼위 하나님이 그러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행할 때는, 여러 지체가 협력해서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혼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지체가 각각의 일을 감당하도록 이끌어 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국의 한 기독교 라디오 방송청취자가,

  그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어느 상담 시간에, 이런 내용을 질문했습니다.


  질문 : 우리 교회 목사님은, 교회강단 위에 목사님들 외에는 절대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장로님의 대표기도도 강단 아래에서 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단에 올라가실 때는 꼭 신발을 벗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맞는 것입니까 ?!


  이에 기독교방송국에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답변 : 강단 위에 목사님들만 올라가는 것은,

  그 교회 목사님의 목회 철학이요 방침이지, 성경적으로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느 교회 목회자이든, 그 교회 목회의 방침과 원칙이 있습니다.

  원칙과 질서가 없으면, 목회도 교회도 힘들어집니다.


  구약성경 느헤미야 8장을 보면,

  제사장 겸 학사인 에스라가 예루살렘의 수문 앞 광장에 온 회중을 모으고,

  나무 강단을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하고 깨닫게 했습니다.

  이렇듯, 교회의 강단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곳으로 이해한다면,

  강단 위에는 목회자만 올라가는 것이 옳습니다.

  신약시대에도 강단은 회당장이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사용했습니다.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낭독하시고 전하실 때(누가복음 4장) 서신 곳도 강단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를 빌려, 임시 강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셨으며(누가복음 5장),

  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바위나 지정된 장소를 강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마태복음 5장).

  바울도 말씀을 강론할 때 회당을 주로 찾거나,

  강가, 집안에서 강단을 이용하여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치며 축복기도를 행하는 곳의 강단이라면,

  그 강단을 신령한 곳으로 여기는 것이 옳습니다.


  사실,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읽고 선포하며, 축복기도를 하는 강단을,

  성도들이 귀하게 여기고 거룩히 여기는 것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강단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일도, 목회자가 그런 방침을 세웠으면 따르는 것이 옳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는 호렙산에서 불에 타지 않는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발을 벗었습니다(출애굽기 3:5).

  또한, 여호수아도 여리고 성을 향하기 전,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났을 때,

  그 발에서 신을 벗었습니다(여호수아 5:15).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가 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을 귀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참 복되고 좋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은 교회의 강단에 대한 말씀으로, 메시지의 서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러분들은 교회의 강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


  지난 8월1일부터 이곳 一之江 예배당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실시간 예배를 방송했는데,

  방송 예배를 드린 한 성도님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목사님 ! 아직 우리 교회강단 위에 십자가가 없는 것을 보니,

  아직도 해야 할 공사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새 예배당의 천장이 낮아, 고민 끝에 강단 오른쪽에 십자가를 세웠는데,

  화면으로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교회강단을 생각하면 십자가(十字架)가 생각납니다.

  고린도전서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十字架の言葉は、滅んでいく者にとっては愚かなものですが、

  わたしたち救われる者には神の力です。)


  고린도전서1:22-23.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ユダヤ人はしるしを求め、ギリシア人は知恵を探しますが、

  わたしたちは、十字架につけられたキリストを宣べ伝えています。)

  이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 십자가 외에 교회강단을 생각하면 또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

  물론입니다. 강대상(講臺床)입니다.

  우리도 약 23년 만에 새로운 강대상을 준비해 주님께 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인도하신 우리 하나님께, 오직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릴 뿐입니다.


  이 강대상에서 성도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가, 항상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항상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이 강대상을 통해 하나님께 드린 성도들의 예물과 헌신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지며, 아름다운 열매로 맺혀지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이 강대상에서 선포된 하나님 말씀이 모두 성취되며,

  성도와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향해 외친 축복들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이 강대상에서 기도한 모든 기도가 응답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교회의 강대상을 보면, 거의 모든 강대상에 꼭 붙어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지요 ?!

  우리 본향교회의 새 강대상에도 그리고, 지난 강대상에도 있습니다.


  예 ! 기둥(柱)입니다.

  강대상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의 경우 두 기둥이 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이 두 기둥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오늘 본문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 왕이 성전 건축을 위해,

  두로라고 하는 나라에서 한 사람을 데려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본문13절.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ソロモンは、人を遣わしてティルスからヒラムを連れて来させた。)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서로의 협력(協力)이 중요합니다.


  히람의 어머니는 이스라엘 납달리 지파의 여인이었고,

  히람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으로서, 놋(靑銅)으로 물건을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더구나 히람 역시, 놋(靑銅) 기술의 특별한 전문가였습니다.

  본문14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その母はナフタリ族出身でやもめであった。父はティルス人で青銅工芸の職人であった。

  ヒラムは知恵と洞察力と知識に満ち、青銅にかけてはどんな仕事にも通じていた。

  彼はソロモン王のもとに来て、ゆだねられたあらゆる仕事をした。)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건축하려는 솔로몬 왕에게,

  히람이라고 하는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을 붙여주신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본향교회의 새 역사에도 그렇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 히람이 만든 것 중 하나가, 바로 성전의 두 기둥입니다.

  자 ! 두 기둥에 대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본문15-17절.

  15.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彼は青銅の柱を二本作り上げた。一つの柱の高さは十八アンマ、

      周囲は十二アンマ、もう一つの柱の周囲も同様であった。)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柱の頂には、青銅を鋳て作った柱頭を据えた。

      一方の柱頭の高さが五アンマ、もう一方の柱頭の高さも五アンマであった。)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柱の頂にある柱頭に格子模様の浮き彫りを作り、網目模様の房を一方の柱頭に七つ付け、

      もう一方の柱頭にも七つ付けた。)


  우선 두 기둥은 재료가 놋(청동, 靑銅)이었습니다.

  그리고 높이는 각각 18규빗(약 9m)이었는데

  그 외로 기둥의 머리가 각각 5규빗(약 2.5m)이 더 있었으므로, 총 높이는 23규빗(약 11.5m)이었고,

  둘레는 각각 12규빗(약 6m)이므로 직경(直徑)이 약 2m였습니다.


  본문19-22절.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前廊の柱の頂にある柱頭はゆりの花の形になっていて、四アンマあった。)

  20. 이 두 기둥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二本の柱の上にある柱頭には、格子模様の浮き彫りの側面の膨みより上にも、

      二百個のざくろが列をなして取り巻いていた。もう一つの柱頭も同様であった。)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この柱は外陣の前廊の前に立てられた。一本は南側に立てられて、ヤキンと名付けられ、

      もう一本は北側に立てられて、ボアズと名付けられた。)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ゆりの花の形が柱の頂に出来上がった。)


  또한, 기둥의 머리 5규빗(약 2.5m)중 5분의 4에는

  하나님의 힘과 영광을 상징하는 백합화 문양을 만들어 넣었고,

  나머지 5분의 1에는 풍요를 상징하는 200개의 석류 문양을 넣어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나타냈습니다.

  견고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놋(청동) 기둥에, 백합화와 석류의 문양이 아름답게 합쳐진 것은,

  우리의 신앙이 놋 기둥처럼 견고하게 세워져야 하지만,

  백합화와 석류와 같이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따뜻함도 함께 갖추어야 함을 뜻합니다.


  (https://cafe.daum.net/jesus330/38Et/6692?q=%EC%95%BC%EA%B8%B4%EA%B3%BC+%EB%B3%B4%EC%95%84%EC%8A%A4&re=1)

  그런데 여러분 !

  이 사진을 잘 보면, 지금 말씀 한 이 두 기둥이, 성전을 받치고 있습니까 ?!

  아니면 그냥 서 있는 기념물입니까 ?!

  물론입니다.

  이 두 기둥은 성전의 현관 입구(낭실)에 세워졌는데,

  건축물을 지탱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두 기둥을 통과하게 되어있음을 볼 때,

  두 기둥은 성전이라는 건축물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과 연관되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두 기둥에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첫째, 오른쪽에 세운 기둥은 [야긴(ヤキン יכין)]입니다.

  그 야긴의 뜻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입니다.


  솔로몬에게는, 자신을 다윗 왕가의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신을 통해 거룩한 성전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열왕기상2:24. 나를 세워 내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わたしを揺るぎないものとして、父ダビデの王座につかせ、

  お約束どおりわたしのために家を興された主は)


  자신의 아버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수많은 금과 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준비했고,

  또한, 수많은 사람의 땀과 수고로 성전이 세워졌지만,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짐을 솔로몬은 믿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을 향해 나아가면서, 이런 시(詩)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편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主御自身が建ててくださるのでなければ/家を建てる人の労苦はむなしい。

  主御自身が守ってくださるのでなければ/町を守る人が目覚めているのもむなし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인생, 하나님께서는 세우시는 가정,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 백성이 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쓰고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이스라엘 왕국, 하나님의 성전은 온전히 세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마치며, 놋 기둥을 세우고 ‘야긴’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이 성전도, 우리 민족도, 우리 가정도, 오직 하나님이 세워주실 것입니다.]라는

  신앙고백을 [야긴 기둥]을 세워 나타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이 강대상의 오른 기둥을 [야긴의 기둥]으로 여기고,

  우리 본향교회를 [하나님께서 세워나가실 것입니다]라고 고백하고, 또한 믿읍시다.

  또한,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의 기업에도 이 [야긴의 기둥]을 세우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 우리 인생, 우리 기업을 세우실 것이라고 믿고 고백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교회와 가정과 기업과 인생을 아름답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노아 홍수 심판 이후, 인간들이 바벨탑을 세워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하나님을 대항하고 자기들의 이름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자신들의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자 바벨탑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은 인간들의 모든 계획을 무산시키고자,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온 지면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창11:1-9)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로 바벨탑을 세웠지만, 결국 허사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스스로의 힘과 지혜로 바벨탑을 세우는 미련한 인생이 되지 말고,

 [야긴의 신앙]으로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는 우리가 됩시다.


  둘째, 왼쪽에 세운 기둥은 [보아스(ボアズ בעז)]입니다.

  그 보아스의 뜻은 [그분 안에 능력이 있다]입니다.


  솔로몬 성전에 세워진 후 약 100년이 지난 B. C. 853년,

  모압과 암몬, 마온 연합군이 유다왕국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에 유다 왕 여호사밧은 전국에 금식을 공포하고, 성전에 나아가,

  여호와 하나님께로 얼굴을 향하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역대하20장)

  여호사밧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역대하20:6.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わたしたちの先祖の神、主よ。あなたは天にいます神、

  異邦人の国をすべて支配しておられる方ではありませんか。

  御手には力と勢いがあり、あなたに立ち向かうことのできる者はいません。)


  여호사밧의 기도가 계속됩니다.

  역대하20:10-12.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今、アンモン人、モアブ人、セイルの山の人々を見てください。

      かつてイスラエル人がエジプトの地から出て来たとき、あなたは彼らの土地に入って行くことを

      お許しになりませんでした。そのためイスラエル人は、彼らを避け、滅ぼさずにおきました。)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御覧のように、今彼らはわたしたちに報いて、あなたがわたしたちにお与えになったこの土地から、

      わたしたちを追い出そうと攻めて来たのです。)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わたしたちの神よ、彼らをお裁きにならないのですか。

      わたしたちには、攻めて来るこの大軍を迎え撃つ力はなく、

      何をなすべきか分からず、ただあなたを仰ぐことしかできません。)


  여호사밧은 기도는,

  하나님께는 세상 모든 나라를 통치하시는 권세와 능력이 있으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다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호사밧의 이 믿음의 기도는 즉각 응답 된 줄 믿습니다.


  역대하20:15-17.

  15.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この大軍を前にしても恐れるな。おじけるな。

      これはあなたたちの戦いではなく、神の戦いである。)

  16.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明日敵に向かって攻め下れ。)

  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そのときあなたたちが戦う必要はない。堅く立って、主があなたたちを救うのを見よ。

      恐れるな。おじけるな。明日敵に向かって出て行け。主が共にい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국가와 민족의 큰 위기 앞에, 여호사밧 왕은 성전에 나아가

  [보아스의 기둥]의 의미(즉,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를 마음에 새기며, 능력의 하나님께 기도드렸고,

  그 결과, 여호사밧 왕과 유다왕국은 전화위복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이 강대상의 왼쪽 기둥을 [보아스의 기둥]으로 여기고,

 [하나님께만 능력이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또한 믿읍시다.

  또한, 우리의 가정에도, 우리의 인생에도, 우리의 기업에도 이 [보아스의 기둥]을 세우고,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가정, 우리 인생, 우리 기업의 능력임을 믿고 고백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교회와 가정과 기업과 인생을 아름답게 세워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교회도, 우리 가정도, 우리 자녀도, 우리 인생도, 우리 기업도, 이 민족도

  오직 하나님이 세워주실 때, 비로소 온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야긴(ヤキン יכין)]의 믿음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도, 우리 가정도, 우리 인생도, 우리 자녀도, 우리 기업도, 이 민족도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할 때, 비로소 아름답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보아스(ボアズ בעז)]의 믿음입니다.


  우리 본향교회를 출입하는 모든 성도들이,

  강대상의 십자가와 두 기둥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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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4 2021 박성철 6968 21-08-07
723 2021 박성철 6981 21-08-01
722 2021 박성철 7414 21-08-01
721 2021 박성철 6722 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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