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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1 2021년11월28일, 출애굽기 3:1-5(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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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20,347回 日時 21-12-09 23:20

本文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며,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를 매우 매우 기뻐하십니다.

  감사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1순위입니다.

  성도님 ! 하나님께 감사할 때, 우리는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황소를 드리는 것보다, 감사드리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여움(お怒り)도 즉시 거두실 정도로 감사를 기뻐하십니다.


  한국(조선)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제일 먼저 개신교 선교사로 온 분은

  1884년 당시 조선에 입국한 의료선교사 알렌입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와

  새문안교회와 배재학당, 이화학당, 경신학교를 세우면서,

  한국(조선)에서의 본격적인 선교 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1884년 첫 개신교 선교사 입국한 이후,

  한국(조선)에 입국한 기독교 선교사는 모두 몇 분쯤 될까요 ?!

  예 ! 약 30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귀한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한국은 세계 곳곳에 수십 만의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가 되었고,

  지금 현재도 세계 180여 국에서 약 3만 명의 한국선교사들이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편 여러분 !

  1884년 이후로 한국에 온 3000여 명의 선교사 대부분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서양분들이었지만, 한국보다 복음을 먼저 받은

  일본에서도, 한국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乘松雅休(のりまつまさやす, 1863-1921) 선교사입니다.


  노리마츠는 1863년 愛媛県松山市의 무사(武士) 가정에서 출생했고,

  공부를 마친 후 神奈川県의 관리로 임명받아 横浜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가 머물던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의 전도로

  横浜海岸敎會에 출석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노리마츠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얼마 후, 교회에서 [청년을 위한 특별 집회]가 있었고,

  노리마츠는 그 집회를 통해 큰 은혜를 체험하고,

  사명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召命)에 즉시 응답합니다.

  그는 縣廳에 사표를 제출하고, 메이지학원 신학부에 입학합니다.

  그 후 신학교를 졸업한 노리마츠는, 1896년 12월 23일 33세의 나이에,

  한국 선교의 꿈을 품고 인천을 거쳐 수원에 자리를 잡습니다.

  그렇습니다.

  乘松雅休 선교사는 일본 기독교가 최초로 파송한 해외 선교사였고,

  한국(조선)에 들어온 최초의 일본인 선교사였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분을 승송(乘松)목사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에 도착한 노리마츠 선교사는 조선인 청년 조덕성을 만나 한글을 배우면서 곧바로

  노방전도를 나갔으나, 조선사람들은 그를 일본사람이라고 욕을 하며 냉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생각하며,

  복음 전하는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897년 1월, 한국 수원(水原)의 겨울 추위는,

  노리마츠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견디기 어려운 추위였습니다.

  이에 집도 또한, 편히 잠잘 곳도 없었던 노리마츠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남의 집 굴뚝을 껴안고 잠을 잤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일본에 일시 귀국하여 일본 여인과 결혼한 후 1900년,

  다시 수원으로 돌아가 초가집 한 채를 사서 신혼살림을 차렸습니다.

  솥단지와 이부자리뿐인 너무너무 가난한 신혼 살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을 예배의 처소로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신혼 초 뜰에 감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몇 년 후 감이 열리자,

  노리마츠 선교사는 그 감나무의 절반은 옆집 마당의 양분을 얻은 것이라 말하며,

  매년 수확한 감의 절반을 옆집의 아주머니에게 드렸습니다.

  그러자 옆집 아주머니가 그 사랑에 감동하여,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또한, 노리마츠 선교사의 사모는,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을 팔아, 굶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곤 했습니다.


  노리마츠 선교사 부부의 헌신적인 사랑과 섬김은 서서히 조선사람들의 마음을 열었고,

  그 결과 수원은 물론, 경기도 장호원과 안성, 경상북도 경주, 충청북도 음성 등에

  38개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을 힘껏 내조(內助)하며 조선인들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복음을 전했던 사모님이, 그만 33살의 젊은 나이에 4남매를 남기고,

  영양실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굶주린 조선인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머리카락도 싹둑싹둑

  잘랐지만,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에 걸렸던 것입니다.

  귀하신 사모님의 육신(肉身)은 수원교회 뜰 안에 묻혔습니다.


  사모님을 먼저 보낸 노리마츠 목사는 그 후에도 한국 선교에 힘을 기울이다가

  자신도 영양실조로 인한 결핵에 걸려, 1921년,

  잠시 귀국한 일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의 나이 58세의 일이었습니다.

  노리마츠 선교사는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조선 땅,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묻혀있고,

  내가 사랑하는 성도들이 있는 조선 땅에 나를 묻어 주기를 바라오."


  같은 해, 선교사님의 유언에 따라, 평소 선교사를 존경했던

  白洋舍(はくようしゃ)의 창립자인 五十嵐健治(いがらしけんじ, 1877-1972) 등이,

  노리마츠 선교사님의 유해(遺骸)를 수원의 아내 옆에 안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乘松雅休(のりまつまさやす) 선교사는

  한국(朝鮮)과 한국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는 조선에 사는 동안 항상 한복을 입었고,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인처럼 생활했고,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일본어보다 한글을 먼저 가르쳤습니다.

  수원의 수원동신교회에 뒤뜰에는,

  지금도 노리마츠 선교사님 부부의 헌신을 기억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그 기념 돌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시작도 사람을 위해 그 마지막도 사람을 위해,

  그 충성과 사랑의 생애, 스스로 主의 사명의 띠를 띠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부부 한마음으로 조선에 복음을 전하였노라.

  수십 년의 풍상(風霜), 심폐(心肺)의 모진 아픔, 피골이 얼고 주려,

  수족은 병으로 어우러진, 그 조선에서의 희생은 참으로 극심하도다.

  그러나 그 삶은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여, 자신의 고난을

  즐거움으로 바꾸려 하지 않고 오직 기도와 감사를 드릴 뿐이라.

  우리 많은 형제를 얻어 주님과 함께 모이게 하니 주께 영광이로다.

  임종하는 순간, 조선 형제들을 잊지 않고, 그 뼈를 조선에 남기기를 원하였으니,

  그 마음을 우리 마음에 새겨, 주의 재림의 날까지 이르리라.]


 [生きるも主のため、死ぬるも主のため、始めも人のため、終わりも人のため、

  その生涯忠愛、おのれ主の使命を帯びて、その一切の所有を捨て、

  夫婦同心福音を朝鮮に伝う、数十年の風霜、その苦しみいかにぞや、

  心肺疼痛し、皮骨凍飢し、手足病敗す、その朝鮮における犠牲きわまりぬ、

  しかるに動静ただ主に頼り、苦に甘んずるの楽しみを改めず、

  その生涯は祈祷と感謝なり、わが多くの兄弟を得、会するに主を同じくす、

  主の名は栄を得、その生涯苦にしてまた栄なり、

  臨終の口に朝鮮の兄弟のことを絶たず、その骨を朝鮮に遺さんことを願う、

  これわれらの心碑となすゆえんにして、しこうして主の再臨の日に至るなり。]


  사랑하는 여러분 ! 사명(使命)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사명은 여러 면에 있어서 사랑(愛)과 매우 비슷합니다.

  참된 사랑은, 무슨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은 잊으려고 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잊으려고 했더니 잊혀졌다’ 그러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헤어지고 나니까 시원했다’ 그것 역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명도 사실 이것과 똑같습니다.

  불순한 의도가 없습니다. 또한, 좀처럼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그 사명에서, 손(手)과 마음을 완전히 놓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명은 어떤 방해나 난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나갑니다.

  마치 진정한 사랑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지금 이런 사명을 가지고 계십니까 ?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그 사명을 빨리 깨닫는 것은, 사실 너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장면으로, 모세가 부름 받는 장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모세는 소명(召命)을 받기 전,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별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그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였습니다.

  실패자였고 낙오자였고 도망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 사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모세에게 임한 부르심의 은혜,

  또한, 노리마츠에게 임한 부르심의 은혜가 우리에게도 풍성히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자 ! 본론으로 들어가서, 모세가 부르심을 받는 과정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며, 우리의 소명을 확인하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기 전부터, 이미 모세 주변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세가 소명 받은 때부터 하나님의 일이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기 전부터 이미 일하고 계셨습니다.

  애굽의 압제로부터 고통 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이미 모세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되었으며,

  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오히려 모세가 준비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백성들은 애굽의 압제에 견디다 못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이 고통에서 건져 주옵소서"

  출애굽기3:9.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見よ、イスラエルの人々の叫び声が、今、わたしのもとに届いた。)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렇듯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이미 그 전부터 일하고 계셨습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우리 주위에서, 그리고 이 세계역사 속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실 때, 평범한 일상의 삶 가운데에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는

  뭔가 깊은 묵상과 기도의 시간에 나타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가운데 나타나십니다.

  모세의 경우를 보십시오.(본문1-2절)

  1절.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モーセは、しゅうとでありミディアンの祭司であるエトロの羊の群れを飼っていた。)

  2절.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そのとき、柴の間に燃え上がっている炎の中に主の御使いが現れた。)

  그렇습니다.

  모세는 장인의 양 떼를 치는,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주님도 고기잡이하는 현장에서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마태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기드온은 타작마당에서, 아모스는 농사를 짓다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본문을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양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데,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시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데, 이상하게도 나무는 타지 않는 겁니다.

  광야에서 가시나무가 뜨거운 햇볕에 타는 일은 종종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날 본 광경은 좀 특별했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그 나무가 타서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모세가 떨기나무로 다가갔고,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이럴 수 있습니다.

  늘 드리는 주일예배인데, 어느 날은 이상하게 가슴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늘 드리는 새벽기도인데, 어느 날은 마치 주님이 나를 감싸듯이 포근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늘 드리는 찬양 예배인데 그 날은 좀 다릅니다.

  늘 하는 출근(혹은 등교)인데, 그 날은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늘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그 날은 뭔가 다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민감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 제가 여기 있습니다. 무엇을 행하기를 원하십니까 ?"라고

  즉시 순종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번 한 주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부디 즉시 응답하시고 순종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겐 반드시 하나님의 사명이 주어집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그에게 구체적인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모세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를 이길 힘을 주셨습니다.


  자 ! 그렇다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을 통해 능력을 주셨을까요 ?


  출애굽기4: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主は彼に、「あなたが手に持っているものは何か」と言われた。彼が、「杖です」と答えた。)


  출애굽기4:17절도 보겠습니다.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あなたはこの杖を手に取って、しるしを行うがよい。)


  그렇습니다. 모세가 양을 칠 때 사용했던 그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애굽 왕 바로를 상대하고, 200만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모세의 지팡이 속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양을 칠 때 사용하던 작은 지팡이를 쓰셨습니다.

  지팡이로 뱀을 만들어 보이셨고, 지팡이로 온갖 이적을 일으키게 하셨으며,

  홍해를 가르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놀라운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시되,

  평소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으로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무기를 주시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에는 새로운 것을 주시지만, 대개의 경우 평소에 우리가 쓰던 것,

  평소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을 크게 들어 쓰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연약한 것들을 통해,

  오히려 놀랍게 당신의 능력과 권능을 펼쳐 보이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곳에 함께 한 여러분 !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

  여러분들이 가진 능력과 재능은 무엇입니까 ?

  그것이 큽니까 ? 작습니까 ? 아니면 보통입니까 ?

  그것이 크든 작든 중요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참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업신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것을 통해 큰 기적을 드러내십니다.

  모세가 늘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쓰셨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귀하게 쓰십니다.

  우리의 지혜, 우리의 재능, 우리의 언어능력, 우리의 작은 재능들을 귀하게 들어 쓰십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의 갈 길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변에서 일해 오셨고,

  삶의 현장 가운데서 부르셨고, 능력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이번 한 주간,

  우리의 평범한 삶 가운데서 분명히 우리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명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이사야6:8.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わたしがここにおります。わたしを遣わしてくださ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わたしたちは、生きるとすれば主のために生き、死ぬとすれば主のために死ぬのです。

  従って、生きるにしても、死ぬにしても、わたしたちは主のものです。)


  지금부터 살아갈 우리의 귀한 인생,

  이사야와 바울과 같은 응답으로, 모세와 같은 헌신으로,

  그리고 乘松雅休(のりまつまさやす) 선교사 부부와 같은 결심으로 응답하여,

  하나님의 계획하신 큰 뜻을 아름답게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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