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1월23일, 누가복음 1:1-4(우리도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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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믿음 생활을 하는 신앙인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신앙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신앙인입니다.
깨끗이 청소된 마음과 삶에, [섬김의 마음과 섬김의 삶]을 채웁시다.
깨끗이 청소된 우리 마음과 삶에, [하나님과의 대화 시간]을 채웁시다.
깨끗이 청소된 우리의 마음과 삶에, [축복(복 빎)의 시간]을 채웁시다.
깨끗이 청소된 우리의 마음과 삶에, [십자가 사명(使命)]을 채웁시다.
유네스코(UN 교육 과학 문화 기구)가
1992년 [세계의 기억(Memory of the World)]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의 목적은 세계의 기록유산이 인류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미래세대에 전수될 수 있도록 이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현재 432개의 기록물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되어
소중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한국이 관리하는 것은 [訓民正音(훈민정음)],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東醫寶鑑(동의보감)], [亂中日記(난중일기)] 등이고,
일본이 관리하는 것은 [御堂関白記(미도우칸파쿠키)], [慶長遣欧使節関係資料
(케이초우켄오시세츠의 관계 자료)], [東寺百合文書(토우지햐쿠고우몬조)] 등입니다.
특히 여러분 ! [朝鮮通信使に関する資料(조선통신사에 관한 자료)]는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세계 기록 유산]입니다.
유네스코는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을 이렇게 평가합니다.
[조선통신사에 관한 기록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4년간,
일본 에도막부의 초청으로 12회에 걸쳐,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되었던
외교사절단에 관한 자료를 총칭하는 것이다.
조선통신사는 16세기 말 일본의 豐臣秀吉가 조선을 침략한 이후
단절된 국교를 회복하고, 양국의 평화로운 관계회복에 크게 공헌했다.
조선통신사의 왕래로 조선과 일본은 증오와 오해를 풀고 상호이해를 넓혔고,
외교뿐만이 아니라 학술, 예술, 산업, 문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활발한 교류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따라서, 이 기록은 양국의 역사적 경험으로 증명된 평화적ㆍ지적 유산으로,
항구적인 평화공존 관계와 타문화 존중을 지향해야 할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현저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약400년 전에 일본과 한국의 선조들의, 양국의 평화 회복을 위해 노력했던 발자취를,
남긴 기록들을 통해 알게 되고,
우리 또한 한국과 일본의 좋은 관계를 위해 힘쓸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한편 여러분 !
1678년, 영국의 존 번연의 저서(著書)로, 성경 다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읽은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책을 기억하십니까 ?!
예 !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 Progress)]입니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책입니다.
저도 얼마 전부터 다시 한번 천로역정을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가 읽는 번역본은, 책 서두에 [천로역정]의 기록자인 존 번연이,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내가 맨 처음 글을 쓰려고 펜을 들었을 때,
이런 식의 책을 쓰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처음에는 신앙심 깊은 성도들의 행적과 그 생애를 기록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도들이 천국을 향해가는 여정과 그들이 받게 될
영광에 관한 비유들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완성하게 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렇습니다.
존 번연은 [천로역정]과 같은 대작(大作)을 쓸 목적으로 펜을 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펜을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참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자 ! 여러분 ! 한 가지 묻겠습니까 ?
요즘, 가끔 글을 쓰십니까 ?
아니면, 전혀 글을 쓴 기억이 없으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저는 우리 모두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
우리 또한, 위대한 기록자가 됩시다.
어쩌면 우리 중에 “나는 본래 글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잘 쓴 글만 글이고, 길게 쓴 글만 글이고, 읽어줄 사람이 있는 글만 글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마음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글을 쓰는 사명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기록자인 누가가 쓴 누가복음의 서문입니다.
본문1-4절.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わたしたちの間で実現した事柄について、)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最初から目撃して御言葉のために働いた人々がわたしたちに伝えたとおりに、
物語を書き連ねようと、多くの人々が既に手を着けています。)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そこで、敬愛するテオフィロさま、わたしもすべての事を初めから詳しく調べていますので、
順序正しく書いてあなたに献呈するのがよいと思いました。)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お受けになった教えが確実なものであることを、よく分かっていただきたいのであります。)
그렇습니다. 누가는 이 글을 데오빌로에게 보내기 위해 썼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실제 인물로서 로마의 고관이라 하기도 하고, 누가의 친척인데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가명(假名)을 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바울은 데오빌로에게 두 번의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과 신약성경 사도행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누가 시대의 기록 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누가복음이 기록된 때는 A. D. 62년입니다.(지금으로부터 1960년 전)
종이가 없던 그때는,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를 잘라 얼기설기 엮은 것 위에,
오징어 먹물을 새의 깃털에 묻혀 글을 썼습니다.
더구나 분량도 대단합니다.
누가복음이 24장, 사도행전 28장이니까
오늘날 A4용지로 빽빽이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한 사람을 위해, 이런 장문(長文)의 편지를 쓴다는 것,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
오늘 드리고 싶은 첫 번째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합니다.
본문의 누가도, 데오빌로 한 사람을 생각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그는 분명 누가가 깊이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를 위해 한 줄의 글도 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
성도여러분 ! 우리 사람은 말입니다. 표현하고, 말해야 압니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의아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합니다.
대다수 서양 사람들은,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글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좀처럼 글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러분 !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 혹은 형제자매, 혹은 친구나 스승 그리고 동료나 동역자 .......
우리가 정말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본문의 누가 정도는 아니어도,
어떤 모양으로든 그들에게 사랑의 글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 사랑은 다른 여러 모습으로라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그 사랑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해 주는 것은,
기록된 글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많이 씁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분명히 그 일기와 기록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많은 날 동안,
기록한 어머니에게도, 또한 양육 받은 자녀에게도,
더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의 원천(源泉)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글을 쓸 수 있는 결심이,
우리 모두에게 꼭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글(무엇)을 써야 할까요 ?
이것이 중요한 것은, 잘못 기록한 글, 잘못 쓴 글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기도 하고, 또한 타락하게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種の起源)’을 배경으로 한 진화론적 사상이 교육계에 들어갔고,
그 결과 인간은 원숭이의 후손이 되고만, 참으로 황당한 교육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란 글은,
세계 많은 사람을, 전쟁의 아픔과 유대인 학살의 비극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가 쓰는 글과 기록은 더욱 긍정적이고,
더욱 아름다운 방향으로 쓰여야 합니다.
자 !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누가는 무엇을 기록했을까요 ?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쓴 또 다른 편지인 사도행전의 서두에
누가 자신이 누가복음에 무엇을 썼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2.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テオフィロさま、わたしは先に第一巻を著して、イエスが行い、また教え始めてから、)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お選びになった使徒たちに聖霊を通して指図を与え、
天に上げられた日までのすべてのことについて書き記しました。)
그렇습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의 내용은,
한 마디로 온통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해서 편지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말씀드린 대로 기록은 기록 자체가 갖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쓰여진 글 중에서, 특히 읽는 자에게 용기를 가지게 하고,
소망을 가지게 하는 글은, 분명 좋은 글이고 아름다운 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어떤 글이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용기와 소망은 물론,
영원한 생명과 구원까지 얻게 한다면, 그 글은 정말 가치 있는 글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윈과 히틀러의 글은 세상을 전쟁에 빠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게 했지만,
누가의 글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앙에 있는 시편은 총 150편의 시(詩)가 실려 있습니다.
그중에 절반 이상의 기록자는 다윗입니다.
사실 다윗은 틈만 있으면 글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두려울 때도 글을 썼습니다. 기쁠 때도 글을 썼습니다.
비가 올 때도 글을 썼고, 천둥 번개가 몰아칠 때도 글을 썼습니다.
낮의 해를 보면서도 글을 썼고,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면서 글을 썼습니다.
젊어서도 글을 썼고, 나이 들어서도 글을 썼습니다.
죄를 짓고도 글을 썼고, 돌이켜 회개한 후에도 글을 썼습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모든 다윗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물론입니다.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어떤 글을 쓰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글에는 하나님의 향기가 풀풀 납니다.
하나님의 향취가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뭔가를 써 봅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묵상이든, 기도문이든, 시든, 수필이든 형식은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한 줄 한 줄 써 가다 보면,
머지않아 우리의 글도 다윗의 그 글들처럼,
오늘 본문의 누가의 글들처럼, 예수님 이야기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글들은, 분명 사람을 살리는 가치 있는 글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당장 오늘부터,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글쓰기를 시작해 봅시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본향의 지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혹 믿음이 떨어진 우리의 가족들에게,
친지들에게, 친구들에게 생명의 글을 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그저 예수님을 소개하는 딱딱한 글이 아닌,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하고,
또한 체험한 예수님의 따스한 사랑을, 글로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분명, 우리 삶 속에서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들이,
우리의 글 속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우리가 쓴 그 글들은, 분명 그 글을 읽는 우리의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데오빌로에게 보냈던 누가의 편지는, 본인이 상상치도 못했던 성경이 되었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도, 본인이 상상치도 못했던 대작(大作)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록 역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룰 것이라 확신합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그런 꿈을 가지고 기록을 시작합시다. 글쓰기를 시작합시다.
우리 본향의 모든 성도가, 쓰는 글로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다윗과 같은, 누가와 같은, 바울과 같은, 존 번연 같은 귀한 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