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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2 2022년2월27일, 디모데후서 4:6-8(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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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6,223回 日時 22-03-05 21:24

本文

  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하는 상황에서,

  성경이 말하는 쪽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께 ‘見返り’를 요구하는 불의한 청지기는 되지 맙시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신실한 청지기가 됩시다.


  지난 2월 한 달 동안은 주일마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소개하며,

  우리 본향 지체들에게 성경 말씀을 의지해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자 ! 한 번 돌이켜 볼까요 ?!

  우선 2월 셋째 주일인 지난 주일에는 [見返り(보상)]이란 단어였습니다.

  말씀 제목이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였습니다.


  그리고 2월 둘째 주일에는 [諦める(포기)]라는 단어였습니다.

  말씀 제목이 [실패는 하더라도 포기는 하지 맙시다]였습니다.


  그리고 2월 첫째 주일에는 [信義(신의)]라는 단어였습니다.

  말씀 제목이 [어려울 때일수록 신의(信義)를 지켜야 합니다]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포기하지 말고, 信義(신의)를 지켜, 하나님께 영광 드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오늘은 2월 마지막 주일로 [죽음(死)]에 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 [죽음(死)]은 무엇입니까 ?!

  배운 지식이나, 철학이나, 다른 사람의 주장이 아닌,

  내가 내일 죽는다고 가정(假定)할 때, 그 죽음은 나에게 과연 무엇입니까 ?!


  오늘 본문은 바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로마 감옥에서,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기록한 것입니다.

  자 ! 믿음의 선배 바울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


  첫째. 죽음은 [떠남]을 통한 [출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문6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私は既に注ぎのささげ物となっています。私が世を去る時が来ました。)


  죽음을 앞둔 바울은 "떠날 시각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이란 떠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육체를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말씀에서 [떠남]이라는 단어는,

  허무함(虚しさ)이나 소멸(消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남]의 원문 헬라어는 [아날뤼세오스]인데,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 선장이 배를 바다로 출항시키기 위해, 정박해 놓았던

     배의 줄(rope)을 푸는 것을 뜻합니다. 즉, [출발]의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떠남]을 [출발(departure)]로 표현했습니다.

  ②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천막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한 장소에 도착하면, 천막(텐트)을 치고 줄(rope)로 고정합니다.

     그러다가 다른 곳을 향해 출발하게 되면, 천막을 고정했던 줄(rope)을 풉니다.

     이때 줄(rope)을 푸는 것을 [아날뤼세오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떠남]의 원문 헬라어인 [아날뤼세오스]의 뜻은,

  허무함(虚しさ)이나 소멸(消滅)이 아니라, [출발]인 것입니다.

  예 ! 우리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새로운 출발입니다.

  바로 여기에 성도(聖徒)의 소망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가 어렸을 때, 소풍(picnic) 가기 전날,

  얼마나 마음이 흥분되었습니까 ?!

  소풍에 대한 설렘으로 말입니다.

  또한, 우리가 어른이 된 지금도, 어떤 미지(味知)의 장소를 여행하려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설렘으로 얼마나 두근두근합니까 ?!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남]을 의미함과 동시에,

  우리의 큰 소망인 [천국]을 향한 출발입니다.


  그래서 독일의 본 회퍼 목사님은, 죽음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친구 여러분, 이제 저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결코

  저의 마지막이 아닙니다. 저는 새로운 여행을 위해서 출발합니다."


  둘째, 죽음은 이별(別れ)이 아니라 [다시 만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別れ) 때문입니다.

  ‘내가 더 이상 저들을 볼 수 없다,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

  이것이 사람을 슬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데살로니가전서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イエスが死んで復活された、と私たちが信じているなら、神はまた同じように、

  イエスにあって眠った人たちを、イエスとともに連れて来られるはずです。)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완전한 이별이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찬송을 자주 찬양합니다. (찬송가243장 일본찬송224장)

  먼저 떠나 그곳에 간 사랑하는 친구들,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로다

  세상 길을 다 간 후에 나도 거기 올라가, 그 집에서 우리 함께 살겠네

  주의 얼굴 뵈오리, 주의 얼굴 뵈오리

  슬픔 하나도 없고 금빛 찬란한 데서, 구속하신 주의 얼굴 뵈오리


  더구나 여러분 ! 이 찬송의 가사처럼,

  우리는 죽음 후에, 꿈에도 그리던 예수님을 직접 만납니다.

  상상만 했던 예수님을 직접 뵙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죽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상(賞) 받는 시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문8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あとは、義の栄冠が私のために用意されているだけです。

  その日には、正しい裁き主である主が、それを私に授けてくださいます。

  わたしだけでなく、主の現われを慕い求めている人には、だれにでも授けてくださ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우리가 심은 대로(혹은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人の子は、父の栄光に輝いて天使たちと共に来るが、

  そのとき、それぞれの行いに応じて報いるのである。)


  성도여러분 ! 우리가 인생을 살다, 어떤 사람의 죽음을 보고는,

 '이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혹은 불쌍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공의(公義)로우신 하나님은, 100% 공정하게 판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죽음을 맞이했던 그 누구를 만났을 때,

  우리는 완전히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가까운 미래 !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받으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요 ?!


  아니오. 우리는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반드시 맞이합니다.

  히브리서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人間には, 一度死ぬことと, 死後に裁きを受けることが定まってい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


  넓고 넓은 바다에 한 조그만 섬이 있는데, 그 섬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한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항해를 하다가 사고를 만나 그 섬으로 표류해 오면, 그들은

  바깥세상의 지혜를 얻기 위해, 표류자를 1년 동안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면, 반드시 왔던 그대로 떠나보냈습니다.

  예를 들면, 널빤지를 타고 왔으면 널빤지를 태워 보내고,

  조각배를 타고 왔으면 조각배를 태워 보내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표류자가 도착했습니다.

  그는 풍랑을 만나, 작은 통나무를 타고 간신히 그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그 섬의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서, 그의 옷을 벗긴 후 세탁해

  잘 보관하고, 그가 타고 온 통나무도 잘 말려 보관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표류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부터 1년 동안 우리의 왕입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또 무슨 일이든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년 오늘 왔던 그대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졸지에 왕이 된 표류자는 며칠을 골똘히 생각한 후, 섬의 사람들

  즉, 자신의 백성과 신하가 된 자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봐라 ! 나보다 먼저 이 섬에 왔던 사람이 있었느냐 ?!”

  신하들이 대답했습니다. “예 ! 두 명이 있었습니다.”

  표류자 왕이 다시 묻습니다. “그들은 여기에서 어떻게 살다 갔느냐 ?!”

  신하들이 대답합니다.

 “첫 번째 사람은 우리를 시켜 큰 집을 짓게 했습니다.

  저기 보이는 큰 집이 그 집인데, 첫 번째 사람은, 이 섬에 있는 보물이란 보물은 다 끌어모아,

  저 집에 넣게 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했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집을 짓고 보물을 모으던 중 순식간에 1년이 지났고, 그는 처음 약속대로,

  섬에 올 때 타고 왔던 널빤지를 타고 섬을 떠나가다가,

  갑자기 친 파도에 널빤지를 놓쳐, 그만 저 앞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어서 신하들은 두 번째 표류자에 대해 말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지은 저 집과 쌓인 보물을 보더니,

 ‘이런 미련한 사람 같으니 ! 하나도 못 가져갈 것들을 왜 이렇게 쌓아 놓았을까 ?!

  참 미련한 사람, 참 어리석은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는 '나는 열심히 먹어야겠다.’라고 하더군요 !"

 "그래서 1년 동안 이 섬과 바다에서 나오는, 몸에 좋고 맛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먹고 또 먹었습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자, 그 사람의 몸의 크기가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 사람은 헤엄쳐 맨몸으로 우리 섬에 도착했었는데,

  만 1년이 된 날, 그 몸으로 어떻게 헤엄을 쳐서 갑니까 ?!

  결국 저 앞바다에서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섬 신하들의 말을 다 들은 표류자 왕은, 다음 날부터 섬의 곳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표류자 왕은 섬의 동편 먼 곳에, 작은 섬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표류자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섬은 어떤 곳인가 ?”

  신하들이 답합니다. "조그만 섬인데,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입니다."

  이에 표류자 왕이, 섬의 신하들과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했습니다.

 "자 ! 오늘부터 모두 저 섬에 건너가, 저 섬에 우물을 파라.

  또한, 집도 짓고, 밭도 갈고, 나무도 심고, 꽃도 가꿔라. 채소도 심고 과일나무도 심어라 !"

  표류자 왕은, 1년 동안 쉬지 않고, 그 무인도를 가꾸고 또 가꾸었습니다.


  여러분 ! 1년 후, 그 표류자 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물론입니다. 섬에 올 때 타고 왔던 통나무를 타고,

  열심히 가꾼 그 섬에 가서,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세 번째 표류자가 지혜로웠던 것은, 자기가 갈 곳을 준비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신이 떠날 섬에는 많은 것을 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장차 갈 곳에, 모든 것을 심었습니다.

  여러분 ! 반드시 죽게 될 우리는, 어느 곳에 더 많은 것을 심어야 할까요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6:19-20.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銅綠>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あなたがたは地上に富を積んではならない。そこでは、虫が食ったり、さび付いたりするし、

      また、盗人が忍び込んで盗み出したりする。)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富は、天に積みなさい。そこでは、虫が食うことも、さび付くこともなく、

      また、盗人が忍び込むことも盗み出すこともない。)


  끝으로 여러분 !

  만약, 만약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죽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요 ?!


  성도여러분 !

  죽음의 순간이 우리에게 왔을 때,

  우리는 인간적으로 어떤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때가 되었구나 !’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죽음의 순간에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가장 좋은 태도는, 막 태어난 아기처럼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막 태어난 아이,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부모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은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난 아이처럼, 우리가 죽을 때 참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면,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꽈악 안아 주십니다.

  죽음 앞에서 섰던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을 의지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누가복음23:46.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父よ、わたしの霊を御手にゆだねます。)


  성도여러분 ! 삶이란 무엇입니까 ?!

  삶이란,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명을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반면에 죽음은, 그 몸부림들을 끝내는 순간입니다.

  그렇습니다.

  평생 힘쓰고 애썼던 우리의 모든 몸부림을 멈추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그 순간이, 바로 죽음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기가 몸부림을 치면, 부모가 그 아기를 편히 안아 줄 수 없다.

  그러나 아기가 자기의 모든 것을 부모에게 맡길 때,

  부모는 그 아기를 가장 평안하게 감싸 안아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모든 몸부림을 멈추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비로소 우리는 아버지 품 안에서, 최고의 평안과 안식을 얻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은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첫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출발]입니다.

  둘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이별(別れ)이 아니라 [다시 만남]입니다.

  셋째,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하나님께로부터 [상(賞)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는 결코 이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이 땅에다만 심지 말고, 더욱 많은 것을 하늘나라에 심읍시다.


  그리고 여러분 ! 멀지 않은 훗날, 죽음을 맞이할 때,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예수님처럼 고백합시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父よ、わたしの霊を御手にゆだねます。)"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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