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3월20일, 출애굽기 34:29-35(과거보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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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하나님께 드리는 눈물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큰 위기를 극복한 다윗처럼, 우리도 눈물로 기도합시다.
눈물의 기도로 죄 용서함을 받은 여인처럼, 우리도 눈물로 기도합시다.
성도님 ! 부모 형제와 가족, 교회와 일터를 위해, 눈물로 기도합시다.
여러분 !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
저도 가끔 한 번씩은 미술관을 찾아가 그림을 보곤 하는데,
지난 2년간의 코로나 시대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올해는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다 물러가,
여러분이 소망했던 것들을 다 이루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편 여러분 !
중세시대의 성화(聖畫)를 보면, 믿음의 사람들을 그릴 때,
그 얼굴 뒤에 노란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 노란 동그라미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
물론입니다. 후광(後光), 즉 신비한 광채(光彩)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중세의 화가(畫家)들이 사람 얼굴 뒤에 후광(後光) 즉, 광채(光彩)를 그려 넣은 것은,
오늘 본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본문29절. 모세가 그 증거의 두 판을 모세의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그 산에서 내려올 때에, 모세는 자기가 여호와와 말하였음으로 말미암아,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나나 깨닫지 못하였더라
(モーセがシナイ山を下ったとき、その手には二枚の掟の板があった。
モーセは、山から下ったとき、自分が神と語っている間に、
自分の顔の肌が光を放っているのを知らなかった。)
더구나 그 광채가 얼마나 신비로웠던지, 온 이스라엘 자손들은 물론,
모세의 형인 아론까지도 모세를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본문30절.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를 볼 때에,
모세의 얼굴 피부에 광채가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アロンとイスラエルの人々がすべてモーセを見ると、
なんと、彼の顔の肌は光を放っていた。彼らは恐れて近づけなかった。)
이에 모세는, 사람들 앞에 설 때는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본문34-35절.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モーセは、主の御前に行って主と語るときはいつでも、出て来るまで覆いをはずしていた。
彼は出て来ると ....... 再び御前に行って主と語るまで顔に覆いを掛けた。)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모세 얼굴에 나타났던 빛은, 모세 얼굴에 언제까지 남아있었을까요 ?!
예 ! 그 광채가 언제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광채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라와 다단 등이 당을 지어, 모세를 대적한 것을 보면,
이미 그때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신 광야의 가데스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에 대해 크게 분노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린 것(민수기20:1-13)을 보면,
모세 얼굴의 광채는 그보다 훨씬 전에 없어졌음이 분명합니다.
<참고> 민수기20:10-12.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モーセとアロンは会衆を岩の前に集めて言った。「反逆する者らよ、聞け。
この岩からあなたたちのために水を出さねばならないのか。」)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モーセが手を上げ、その杖で岩を二度打つと、
水がほとばしり出たので、共同体も家畜も飲んだ。)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主はモーセとアロンに向かって言われた。「あなたたちはわたしを信じることをせず、
イスラエルの人々の前に、わたしの聖なることを示さなかった。それゆえ、
あなたたちはこの会衆を、わたしが彼らに与える土地に導き入れることはできない。」)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모세의 얼굴에 있던 광채는 왜 사라졌을까요 ?!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모세도 연약한 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았어도,
인간은 그 은혜를 영원히 간직하지 못하고, 자꾸만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지만, 사람은 자꾸만 변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우리는 사람에 대하여, 신화(神話)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처럼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 자신이 행하시는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것이, 그저 놀랍고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인간은 참으로 연약하고 변덕(気まぐれ)도 많지만,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부르셔서,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우리와 같이 이루어 내십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을 통해 이루십니다.
마태복음10:1-4.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イエスは十二人の弟子を呼び寄せ、汚れた霊に対する権能をお授けになった。
汚れた霊を追い出し、あらゆる病気や患いをいやすためであった。)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十二使徒の名は次のとおりである。まずペトロと呼ばれるシモンと
その兄弟アンデレ、ゼベダイの子ヤコブとその兄弟ヨハネ、)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フィリポとバルトロマイ、トマスと徴税人のマタイ、アルファイの子ヤコブとタダイ、)
4. 가나안인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熱心党のシモン、それにイエスを裏切ったイスカリオテのユダであ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행하시는 역사(役事)는, 한 사람의 슈퍼스타라든가,
한 사람의 능력 있는 지도자라든가, 한 부흥하는 교회,
혹은 성령 충만한 한 명의 성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본향의 역사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로 묶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린도전서12:28-30.
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神は、教会の中にいろいろな人をお立てになりました。第一に使徒、第二に預言者、
第三に教師、次に奇跡を行う者、その次に病気をいやす賜物を持つ者、
援助する者、管理する者、異言を語る者などです。)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皆が使徒であろうか。皆が預言者であろうか。
皆が教師であろうか。皆が奇跡を行う者であろうか。)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皆が病気をいやす賜物を持っているだろうか。
皆が異言を語るだろうか。皆がそれを解釈するだろう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는, 하나님께서 이 땅 일본의 복음화를 위해 하나로 묶어주신,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에게는 각각 태어날 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자라고 성장하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도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성령의 은사도 있습니다.
부디 각각의 재능과 지식, 경험과 성령의 은사를 힘껏 발휘하여,
이 땅의 한 영혼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데, 아름답게 협력하는 모두가 되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한 대(代)가 아닌, 여러 대(代)를 이어 이루십니다.
출애굽기6:7-8.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わたしはあなたたちをわたしの民とし、わたしはあなたたちの神となる。
あなたたちはこうして、わたしがあなたたちの神、主であり、
あなたたちをエジプトの重労働の下から導き出すことを知る。)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わたしは、アブラハム、イサク、ヤコブに与えると手を上げて誓った土地に
あなたたちを導き入れ、その地をあなたたちの所有として与える。わたしは主である。)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삭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되셔서, 구속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또한, 모세를 통해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셨고,
여호수아를 통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는 성전 건축을 준비하게 하셨고,
솔로몬을 통해서는 성전 건축을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의 묘비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從)을 땅에 묻으시나, 당신의 일을 계속하신다.]
그렇습니다.
우리 본향교회도 대(代)를 이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우리 후손(후배)들의 믿음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신명기6:5-9.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あなたは心を尽くし、魂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今日わたしが命じるこれらの言葉を心に留め、)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子供たちに繰り返し教え、家に座っているときも道を歩くときも、
寝ているときも起きているときも、これを語り聞かせなさい。)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更に、これをしるしとして自分の手に結び、覚えとして額に付け、)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あなたの家の戸口の柱にも門にも書き記しなさい。)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보다 우리의 자녀들과 후배들이 더욱 큰 믿음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본향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본 복음화를, 대(代)를 이어 감당할 수 있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러기 위해, 자녀의 신앙 성장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가르칩시다.
또한, 새롭게 본향을 찾은 성도들에게,
믿음의 본, 예배의 본, 헌신의 본을 보여줍시다.
셋째,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과거보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 중에는, 과거에 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혹은 자신이 체험했던) 부흥을 그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성도들 중에는 [1907년의 평양대부흥]을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1907년은 그저 1907년일 뿐입니다.
평양대부흥은 그때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부흥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에, 그 방식 그대로. 다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새 시대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행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과거의 영광에 향수(鄕愁)를 가지고, 그것만을 말하고, 그것만을 추억하며,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을, 하나님은 절대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과거의 영광, 과거에 받았던 복, 과거에 경험했던 은혜만을 기억하고 추억한다면,
현재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고,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첫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예루살렘에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왜 일부 성도들이 성지(城地 예루살렘 등)를 가려고 하고,
왜 사람들이 과거의 부흥을 그리워합니까 ?!
한 가지 이유는, 지금 이곳에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과거의 하나님 흔적이라도 보기 위하여, 옛것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렇듯 과거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지금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지나쳐버릴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이, 부모를 떠나 외삼촌 집을 향할 때,
벧엘에서 하나님을 뵙고, 꿈에서 깬 다음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창세기28:16-17.
16. .......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まことに主がこの場所におられるのに、わたしは知らなかった。)
17. .......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ここは、なんと畏れ多い場所だろう。これはまさしく神の家である。そうだ、ここは天の門だ。)
이 야곱의 체험이, 지금 우리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어떤 성도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 제가 과거에는, 교회에서 찬양 대원으로 봉사도 하고,
교회학교 교사도 하는 등 열심히 신앙생활 했었는데, 지금은 너무 게을러요."
얼마나 안타까우면 이렇게 말씀하겠습니까 ?!
그렇다고 여러분 ! 이미 지난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과거에는 하나님이 그 성도님을 통해 그렇게 역사하셨다면,
지금은, 옛날에 하던 식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에 맞게 헌신하고 충성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어제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개개인의 성도뿐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과거에는,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이런 성도도 있었고 저런 성도도 있었고, 이런 봉사도 했고 저런 헌신도 했고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가 과거에 했던 일, 물론 귀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입니다.
과거에 우리 혹은, 우리의 선배들을 통해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추억하려 하지 말고,
지금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고자 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영원한 위인(偉人)은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름다울 때도 있고, 그리고 추할 때도 있습니다.
이토록 부족하고 변덕(気まぐれ)이 많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합시다.
또한, 이토록 부족하고 변덕(気まぐれ)이 많은 우리를,
귀한 동역자로 삼으신 하나님께 항상 영광과 존귀를 돌립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십니다.
그 여러 사람에 속한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은 한 대(代)가 아닌, 여러 대(代)를 이어 이루십니다.
우리의 후배들과 후손들에게, 좋은 믿음의 유산을 물려줍시다.
그러기 위해, 믿음의 본, 예배의 본, 헌신의 본, 섬김의 본을 보여줍시다.
하나님의 역사(役事)는 과거보다 지금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은혜만을 추억하지 말고, 지금의 은혜를 간절히 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