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2021년12월25일, 빌립보서 2:5-11(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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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성탄절을 맞아, 옆에 계신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성탄의 주인공이신 우리 예수님은,
지금 성탄 예배를 드리는 성도님으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성탄절(聖誕節)을 맞아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참 평화(平和)가,
성도님과 성도님의 가족, 가정과 기업에, 풍성히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덴마크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어느 멋진 왕자님이 말을 타고 사냥을 가는 길에, 산골의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왕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맑고 예쁜 여인이었습니다.
왕자는 왕궁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그 여인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자꾸만 생각나고, 꿈에도 보이고, 정말로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님이 사랑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몇 날을 끙끙 앓던 왕자님은, 마침내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 여인을 찾아가,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기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왕자님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그 여인에게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다음 네 가지를 깊이 생각하며, 구체적으로 준비했습니다.
첫째, '내가 어떻게 해야 만이 그 여인에게,
내가 그녀를 얼마나 간절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을까 ?'
둘째, '내가 어떻게 해야 만이,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그녀 역시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
셋째, '나와 그녀의 신분의 차이가,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어떤 장벽(障壁)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넷째, '내가 어떻게 해야 만이,
그녀가 나의 사랑을 믿고, 자기 삶의 모든 터전을 떠나, 나를 맞이하게 할 수 있을까 ?'
몇 날을 숙고(熟考)한 왕자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먼저 왕자님은, 왕자로서 가졌던 모든 힘과 지위를 내려놓고,
그녀가 사는 산골 마을로 내려가 산골 마을의 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는 그렇게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 마을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말을 배우면서 그 마을 사람들과 깊이 사귀어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왕자님은 더욱 깊이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인 역시, 성실한 그 남자(왕자)가 싫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마침내 왕자님은 사랑을 고백합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본래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를 가지고
당신께 왔습니다. 내 사랑을 받아 주겠습니까 ?!”
오래전부터 자신을 사랑했고, 또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은
왕자의 진실한 사랑을 알게 된 여인은, 자신 역시 왕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왕자의 사랑을 받아들여, 마침내 왕자와 함께 왕궁을 향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 ! 진실한 사랑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또 내려놓습니다.
진실한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진실한 사랑 안에는 희생과 기다림(인내),
그리고 믿음과 소망과 감사가 전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이 귀한 사랑을, 받고 주면서 사는가 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2021년 성탄절을 맞아, 탄생하신 예수님을 경배하는 여러분 !
이 진정한 사랑을 항상 누리고, 또한, 주고받는 우리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약 15년 전, 한국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34세인 한 젊은이가 11개월 동안 20여 명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그의 이름은 유영철입니다.
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볼 때,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영철의 인생은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척 고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14세 때(중학 1학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삶은 외로웠습니다. 특히 따뜻한 사랑에 굶주렸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소년원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21세부터는 사회에서 지낸 기간보다 교도소에 있던 기간이 더 길었습니다.
그는 20대 초반 결혼하여 자녀까지 얻었지만,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한 후 더욱 심한 고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는 수시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확인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가 ?”
그가 쓴 자작시에는 사랑에 갈급한 그의 메마른 마음이 보입니다.
"지금껏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온 가족이 함께 모인 그 순간이었다.
따뜻한 대화를 나누며 웃을 수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6년간, 결석은 딱 2번뿐인 성실한 학생이었고,
중학교 이후의 학업성적도 중간 이상은 했으며,
특히 미술과 문학에는 재능을 발휘해서, 미술은 항상 ‘수(秀)’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매스컴에 소개된 그의 그림은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러함에도 그는 분명 흉포(凶暴)한 살인자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부유한 노인 등 부유층을 살해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에게 닥친 모든 불행(不幸)이
부(富)의 불균형(不均衡) 때문에 온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다시 만난 여인에게도 범죄자라는 이유로 절교당한 후,
그의 살인 대상은 부유층이 아닌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살인자 유영철 !
우리가 그를 단순히 흉악한 살인마로 규정하여,
우리 마음에서 지워 버린다면, 어쩌면 우리 마음은 편안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가 어려서부터, 깊은 외로움 속에 그토록 찾았던 사랑을,
우리는 그리고 교회는 그에게 주지 못했습니다(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주위에 외로움에 지쳐 사랑을 갈급(渇急)해 하는 사람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특히 이 땅 일본에는, 사랑에 갈급한 분들이 참 많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오사카의 방화 사건도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닙니까 ?!
여러분 ! 우리는 과연 그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
본향성도여러분 ! 막 깨난 병아리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
스스로 달걀(알) 껍데기를 깨면서, 푸드덕, 푸드덕하다가 나옵니다.
그리고 나와서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걸으며 모이도 먹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입니다.
어미가 주는 젖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암소는 임신 중에 들에 나갔다가,
혼자서 새끼 낳아 스스로 치울 것 다 치우고 새끼 달고 돌아옵니다.
막 나온 송아지가 쫄랑쫄랑 따라오는 것을 보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인간을 보십시오.
도대체 우리 사람은 몇 날을 키워야 혼자 걷습니까 ?!
또한, 몇 년을 키워야 스스로 먹고삽니까 ?!
동물들이 사람을 본다면, 사람은 참 못났습니다. 정말 약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왜 인간은 이렇게 성장이 더디고 약할까요 ?!
그것은 모든 피조물 중, 인간이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인간은 혼자 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토록 사랑이 필요한 존재가 바로 우리 사람이기에,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스바냐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お前の主なる神はお前のただ中におられ/勇士であって勝利を与えられる。
主はお前のゆえに喜び楽しみ/愛によってお前を新たにし/
お前のゆえに喜びの歌をもって楽しまれる。)
로마서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高い所にいるものも、低い所にいるものも、他のどんな被造物も、わたしたちの
主キリスト․イエスによって示された神の愛から、わたしたちを引き離すことはできないのです。)
요한일서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神は、独り子を世に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その方によって、わたしたちが生きるように
なるためです。ここに、神の愛がわたしたちの内に示され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엄청나게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주저 없이 낮고 천한 땅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를 비운 사랑입니다.
본문6-7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キリストは、神の身分でありながら、神と等しい者であることに
固執しようとは思わず、かえって自分を無にして、)
사랑한다고 하면서 잘난척하면, 그 사랑은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고집만 세우면, 그 사랑은 깨지고 맙니다.
참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상대의 전부를 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우리를 사랑하사 세상에 오셨습니다.
두 손에 세상 모든 것을 가지셨던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 버리시고,
사랑만 남은 그 두 손으로, 우리를 품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에 우리도 응답합시다.
그리고 우리 또한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예수님을 꽉 안읍시다.
왕자의 사랑에 응답한 작은 마을의 여인처럼 말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완전한 하나님(神)이신 그분께서,
연약한 사람(참으로 부족한 것 많은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7-8절.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僕の身分になり、人間と同じ者になられました。人間の姿で現れ、へりくだって、)
그렇습니다. 앞서 소개한 작은 마을의 여인을 사랑한 왕자님은 이렇게 고민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만이 그 여인에게,
내가 그녀를 얼마나 간절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을까 ?'
'나와 그녀의 신분의 차이가,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어떤 장벽(障壁)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내가 어떻게 해야 만이, 그녀가 나의 사랑을 믿고,
자기 삶의 모든 터전을 떠나, 나를 맞이하게 할 수 있을까 ?'
그래서 그 왕자님이 선택한 것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 산골 작은 마을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참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스스로 연약한 인간, 부족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맞이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놀라운 예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우리 또한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셋째,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그분의 죽음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본문8절.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死に至るまで、それも十字架の死に至るまで従順でした。)
연약한 사람이 되셨고, 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을 죄의 저주를, 우리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놀라운 사랑을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일서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わたしたちが神を愛したのではなく、神がわたしたちを愛して、わたしたちの罪を
償ういけにえとして、御子をお遣わしになりました。ここに愛があります。)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한 폭의 그림도 그리지 않으셨지만,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수 많은 화가가 예수님의 사랑을 그렸습니다.
예수님은, 한 줄의 시도 쓰신 바 없지만, 단테, 밀턴 등 수 많은 시인이,
예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이름을 아름다운 시와 글로 높였습니다.
예수님은, 한 곡의 노래도 만드신 적이 없지만, 헨델, 베토벤, 바하, 멘델스존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예수님을 높여 찬양했습니다.
여러분 ! 왜 그렇습니까 ? 왜 그들이 예수님을 높였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놀라운 사랑에 너무나 감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놀라운 사랑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 한 주간, 성탄절을 맞이하며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느낍시다.
그리고, 그 사랑을 마음 깊이 되새깁시다.
그래서, 그 놀라운 사랑에 감격합시다. 마음껏 감사합시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 또한 예수님을 사랑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사랑합시다. 사랑으로 이웃을 안읍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올 성탄절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따뜻하게 보내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