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11월23일, 누가복음 6:6-11 (마른 손을 내밀라 <萎えた手を伸ばしなさい>)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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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5 2025년11월23일, 누가복음 6:6-11 (마른 손을 내밀라 <萎えた手を伸ばしな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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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18回 日時 25-11-28 22:45

本文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몸에 좋지 않는 것을 먹지 않는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충남대학교 이계호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따라, 물을 잘 마시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물을 하루, 여덟 번은 마셔야 한다고 말합니다.

  1> 식사 30분 전에 한 컵 (250cc 정도) -> 합계 750cc 정도

   위(胃)에 음식이 들어간다고 알리는 역할 -> 위장(胃腸) 건강에 도움.

  2> 식후 2시간 후에 한 컵 (250cc 정도) -> 합계 750cc 정도

   장(腸)이 하는 일을 도와, 변비 등을 없앰.

  3> 취침 1시간 전에 한 컵 (250cc 정도) -> 합계 250cc 정도

   취침 중의 온 몸의 작용 및 활동을 돕고, 노폐물을 배출 시킴.

  4> 아침 깨어나자 마자 한 컵 (250cc 정도) -> 합계 250cc 정도

   밤새 몸에서 빠져나간 물(땀, 소변)을 보충해, 몸에 활력을 줌.


  물론, 여기에서 물(水)은 생수나 수돗물을 말하는 것이지,

  커피나 홍차, 혹은 음료수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몸에 나쁜 것은 드시지 말고, 물도 잘 마셔서, 건강을 굳게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건강을 지키기 위해, 물이 중요하다면, 우리의

  신앙(信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중요하고,

  성령님의 돌보아주심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자 !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우리의

  신앙(信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

  예 ! 거의 모든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성도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온전한 예배생활’과 ‘끈끈한 기도생활’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배생활이 온전한 성도, 좀처럼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도생활을 이어가는 성도, 그 믿음을 하나님이 지켜주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 왜 요새 신앙인들은, 예배를 소홀히 할까요 ?!

  특히,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왜 좀처럼 기도하지 않을까요 ?

  더구나, 기도의 능력과 기도를 통한 기적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오늘은 이것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성도여러분 !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분들은, 어머니나 혹은

  교회학교 선생님을 통해, 기도할 때마다 배운 ‘기도의 자세’가 있습니다.

  어릴 적, 교회학교 선생님이 기도 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기도시간입니다. 무릎을 꿇고(옛날에는 예배당이 마루바닥이었지요),

  눈을 감고, 예쁘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자 ! 기도합시다.”


  자 ! 이런 모습으로 한 번 기도해 볼까요 !!!

  오늘은, 무릎을 꿇는 것은, 무릎을 모으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자 ! 어떠십니까 ?!


  성도여러분 ! 바로 이 기도의 모습에, 기도의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먼저, 내 마음 대로 가던 그 삶을 멈추기 위해,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또한, 내 관점으로만 보았던 시선을 멈추기 위해, 눈을 감는 것입니다.

  또, 내 뜻대로 사용하던 손을 멈추기 위해, 두 손을 모으는 것이구요.

  그리고, 내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결국,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

  정 반대로 가르칩니다.

 “절대로 무릎 꿇어서는 안 돼 ! 두 눈 똑바로 뜨고 살아 !

  두 손을 불끈 쥐고, 고개를 당당히 들고 그렇게 살아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세상에서는, 무릎 꿇는다는 것은 패배를 뜻하고,

  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자포자기를 뜻합니다.

  또한, 두 손을 모은다는 것은 비굴함을 뜻하고,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좌절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좀처럼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도한다는 것은, 왠지 나약해지는 것 같고, 누군가의 도움에

  기대는 것 같고, 실패한 것 같다고 보여지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강해야 한다고, 세상에서 배웠거든요 !


  그렇습니다. 여러분 !

  기도는 이렇게 보면, 세상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하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바쁜 생활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지요 ?!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야 할 일, 만날 사람, 이메일과 SNS, 처리해야 될 일,

  쇼핑, 자녀들, 두 세끼 식사 등등으로 매우 분주합니다. 

  바쁘다는 말은 이제 안부 인사가 되었습니다. 안 바쁘면 민망하고,

  바쁜 것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쁜 사람은 뭔가 유능해 보이고, 실력 있어 보이는데,

  반대로 한가한 사람은 무능하고 게을러 보이기까지 합니다.

  오늘날은, 정말 바쁜 것이 정상인 것처럼,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바쁜 삶은, 우리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할 일이 없을 때에도, 왠지 우리 마음은 바쁩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이것저것 바쁘다 보니, 한 가지 일에 집중이 안됩니다.

  이런 상태로는 기도할 수도 없고, 기도의 시간을 갖기도 어렵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빽빽하게 채워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틈이 없는, 그런 황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어쩌다 한 번 기도해 봤지만, 공허하고, 응답이 시원치 않은 겁니다.

  기울인 노력과 투자한 시간에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능률과 효율성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에게는,

  이 기도라는 것이 매우 비효율적인 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기도해야 할 (너무도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오른손 마른 사람이 나옵니다.

  본문6절.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イエスは会堂に入って教えておられた。そこに右手の萎えた人がいた。)


  손이 오그라드는 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 당시 유대 땅에서,

  오른손이 오그라들었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 땅에는, 왼손으로 하는 일은,

  모두 다 부정(不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불결한 일과 안 좋은 일들은 거의 다 왼손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 사회는 오른손으로 한 계약만이 유효했습니다.

  오른손이 아니면, 약속이든 계약이든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

  분명히 일자리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가난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당시 사람들은, 몸의 장애(障礙)는 자기나 혹은 조상이 지은

  죄의 결과로 보았기 때문에, 부정한 자로 낙인 찍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많이 괴로웠을 것이고, 분명 외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에게나, 이런 '메마른 손', ‘오그라든 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남에게 활짝 펴 보일 수 없는, 그래서

  가능하면 감추고 싶은, 오그라든 아픔과 상처가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어렵게 얻은 기쁨도 금방 사라지고, 그것 때문에 삶이 무겁고,

  그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뭔가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목하지 못한 가정, 혹은 쉽게 말하기 어려운

  과거의 부끄러웠던 삶, 혹은 남들이 모르는 나만의 콤플렉스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합니까 ?!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마다 감추어둔 오그라든 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에게 문제는, 그 마르고 오그라든 손이 아닙니다.

  오그라든 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도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그런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불러 내십니다.

  자 !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방법으로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실까요 ?!


  오늘 본문의 상황을 잠시 설명합니다.

  당시 유대 회당은, 지금으로 말하면 모두에게 개방된

  일종의 커뮤니티회관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남자도, 안식일 회당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참고> 아니면,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을 대적한 무리들이,

  오른손 마른 사람을 통해, 에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일부러 그를 회당에 오게 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오른손 마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놀랍고 은혜로운 말씀을 통해, 한 참 은혜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그 예수님께서 자기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8절.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立って、真ん中に出なさい。)


  여러분 ! 오른손 마른 이 사람이, 당황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

  네 ! 항상 오른손을 감추고, 가능하면 숨어 살던 그에게는,

  무척 당혹스런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 섰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그에게 더 당혹스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10절. 네 손을 내밀라 (あなたの手を伸ばしなさい。)


  여러분 ! 지금 예수님이 내밀라는 손은, 건강한 왼손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남에게 절대 보여주기 싫은 오른손을 말하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혹시 누가 볼까봐, 꼭꼭 감추어 둔, 메마른 오른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사실 우리에게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어쩌면 “자리에서 일어나 한 가운데 서라”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당혹스러운 명령일지도 모릅니다.

  부끄럽고 창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 내 메마르고 오그라든 손을, 낱낱이 보여드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감춰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한다는 것은, 주저앉아 있던 옛 삶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숨어 살던 옛 삶으로부터, 세상 중심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 !

  오늘 본문을 보면, 손 마른 사람이 치유되는 과정이 참 놀랍습니다.

  그가 마른 손을 내밀었을 때, 예수님께서 안수기도를 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의 손을 어루만져 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마른 손을 내밀었을 뿐인데, 그의 손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본문10절.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その人に「手を伸ばしなさい」と言われた。

  そのとおりにすると、手は元どおりになった。)


  여러분 ! 바로 여기에, 기도에 대한 매우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손을 내미는 것이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만져 주시느냐’ 또는, 주님께서 ‘고쳐 주시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저 ‘주님께 손 내미는(즉,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이 기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

  우리 주님은,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손을 내밀 때, 매우 기뻐하십니다.

  더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너무 기쁘셔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이사야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あなたが呼ぶと主は答え、

  あなたが叫び求めると、『わたしはここにいる』と主は言う。)


  요한계시록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見よ、わたしは戸の外に立ってたたいている。だれでも、

  わたしの声を聞いて戸を開けるなら、わたしはその人のところに入って

  彼とともに食事をし、彼もわたしとともに食事をする。)


  그러므로 여러분 !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우리가 주님께 뭔가를 아뢰며, 손을 내밀 때,

  우리는 거룩하신 분과 연결되고, 깊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막연했던 하나님]이 비로소 [나의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나의 소원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이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과 내가 연결되는 것, 바로 이것이 기도의 진짜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무슨 일이든 주님께 손 내밀고, 아뢰십시오 !

  아주 작고 하찮은 것도 괜찮습니다.

  응답 여부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고, 내가 주님께 손을 내밀고 있다는

  그 마음과 자세에만 집중하면서, 아주 단순하게 아뢰십시오.

  이것이 기도의 첫 번째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깊은 기도는,

  내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의식(意識)하는 것입니다.

  지금껏 말씀 드린 ‘손 내미는 기도’가 기본적인 기도라면,

  이 기도(즉,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의식(意識)하는 것)는

  주님께 ‘더 깊이 손 내미는 기도’입니다.


  매순간 하나님을 의식한다는 것은, 마치 우리의 호흡을 의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 우리는 그냥 숨쉬며 살뿐이지, 매순간 우리의 호흡을 의식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관찰하면, 호흡 속도가 빠르기도 하고 느리기도 함을 느낍니다.

  초조하고 불안하며 화가 나면, 호흡이 빨라집니다.

  반대로 마음이 평화롭고, 안정을 느끼고, 너그러울 때는 호흡 속도는 매우 느려지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사,

  우리 속에 있는 불안과 초조가 사라지고 분노가 잦아듭니다. 

  마음과 영혼이 평화로워지고 부드러워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

  호흡을 항상 의식하는 것이 어색하고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을 의식하는 일은,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자꾸 연습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의지와 노력이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면, 하나님을 꾸준히 의식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떨어져 있으면, 의식하지 않아도 생각나고 떠오르잖아요 !!!

  좋은 곳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외로우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사랑은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그 대상을 떠올리게 하고, 의식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주님을 매순간 의식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첫 번째 기도는, 내 필요와 궁핍 때문에 손 내미는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기도는, 사랑 때문에 손 내미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 두 번째 기도를, 주님께 ‘더 깊이 손 내미는 기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친구를 만날 때, 가족과 대화할 때, 직장에서 일할 때,

  중요한 문제로 고민할 때, 잠자리에 들 때,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쁨과 슬픔을 겪을 때, 고난에 처했을 때 .......

  그때, 하나님이 곁에 계심을 떠올리고, 의식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자꾸만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주님께 더 깊이 우리의 손을 내밀다 보면,

  우리는 그 손 내밂을 통해, 우리의 삶 전반에

  얼마나 멋진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걱정거리가 있는데 걱정이 안 되고, 왠지 든든하고, 평안과

  감사의 마음이 생겨나고, 알 수 없는 기쁨이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마음이 진실해지고 정직해지며, 부드러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한

 ‘주님과 동행할 때의 기쁨’을 비로소 느끼게 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세상엔 신앙인은 아니지만,

  神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神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기만(알기만) 하고,

  그 神과 교류(交流)하지 않는다면,

  神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아는) 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우리 고향 땅에, 먼 친척 한 사람이 살아 있다고 가정해 보지요.

  그저, 먼 친척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믿는(아는) 것은,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와 전화통화를 하든 카톡을 주고받든,

  사귐과 교류를 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귐과 교류가 없다면, 있다고 해도,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놀랍게도 너무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기(알기)만 하고, 그 하나님과 교류나 사귐은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교류하지 않는 크리스천,

  진정한 크리스천입니까, 아닙니까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류하고 사귐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바로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아무리 굳게 믿을지라도,

  지금 나와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그 하나님은 안 계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진짜 성도와 가짜 성도의 차이는,

  하나님이 계심을 믿느냐 안 믿느냐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기억하십시오 !

  기도는, 하나님과 교류하며 사귀는 것이고, 그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분으로 체험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저 고향 땅의 먼 친척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을 먼 친척이나 남(他人)으로 취급하지 맙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 주 예수님께, 우리의 마른 손을 내밉시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분께 아뢰며 살아가십시다.

  매순간 주님을 의식하며, 그분과 동행하며 살아갑시다.

  그렇게 주님께 손 내미는 우리의 손을,

  우리 주님께서는 꽉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평생,

  주님과 사랑하며 동행하는,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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